[안영준의 나고야~호] 선수들과 함께 뛰고 웃고, 버스도 함께 못 탔다
아시안게임 4일 폐막, 16일 동안의 열전도 마무리
- 안영준 기자
(나고야=뉴스1) 안영준 기자 =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현장을 찾은 기자들도 16일 넘게 선수들과 함께 뛰었다. 직접 골을 넣거나, 10점 과녁에 화살을 쏘거나, 가장 먼저 터치패드를 찍지는 않았지만 바로 밖에서 함께 호흡하고 함께 기뻐하며 그 소식을 한국으로 전했다.
대회가 모두 마무리된 가운데 지난 16일 동안 '기자석'에서 일어났던 소소한 일들을 담아봤다.
선수들은 경기장 안에서 상대 선수들과 신경전도 마다하지 않는다. 상대 기를 죽이고 내가 가진 능력을 최대한 끌어내는 것도 경기 일부다.
그런데 각국 기자들 사이에서도 묘한 신경전이 있다. 취재진도 펜과 카메라를 들고 있기 이전에 그 나라의 국민이다. 자국 대표팀 승전보를 전하고 싶고, 활짝 웃는 사진을 찍고 싶다.
그래서 자국 선수들 경기력과 결과가 그대로 기자석 책상까지 이어진다.
도코나메 아이치 스카이 엑스포에서 열렸던 펜싱 여자 플뢰레 단체전 결승전에선 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극적 역전승을 거두고 금메달을 땄다. 일본 선수들은 환호했고 우리 선수들은 눈물을 흘렸다.
극적 승부였기에, 기자석 대다수를 점령한 개최국 일본의 기자들은 책상을 치며 환호했다. 여기가 응원석도 아닌데 저래도 되나 싶었다.
금메달 기사를 송고하기 직전이었던 한국 기자들은 조용히 기사를 수정했다.
불과 몇 분 뒤 이번엔 남자 사브르 단체전이 열렸다. 이번엔 한국이 일본에 4점 뒤지고 있다가 극적으로 역전승을 거두고 우승했다. 저절로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일본 기자들은 풀이 죽었다.
한 일본 기자는 기사에 올릴 사진을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는 사진 대신 평범한 경기 사진으로 조용히 바꿨다. 기사를 수정할 생각에 정신이 없어 보였다. 씩 웃어줬다.
경기가 끝나면 펜 기자들은 믹스트존에서 선수들과 인터뷰를 진행한다. 이곳도 경기장의 감정이 그대로 공유된다.
패한 일본 선수들을 향해 일본 기자들은 질문할 것도 별로 없다. 질문도 답도 잘 안 들린다. 기자석에 그리 많던 일본 기자들은 반도 내려오지도 않았다.
뒤이어 한국 선수단이 의기양양하게 믹스트존을 통과하자, 한국 기자들 수십 명이 몰려들었다. "축하합니다" 크게 인사도 하고, 답변도 즐겁다. 한국 선수들과 한국 기자들이 그 넓은 믹스트존의 주인공이 된다.
늘 그런 건 아니었다. 도쿄 아쿠아틱스에서 열린 수영에선 중국 기자들의 어깨가 성화대 위까지 치솟았다.
앞서 2022 카타르 월드컵에 갔을 때 중국 기자들을 여럿 만난 적이 있다. 중국축구대표팀이 월드컵에 출전하지 않았기에 이들은 어디까지나 '제3자'였고, 기자석 배정 등에서도 뒷전이었다.
그때 만들어진 중국 기자 이미지는 이번 대회 수영장 취재에서 완전히 깨졌다. 중국은 수영장에서 30개의 금메달을 쓸어갔다.
결선 및 시상식이 열리는 날엔 하루 종일 중국 국가가 'BGM'처럼 깔렸다. 도입부가 외워질 만큼, 지겹도록 들었다.
그래서 믹스트존 주인도 중국이었다. '7관왕'을 차지한 장산숴가 등장하면 중국 기자 40여 명이 몰렸다. 시끌벅적해도 아무도 제지할 수 없었다.
내심 황선우나 김우민이 장산숴의 콧대를 꺾어주길 바랐던 한국 기자들은, 장산숴는 물론 수영에 기자 40명이 오는 중국 수영 산업을 부러운 눈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기자들은 버스 배차 불편에서 오는 고통도 선수들과 '굳이' 함께 나눴다.
조직위원회의 엉망진창 버스 운영은 선수단과 미디어 버스를 가리지 않고 공평했다.
결승전 당일 버스가 없어서 훈련을 못했던 것만큼 황당하지는 않았지만, 현장에서 빠른 이동이 '생명'인 기자들도 오지 않는 버스와 제멋대로인 시간표에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2026년에 인터넷도 안 터지는' 사격장에서,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주택가 근대5종 경기장에서, 밤 11시 여기가 셔틀버스를 타는 곳인지 확신할 수 없었던 축구장에서 기자들은 혼돈의 나날들을 보냈다.
녹음기 하나 달랑 들고 오는 일본 기자, 셀카봉 끝에 달린 핸드폰을 들이밀며 찍는 중국 기자, 연필로 수첩에 열심히 메모하는 인도 기자, 아무 도구 없이 듣기만 하던 우즈베키스탄 기자 등 나라별로 취재 풍경도 달랐는데 한국 기자들만 전쟁터의 총처럼 노트북을 꼭 들고 다녔다.
경기 종료와 동시에 속보, 상보, 취재 기사가 모두 한국으로 날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제멋대로인 버스 시간 탓에, 정류장 근처 풀숲이나 주차장 연석에 앉아 노트북을 편 기자 불쌍한 무리가 있어서 가 보면 100% 한국 기자였다.
밖에서 지켜본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그 무리 안에 포함돼 있을 때가 더 많았다.
장어덮밥이 유명하다는 나고야인데 삼각김밥이나 먹으면 다행이었다. 한국은 이제 선선한 가을이라는데 여긴 '옷이 마를 날'이 없었다.
애국가 대신 엉뚱한 게 나오고 금메달을 따도 태극기가 올라가지 않는 등 '바람 잘 날'도 없었다.
그래도 행복했다. 선수들과 함께 뛰고, 함께 웃고, 함께 버스를 못 타고, (어쩌면 혼자서) 치열한 신경전까지 벌이며 기사를 썼던 16일의 시간이 뜨겁게 기억될 듯하다.
안녕, 나고야~호.
tr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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