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게임 24년 이후 ‘한국 야구 vs 니폰 야큐’

(오키나와=뉴스1스포츠) 이창호 기자 = “저 친구들, 예전에는 우리가 필딩하면 쳐다보지도 않았다.”

조계현 KIA 수석코치가 지난 24일 오키나와 구장에서 열린 히로시마전에 앞서 경기 전 수비 훈련을 하는 선수들을 바라보며 아주 오래된 기억을 이야기했다. 한 때 일본 선수나 지도자들이 한국 야구를 한 수 아래로 깔봤다는 것이다.

“코치고, 선수고 모두 라커룸에 들어가 쉬곤 했다. 이젠 다르다. 특히 코치들은 더그아웃에 남아 일일이 체크하고 메모한다.”

조계현 KIA 수석 코치(오른쪽 두번째)와 코치들이 24일 오키나와 구장에서 경기 전 수비 훈련을 하고 있는 히로시마 선수들을 지켜보고 있다. ⓒ News1스포츠 / 오키나와=이창호 기자

한국 선수들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어도 언제든 쉽게 이길 수 있다는 듯 그저 우습게 여기던 때가 있었다. 냉정한 현실이었다.

해마다 2월이면 ‘야구의 섬’ 오키나와에는 일본과 한국의 프로야구 팀들이 줄줄이 모여든다. 올해도 일본 프로야구 10개 팀과 한국 프로야구 6개 팀이 오키나와에서 시즌 개막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요미우리, 히로시마, 요코하마, 주니치, 야쿠르트, 니혼햄 등 6개 구단은 삼성, 넥센, LG, SK, KIA, 한화와 수시로 연습경기를 갖고 실전 적응력을 높이고 있다.

양상문 LG 감독(왼쪽)과 하라 요미우리 감독이 25일 나하 셀룰러 구장에서 열린 연습경기에 앞서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다. ⓒ News1스포츠 / 오키나와=이창호 기자

“일본 1군과 경기한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울 때가 있었다. 어쩌다 연습 경기를 일정을 잡으려면 '2군과 하라'는 눈치를 주곤 했다. 그러나 이젠 달라졌다. 선뜻 응한다. 때론 일본 팀들이 먼저 연습경기를 제안하기까지 한다.”

김기태 감독이 이끄는 KIA는 지난 15일 야쿠르트을 시작으로 16일 라쿠텐, 17일 니혼햄, 19일 요코하마, 20일 라쿠텐, 24일과 26일 히로시마까지 총 7차례나 일본 팀과 연습 경기를 가졌다. 비롯 단 1승도 올리지 못했지만 승패의 결과를 떠나 한국 야구의 달라진 위상을 대변해줬다.

‘한국의 디펜딩 챔피언’ 삼성은 26일 오키나와 아카마 구장에서 넥센과의 연습경기를 치른 뒤 27일 야후돔에서 열리는 ‘일본 챔피언’ 소프트뱅크와의 경기를 위해 후쿠오카로 이동했다. 비행기로 왔다갔다 해야 하는 피곤한 일정이지만 기꺼이 받아 들였다. 예전엔 꿈도 꿀 수 없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젠 일본 야구도 한국 야구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인정하고 있다.

요미우리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25일 나하 셀룰러 구장에서 열린 LG와의 연습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 News1스포츠 / 오키나와=이창호 기자

김기태 감독을 비롯한 KIA 코칭스태프 중에는 1991년 첫 한일 슈퍼게임과 1995년 2회 대회에 선수로 나갔던 지도자들이 있다. 김 감독은 1회와 2회 대회에 연속 출전했다.

1회 대회 때 한국대표 선수들은 웃지 못할 이야기를 숱하게 남겼다. 첫 게임이 열린 도쿄 돔에서 내외야로 높이 솟구치는 공의 낙구 지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우왕좌왕했다. ‘빅 에그’란 별칭을 갖고 있는 도쿄 돔의 천정이 하얀 색이라 경험이 없던 한국 선수들에겐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한일 국교 수교 25주년과 한국프로야구 출범 10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프로야구 국가대표 선수들의 교류전이었지만 워낙 실력 차이가 뚜렷했다. 한국에선 대표 선수를 선발한 뒤 합숙 훈련까지 하면서 손발을 맞췄지만 일본 선수들은 시즌 종료 후 휴식을 즐기다가 한 자리에 모여 경기에 나설 정도였다. 아주 쉽게 생각했다.

1936년 프로야구를 시작한 일본과 1982년 출범한 한국의 맞대결은 똑같이 프로야구 대표 선수들끼리의 경기라지만 마치 성인들이 고교생을 데리고 한 수 지도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결국 한국은 선동열, 송진우, 류중일, 김기태 등이 출전한 1회 한일 슈퍼게임에서 2승4패를 기록했다. 결과보다 내용이 더 아팠다. 타자들은 상대 투수에 따라 맥도 추지 못했고, 투수들은 뭇매를 맞은 탓이다.

조계현 수석코치와 이대진 투수 코치, 김민호 수비코치는 2승2무2패를 기록한 2회 대회를 경험했다. 한일 슈퍼게임은 1999년 3회 대회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열리지 않고 있다.

프로야구 대표 선수들이 첫 교류전을 치른 지 어언 24년이 흘렀다. 한국과 일본 모두 당시 선수들은 각 팀의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슈퍼 게임 이후 ‘무등산 폭격기’에서 ‘나고야의 태양’으로 명성을 얻은 선동열을 비롯해 이종범, 이상훈, 구대성, 정민철, 정민태 등이 한국 프로야구를 거쳐 일본 무대에서 활약하며 한국 야구의 위상을 높였다.

아직 현역으로 뛰고 있는 이승엽, 김태균은 현해탄을 오가며 녹슬지 않은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또 이대호와 오승환은 일본 열도에서도 대접 받는 투타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했다.

한국 프로야구는 올해로 출범 34년째를 맞는다. 한국과 일본의 프로 팀들이 한데 모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선 시나브로 한국 야구의 현주소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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