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를 딸처럼 생각"…성비위 가해 경찰관들 '똑같은 변명'

김철수 경찰청 인권조사계장 "가해자, 성인지 감수성 부족"
"조직적 회유, 사건 무마 우려에 신고센터서 성비위 전담"

ⓒ News1 이지원 디자이너

(서울=뉴스1) 이승환 김도엽 기자 =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은 조직의 대표적인 위험 요인이다. 구성원들의 사기를 꺾고 분위기를 흔들며 조직 명성에도 해를 끼친다.

경찰도 예외가 아니다. 조직 내 성 비위가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지면 경찰 전체의 신뢰도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직장 내 성 비위는 동료를 함께 일하는 동등한 파트너로 보지 않는 데서 시작됩니다. 동료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인권의식이 부족한 겁니다."

김철수 경찰청 인권조사계장(49·경정)은 지난 16일 용산구 한남동 경찰청 인권센터에서 진행된 <뉴스1>과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인권조사계는 전국 시도경찰청 18곳과 산하 경찰서 256곳에서 발생한 조직 내 성 비위 사건을 모두 조사하고 있다.

성 비위로 징계 받는 가해자들은 피해자를 향한 차별적 시각이 있고 성인지 감수성도 부족하다는 게 김 계장의 지적이다.

"나의 아랫사람, 내가 시키는 것을 해야 하는 사람, 나의 지시에 불평하지 못하고 반대의견을 내서도 안 되는 사람이라는 차별적 시각이 있습니다. 성인지 감수성의 부족으로 피해자를 성적 대상화하기도 합니다. 남성 직원을 대상으로 한 여성 상사의 성 비위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김 계장은 "조사 받으러 온 가해자들의 첫마디가 대부분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도와주려고 그런 것이다' '피해자의 오해다' '피해자를 딸처럼 생각했다'는 식"이라며 "자신의 행동이 피해자를 위한 것이라고 하거나 피해자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간부 성 비위 징계, 전체의 88%

특히 성 비위 전담 조사기구인 경찰청 성희롱·성폭력 신고센터(신고센터)가 인권조사계에 설치된 후 경찰이 조직 내 성 비위 사건에 더욱 엄격해졌다는 평가가 많다.

신고센터는 우리 사회에 '미투 운동'(Me too·나도 당했다)이 확산하던 2018년 3월부터 경찰 구성원 간 모든 성 비위 사건을 전담하고 있다.

인권조사계 소속 성 비위 전담 조사관 5명과 심리전문요원 1명 등 6명이 신고센터에 접수된 사건을 확인한 후 피해 발생 경찰서로 직접 찾아가 조사를 실시하고 심리 상담을 진행한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성 비위로 징계를 받은 경찰관은 총 42명으로 전년 27명보다 55% 증가했다. 그중 경위(21명)와 경감(14명) 등 경위 이상 간부급은 37명로 전체의 88%를 차지했다.

김 계장은 "신고센터가 전담하기 전만 해도 각 시도 경찰청에서 직장 내 성 비위사건을 처리했다"며 "그러나 피해자를 향한 조직적 회유와 사건 무마 시도, 피해자 신분 노출과 조사의 공정성 시비 우려가 적지 않았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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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신고센터는 성 비위 조사의 공정성과 전문성을 확보해 이런 우려를 해소하고 피해자를 더욱더 보호하기 위해 모든 성 비위 사건을 전담으로 처리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고센터가 판단하는 실무적 성희롱의 기준은 △업무 관련성 여부 △성적 언동 여부 △피해자가 원치 않은 행동이었는지 △피해자가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꼈는지 △합리적인 피해자 관점에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성적 언동인지 등이다.

예컨대 '러브 샷'을 요청하거나 '너희 집에서 술 한잔 더 하자' '딸처럼 느껴져 관심이 더 생긴다'는 발언은 성희롱으로 볼 수 있을까.

"양성펑등기본법에 따르면 성희롱은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 등과 관련해 성적인 언행을 해서 상대에게 성적 굴욕감과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피해자가 해당 발언을 듣고 불쾌하게 생각하고 일반 사람도 피해자와 같은 입장이라면 충분히 불쾌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면 성희롱이 성립될 수 있습니다."

◇"동료들의 차가운 시선이 더 힘들어"

김 계장과의 인터뷰 자리에는 이서율 심리전문요원과 조옥희 조사관도 참석했다. 이 요원과 조 조사관 모두 "피해자는 보호대상"이란 점을 분명하게 강조했다.

특히 상당수 피해자가 경찰관인 자신이 피해를 봤다는 사실을 혼란스러워한다며 2차 피해·가해를 방지해야 한다고 이들은 한목소리를 냈다.

이 요원은 "'사건 발생 당시 왜 거부하지 못했지' '나는 사랑받지 못한 존재인가'라고 자책하며 피해자는 자신과 끊임없이 싸운다"며 "그런 피해자에게 '당신 탓이 아니다''신고센터와 함께 헤쳐 나가자'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다'라고 꼭 얘기해 준다"고 했다.

김 계장은 "성 비위 피해보다 동료들의 차가운 시선에 피해자가 더 힘들다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피해자를 비난의 대상이 아닌 보호의 대상이자 함께 가야 할 동료로 인식하면 2차 피해는 근절될 것"이라고 말했다.

용산구 한남동 경찰청 인권센터.2021.07.16ⓒ 뉴스1이승환 기자

김 계장은 "신고센터의 목표는 신고센터가 경찰조직에 있을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라며 "성 평등 문화를 조성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mrle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