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 구할 기회 3번이나 놓쳤다…그 후 싹 바뀐 아동학대 대책
[더(The)후-정인아 기억할게]④ 잇단 신고 종결 처리한 경찰
경찰·지자체 공조 체계 구축…전문가 "충분한 예산 지원 필요"
- 김종훈 기자, 박응진 기자, 박동해 기자, 한수현 기자, 신윤하 기자, 유채연 기자
(서울=뉴스1) 김종훈 박응진 박동해 한수현 신윤하 유채연 기자 = 지난 2021년 입양 뒤 부모의 장기간 학대로 16개월 영아 정인이가 숨졌다. 이후 최소 세 차례 아동학대가 신고가 있었지만 경찰이 아동학대로 판단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분노 여론이 들끓었다.
'구조 기회'를 번번이 놓친 경찰은 사건 이후 아동학대 사건을 지자체 전담 공무원과 합동 대응하고 신고자 보호 조치를 강화하는 등 관련 대응 체계를 재정비했다. 하지만 매년 40여명의 아동이 여전히 학대로 목숨을 잃고 있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담당 인력을 확충하는 등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수사기관에 따르면 당시 정인이의 학대 피해를 의심한 신고는 최소 세 차례였다. 첫 신고자는 입양된 지 100일가량 지난 2021년 5월 정인이가 다니던 서울 강서구의 어린이집 교사다.
교사는 정인이 몸 곳곳에서 멍 자국을 확인했고, 누군가 의도적으로 때린 흔적이라고 보고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은 기관은 경찰에 수사 의뢰했지만 경찰은 아이에게 안마하는 과정에서 멍이 생겼고 몽고점과 피부염을 멍이라고 오해한 것이라는 부모 해명을 믿고 사건을 종결 처리했다.
두 번째 신고자는 동네 주민이었다. 그는 아이가 혼자 수십분간 차량에 타고 있는 장면을 보고 아동학대로 신고했다. 또다시 기관을 거쳐 수사 의뢰된 부모는 경찰에서 당시 상황을 혼자 자는 습관을 들이기 위한 '수면 교육'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이번에도 혐의점이 없다고 보고 정인이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마지막 신고자는 소아과 의사였다. 어린이집 원장이 혼자 걷지도 못할 정도로 건강 상태가 나쁜 정인이를 병원에 데려갔고, 의사는 112에 전화를 걸어 영양 상태가 너무 좋지 않다고 학대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모와의 분리가 필요하다고 강하게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에도 경찰은 아동학대의 고의가 없다고 판단했다. 마지막 신고 이후 20일이 지난 2021년 10월 13일 정인이는 학대로 인한 심각한 복부 손상 등을 입고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에 실려 왔고, 끝내 숨졌다.
이후 '구조 기회'를 번번이 놓친 경찰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사건 관계자 중 일부가 중징계(정직)를 받았고 관할서장은 대기발령 조치됐다. 조직 수장인 경찰청장까지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이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김창룡 당시 경찰청장은 "국민 생명·안전, 사회적 약자와 관련된 사건에 대해서는 경찰서장에게 즉시 보고하는 체계를 갖추고 지휘관이 직접 관장하도록 해서 책임성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국회에서도 '아동복지법'과 '아동학대처벌법'을 개정하며 아동학대 대응 체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다. 가장 큰 변화는 초동대응 방식이다. 기존에는 신고를 접수한 경찰이 민간 아동보호 기관과 함께 출동했지만 개편 이후에는 지자체 아동학대 전담자가 경찰과 함께 현장에 가 분리 조치하는 등 후속 조치에 대해 함께 대응한다.
경찰은 당초 △긴급 치료가 필요한 경우 △보호자인 학대 의심자가 정신이상으로 아동을 학대한 경우 △생후 36개월 이하 영하에 대한 학대 등 '응급 아동학대신고'에만 현장에 출동했지만 정인이 사건 이후 모든 아동학대 사건에 출동하도록 체계를 강화했다.
이외에도 △공무원·경찰·의사·변호사 등 아동학대 전문가가 직접 참여하는 '아동학대 판단회의' 설치 △아동학대 보호시설 확충 △아동학대 전담 의료기관 지정 등의 후속 조치가 이뤄졌다.
전면적인 아동학대 대응 체계 변화에도 여전히 매년 수십 명의 아이들이 목숨을 잃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8월 아동권리보장원이 공개한 '2024 아동학대 주요통계'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아동학대로 인해 사망한 아이는 △2020년 43명 △2021년 40명 △2022년 50명 △2023명 44명 △2024년 30명으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연령별 사망 피해 아동을 보면 1세 미만이 13명(43.3%)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범위를 넓히면 미취학 시기인 6세 이하에 사망한 아이가 전체 69.8%를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개편된 아동학대 대책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충분한 예산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아동학대를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이웃과 시민들의 적극적인 신고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선숙 국립한국교통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제도나 시스템이 변하더라도 결국엔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라며 "아동보호 전담요원이 일을 해야 하는데 공무원이 아닌 공무직이라 처우가 좋지 않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전문성 확보를 위해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며 "존재하는 제도가 실제 작동하게끔 충분한 인력이나 예산이 확충되지 않은 게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짚었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어디가 부러지고, 심지어 죽어야 아동학대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며 "(주변의) 안일한 생각이 신고를 가로막는 주요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외국의 경우에는 '경찰보다 이웃이 더 무섭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벼운 일에도 머뭇거리지 않는다"며 "남의 집 일에 끼어들어 일을 키운다는 인식이 변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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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2020년 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정인이의 5주기(10월 13일)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정인이 사건을 계기로 아동학대 예방을 위한 다양한 제도와 시스템이 마련됐지만, 여전히 매년 40여 명의 아동들이 학대를 받아 사망하고 있다. <뉴스1>은 우리 아이들이 학대의 그늘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정인이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정인이 사건을 통해 주의를 환기하고, 아동학대 실태와 제언 등을 담은 기사 6편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