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경계선지능인에 꽂힌 폭언·노동착취…'아빠 자처' 사회복지사의 이면

[경계선의 집]②대안가정 운영 사회복지사, 폭언과 보고 독촉 일삼아
온갖 잡무 떠넘기면서도 "고용관계 아냐"…장애인복지법 위반으로 피고소

편집자주 ...[경계선의 집] 경계선지능인과 지적장애인, 그리고 이들의 '아빠'를 자처하던 사람이 함께 살던 대안가정. 아빠는 경계선지능 장애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아들들이 아빠로부터 탈출했다. 아들들은 폭행과 원치 않는 신체 접촉, 노동 착취를 당했다고 했다. 그 집에선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뉴스1>은 피해를 입었다는 '아들들'과, 억울하다는 '아빠'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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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권진영 신윤하 권준언 기자

저는 그대로 한 2~3주만 더 있었으면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것 같아요

경기도에 위치한 A 경계선지능인 지원단체에서 약 1년 5개월간 장애인활동지원사(이하 활동지원사)로 활동한 정가람 씨(가명·20대)는 굳은 표정으로 당시를 떠올렸다.

경계선지능인은 지적장애보다는 경미하지만 일상 판단이나 의사결정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일컫는다. IQ 70~85 사이로 분류되며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이 이에 해당한다. '지적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선에 선 사람들'이라고도 불린다.

그 자신도 경계선지능인이었던 정 씨는 전역 후 전부터 알고있던 지역단체의 프로그램을 통해 A 단체를 접했다. '평소 관심이 있던 사회복지 계열 대학 진학을 도와줄 수 있다'는 제안이 결정적이었다. 숙식은 A 단체가 운영하는 대안가정에서 해결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 씨는 자신이 "머저리" 취급을 당하며 폭언의 대상이 될 줄은 상상조차 못 했다.

17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A 단체와 소속 대안가정에서 활동하던 활동지원사들은 폭언을 들어가며 노동력을 착취당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보고 독촉하고 욕하는 '아빠'…뚜렷했던 상하관계

당시 A 단체는 사회복지사 B 씨가 대표를 맡아 이끌고 있었다. 그는 방송 매체와 여러 인터뷰에서 '다섯 아이들의 아빠'로 소개됐다. 친자식은 아니지만 부모같이 경계선지능인 등 입주자를 돌보고 있다는 의미에서다.

취재진이 확보한 녹취에 따르면, '아빠'는 사소한 실수에도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었다. 지시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제 정신 아니니?", "나한테 말을 하는 거냐, 짓껄이는 거냐"는 질책이 날아들었다.

B 씨는 정 씨에게 "그 사람한테 전화했어?"라는 식의 애매한 질문을 던지고는 정 씨가 '그 사람'이 누구를 지칭하는지 이해하지 못하자, "뭐라는 거야 XX 놈아"라고 소리를 질렀다.

당황한 정 씨에게 B 씨는 "이 머저리를 어떻게 해야 되지?"라거나 "정신 안 차리면 너 아웃이라고 분명히 얘기했는데?", "너는 내가 보고하라고 했는데 보고를 안 하니"라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B 씨는 해명을 요구하는 취재진에게 "그럴 만한 상황이 있었겠죠"라며 폭언의 책임을 도리어 활동지원사들의 탓으로 돌렸다.

대안 가정 밖으로 나가는 모든 이동은 근무시간과 상관없이 보고 대상이었다.

정 씨와 함께 활동지원사로 일한 김나운 씨(가명·20대)는 평소 정해진 경로 외에는 이동이 제한됐다며 B 씨가 "본인이 다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김 씨는 A 단체의 대안가정에서 약 4개월간 머무르다가 가족의 도움으로 몰래, 겨우 탈출했다. 기존에도 마른 편이었던 김 씨는 A 단체에서 생활하는 동안 체중이 5㎏ 이상 줄고 지병인 뇌전증 약을 제때 복용할 수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사실상 24시간 노동…장애인 관련 없는 업무까지 도맡아

정 씨와 김 씨 두 활동지원사는 각자 맡은 지적장애인을 지원하는 업무 외에도 대안 가정 내 각종 허드렛일에 동원됐다.

B 씨의 대학원 학위 증서를 대신 수령해주거나 대안가정에 살고 있는 개·고양이를 관리하는 일, 택배 정리, 인터넷 카페 관리 등 장애인 지원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까지 활동지원사들의 몫이었다.

김 씨는 관계 없는 행정업무를 지시받고 이를 수행하지 않자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가 지시받은 일은 지역 '마을 공동체 사업' 신청 작업이었다. 활동 지원금 약 500만 원이 걸려 있었다.

그는 "하고 싶지 않다고 계속 거절했다. 그러나 신청 기간을 못 지키고 넘겨버리자 갑자기 잘 때쯤 본인 침대로 불러서는 명치를 주먹으로 쳤다"고 했다. B 씨는 이에 대해 "그런 기억은 없다"며 폭행을 부인했다.

B 씨는 활동지원사들과의 직접적 고용관계 역시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해당 "봉사자나 활동지원사가 급여를 받은 적 없어서 고용 관계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사실상 활동지원사들이 대안가정 내 아이들을 책임지는지 묻는 말에는 "제가 그러려고 활동 지원을 쓰는 거 아니냐. 내가 케어 하면서 활동 지원 선생님이 있을 필요가 왜 있느냐"고 반문했다. 사실상 정 씨와 김 씨의 근로성을 인정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특히 김 씨는 B 씨의 권유로 활동지원사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A 단체 대안가정으로 영입된 후 근로 계약서를 쓴 적이 없다고 토로했다.

통상적으로 장애인활동지원사는 재가복지센터·사회복지법인 등과 고용 관계를 맺고 일한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5년 장애인활동지원 사업안내'는 활동지원인력과 활동지원기관의 장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에 따라 근로 시간은 1일 8시간, 주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합의 하에 연장 근로를 한다고 해도 주 12시간 한도 내에서만 가능하다.

정 씨와 김 씨를 포함해 A 단체에서 활동한 활동지원사 및 봉사자 3명은 전날 서울 광진경찰서에 장애인복지법 위반·폭행·강요 혐의 등으로 B 씨를 고소했다. 광진경찰서는 사건 발생지인 경기남부경찰청에 해당 건을 이첩할 계획이다.

realkw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