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구로공단 노동자, 난 소년공"…김영식 '크림빵' 1400억 매출 신화
- 김학진 기자

(서울=뉴스1) 김학진 기자 = 가난한 소년공에서 연 매출 1400억 원의 CEO로 거듭난 '크림빵 신화' 김영식의 성공 비결이 조명됐다. 자신의 성공을 직원과 이웃에게 돌려주며 '진정한 부'의 가치를 실천하는 김영식의 남다른 인생철학이 깊은 울림을 전했다.
9일 방송된 EBS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에서는 연 매출 1400억 원, '1초에 한 개씩 팔린 크림빵'을 만든 '빵만장자' 김영식의 파란만장한 인생사가 공개됐다.
그가 만든 크림빵은 속을 가득 채운 '크림 폭탄'으로 MZ세대의 입맛을 단숨에 사로잡으며 출시와 동시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날 방송에서는 '편의점 오픈런'까지 불러온 화제의 크림빵 제조 과정과 탄생 비하인드가 베일을 벗었다. 김영식은 "한국 정서는 손님이 오면 뭐든지 듬뿍 주지 않나. 그것처럼 크림을 아낌없이 꽉 채운 '한국형 크림빵'을 만들고 싶었다"며 개발 배경을 밝혔다.
하지만 이는 출시 전 직원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크림의 변질을 막으려면 냉장 보관이 필수였지만, 빵을 차갑게 하면 맛이 떨어진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김영식은 이를 기술 개발로 극복했다. 빵이 푸석해지지 않도록 수분을 공급하고, 크림을 넣어도 터지지 않도록 고무풍선처럼 늘어나는 반죽을 만들어냈다.
김영식은 구로공단 노동자였던 부모님 밑에서 5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도시락을 싸가지 못해 수돗물로 허기를 달랬고, 바닥에 떨어진 먼지 묻은 빵 조각을 주워 먹었을 정도로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 자랐다.
중학교 1학년이던 14살부터는 학교 대신 공장에 나가 월급 3000원을 받으며 일했다. 그럼에도 꿈을 놓지 않고 공부방 대신 동네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공부해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하지만 당시 서울 곳곳에 생겨나던 아파트를 보며 새로운 꿈을 품게 됐고, "공무원 월급 9만 9000원으로 아파트는 어림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과감하게 사표를 던졌다.
그리고는 파격적인 연봉 조건을 따라 중동 건설 현장의 근로자로 떠났다. 출국하던 날 비행기 안에 울려 퍼진 '고향의 봄'을 들으며 200여 명의 근로자가 함께 눈물을 쏟았다는 일화는 뭉클함을 안겼다. 그렇게 사하라 사막에서 총 6년을 근무한 끝에 아파트 6채 값에 해당하는 큰돈을 모아 귀국했다. 그는 "그 돈으로 평생 달동네에만 살아온 부모님께 아파트를 선물했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귀국 후에는 일본계 회사에 입사해 영업사원에서 임원까지 초고속 승진했다. 그러던 중 회사가 식품 사업에서 철수하자 이를 인수했고, 우여곡절 끝에 40대 후반 빵 회사 사장이 됐다. 이후 회사는 꾸준히 성장하며 오늘날 제빵업계를 선도하는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가운데 김영식이 서장훈에게 뜻밖의 러브콜을 보내 눈길을 끌었다. 크림빵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핵심 재료인 'Y우유'의 매출까지 동반 성장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에 김영식은 'Y우유' 모델인 서장훈에게 "크림빵 모델로 한번 나와달라"며 깜짝 제안을 건넸고, 서장훈은 "사이즈를 크게 만들어서 '빅 크림빵'으로 출시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보태며 화답했다.
이날 방송에서는 김영식의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노력도 조명됐다. 김영식은 "저희 부모님이 구로공단 노동자 출신이시고, 저도 어렸을 때 공장을 다녔다"며 직원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경영 철학을 강조했다.
실제로 그의 공장은 사람이 접근하면 기계가 멈추는 센서를 곳곳에 달아 끼임 사고를 예방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또한 김영식은 직접 협회를 설립해 20년간 23억 원어치의 식품을 기부하며 이웃과 온정을 나눠왔다.
배불리 먹는 것이 소원이었던 그는 "젊은 세대의 사랑을 받는 제품을 만들며 오래도록 일하고 싶다"는 마지막 소원을 전하며 진한 여운을 남겼다.
khj80@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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