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아시안게임, 논란이 감동까지 가려 아쉽다

펄럭이지 못한 태극기·애국가 대신 북한 국가
선수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스토리 조명 못 받아

대회 내내 불거진 논란이 대회가 주는 감동마저 가리기에 이르렀다. 2026.10.4 ⓒ 뉴스1 안은나 기자,김도우 기자,김민지 기자

(나고야=뉴스1) 안영준 기자

"하다 하다 이젠 애국가가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까지 체크해야 한다니."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현장을 찾은 동료 기자가 내뱉은 푸념이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 기자들은 경기장에 도착하면 일단 태극기가 잘 걸렸는지, 경기 전 애국가가 잘 나오는지부터 체크했다.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그게 지켜지지 않을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고'는 심심찮게 터졌고 기자들은 경기가 시작된 뒤에도 '기본이 지켜지지 않은 이유'를 알아보느라 바빴다.

한국이 이겼나 졌나, 누가 뭘 해서 이겼나보다 한국이 '애국가도 못 듣고 이긴'게 더 큰 뉴스가 됐다.

25일 일본 나고야 팔로마 미즈호 아레나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세팍타크로 여자 팀레구 결승 대한민국과 태국의 경기에서 패배 후 은메달을 확정지은 한국 박선주, 한예지가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2026.9.25 ⓒ 뉴스1 안은나 기자

유승민 대한체육회장은 이번 아시안게임을 '한국이 조직위원회에 항의 서한을 가장 많이 보냈던 대회'로 규정했다.

하키장에서는 애국가 대신 '북한 국가'가 나오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고, 축구팀을 태운 버스는 야구장으로 갔다.

결승전이 열린 중요한 날 농구 대표팀은 버스 배차가 없어 훈련이 취소됐다. 근대5종 장내 아나운서는 한국을 'REPUBLIC OF CHINA'로 소개했다. 축구에서 한국이 금메달을 땄지만, 태극기가 게양되지 않으면서 대회는 마무리됐다.

이처럼 이번 대회는 국제대회 품격에 어울리지 않는 운영 미숙과 연속된 파행으로 큰 논란을 빚었다.

조직위원회의 준비 부족과 안일한 대처는 선수들이 흘린 피와 땀의 가치를 퇴색시켰고 현장을 찾은 취재진과 팬들에게 깊은 피로감만을 안겨줬다.

3일 일본 아이치현 도요타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축구 결승전 시상식에서 태극기가 게양되지 않고 있다. 2026.10.3 ⓒ 뉴스1 김도우 기자

가장 아쉬운 대목은 이와 같은 잡음이 선수들이 만든 '감동의 순간'마저 빛을 잃게 했다는 점이다.

남자축구에서 금메달을 따고도 태극기가 일장기보다 아래 있는 장면, 묘한 사이인 남북의 국가가 바뀐 점 등은 '직관적'이고 '자극적'이다.

그래서 덜 자극적이지만 진한 여운이 있는 '선수들의 서사'가 묻혔다.

카누 에이스 김효빈(25·울산광역시청)은 생후 9개월부터 19세까지 보육원에서 자란 뒤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그는 자신을 따뜻하게 품어준 보육원 원장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눈물을 흘렸다.

스케이트보드 남자 스트리트 금메달리스트 강준이(18·대한롤러스포츠연맹)는 트릭 세션 1·2차 시기를 모두 실패했는데, 3차 시기 실패 후 관중석의 어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훈련장이 없어 타지를 떠돌며 연습하면서도 부족함 없이 뒷바라지해 준 어머니였다. 이후 그는 3차 시기에서 기적처럼 개인 최고점을 기록했고 어머니를 향해 울며 뛰어갔다.

24일 도쿄 아쿠아틱스 센터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수영 남자 400m 계영 결승에서 김영범이 김우민의 수모를 착용한 채 역영을 펼치고 있다. 2026.9.24 ⓒ 뉴스1 김민지 기자

한국 수영의 간판 김우민(25·강원도청)은 어깨 부상으로 이번 대회를 완주하지 못했다. 그는 통증으로 밤에 잠이 들 수 없는 상태임에도 동료들의 체력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계영 800m 예선을 뛰었고, 공들였던 개인 400m는 포기했다.

그동안 준비한 노력이 물거품이 되자 그는 눈물을 흘렸지만 동료들 앞에선 꾹 참고 관중석에서 결선을 응원했다. 김영범(20·강원도청)은 그런 선배의 마음을 읽고, 김우민의 수영 모자를 쓰고 출전하며 김우민과 '함께' 뛰었다.

피와 땀과 눈물로 만들어진 이 사연들의 잔상은 벌써 옅어졌다. 기억에 남는 건 펄럭이지 못한 태극기와 엉뚱하게 흘러나온 애국가에 대한 분통뿐이다.

스포츠가 주는 순수한 감동이자 숭고한 가치가 행정의 무능함에 가려졌다. 향후 열릴 국제 대회에서는 다시는 이런 아마추어적인 실수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스포츠의 가치가 논란에 가려지지 않는 스포츠 대회를 보고 싶다.

tre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