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의 확장] 내 친구의 고향은 어디인가? - 제주도 2박3일의 기적

편집자주 ...[시선의 확장]은 흔히 '북한 업계'에서 잘 다루지 않는 북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그간 주목 받지 못한 북한의 과학, 건축, 산업 디자인 관련 흥미로운 관점을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청년역사기행에 참여한 재일동포 청년들과 남쪽 청년들.ⓒ News1

(서울=뉴스1) 김명준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사무총장·영화 '우리학교' 감독 = 역대급 태풍이 강타하기 직전이었던 여름의 끝자락에 2박 3일 동안 제주를 다녀왔다. 내가 속한 단체의 청년 역사 기행에 스텝으로 참가한 것이다. 약 30여 명의 참가자 중 1/3은 국내외에 거주하는 재일동포 청년들이었고 나머지는 남쪽의 청년들이었다. 재일동포 3세, 4세 청년들과 남쪽의 청년들이 만나 우리의 숨은 역사를 배우고 교류하면서 평화로운 미래를 열어가자는 취지다. 5년 전부터 매년 일본에서 열렸다가 코로나로 중지되면서 올해 제주도를 무대로 다시 열렸다.

2박 3일 동안 제주 4·3 평화기념관, 북촌마을 학살 현장, 4·3 생존자 증언 듣기, 재일 제주인 센터, 일제강점기 진지동굴, 제주인 간첩 조작 피해자와의 만남 등 1분 1초도 낭비가 없었던 빼곡한 일정이었다. 역시 다크투어의 장점은 역사를 글로 배운 사람들을 겸손하게 만드는 것. 그리고 함께 현장을 걷는 사람들과 나누는 역사에 대한 구체적 상상이다. 함께하는 사람들과 만들어내는 시너지 효과가 클 것이다. 이번 기행이 특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 태어나고 자란 배경이 다른, 하지만 하나의 뿌리인 재일동포 청년들과 남쪽 청년들의 만남이었기 때문이다.

마을 어르신이 탄 스쿠터를 쫓아 뛰어가는 청년들.ⓒ News1

역시 이들이 만든 일정 안에는 좀 특별하고 낯선 기획이 있었다. 모든 일정이 끝난 후 여행에 동참한 청년들의 가슴에 가장 특별한 경험으로 남았다는 독특한 기획이었다. 일명 '미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간단히 말하면 이번 기행에 동참한, 또는 동참하지 못한 재일동포 친구의 '고향'을 남쪽 친구들이 함께 찾아보자는 거다. 고향 찾기가 뭐 그렇게 특별하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게 재일동포 4세, 5세의 고향이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본적지'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알기 쉽겠다. 엄격히 말해 이때의 '고향'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고향'이니까.

이 행사가 염두에 두는 대상은 '올드커머', 즉 일제강점기 때에 일본에 건너가 돌아오지 못한 조선 사람의 자손이다. 1세와 달리 2세부터는 친척방문이나 의도적인 탐색이 아니고서는 고향을 '기억'할 수 없다. 나무와 들판, 집들을 기억하지 못하고 거기 같이 살았던 이웃 사람들을 기억할 수 없다. 해방은 되었지만 미국, 일본의 정책으로, 분단으로, 전쟁으로, 기나긴 냉전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재일동포 2세에게 '고향'이란 '기억할 수 없는 그리움'이다. 1세 부모가 지어낸 어떤 향수에 찬 얼굴만이 이들에게는 고향의 기억일 수도 있고, 차별과 빈곤에 시달리던 재일동포 공동체 속에서의 소소한 경험이 고향을 대신하는 기억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것이 세대를 거쳐 4세, 5세로 이어지면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어떤 세대는 그 희미해진 기억을 여태껏 붙잡고 있을 수도 있고 어떤 세대는 이미 훨씬 전에 자의 반 타의 반 고향에 대한 기억을 소실했을 수 있다.

애초에 '미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 큰 기대는 없었다. 할아버지와 그 형제들의 이름, 그들이 남긴 80년 전의 주소를 가지고 무작정 길을 나서는 무모함이 그저 청년답다고나 할까. 그 정도였다.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지 모를 그 주소지를 눈으로 확인만 하고 돌아와도 당사자 즉, 재일동포 4세 본인과 남쪽 친구들에게는 큰 수확이 될 거라는 정도의 기대였다. 하지만 반나절 동안 땡볕에서 제주도의 작은 마을을 헤매다 돌아온 청년들의 반짝이는 눈에서 놀라운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5개 조, 5~6명의 조원으로 구성되어 각 조에는 재일동포 친구들이 1~2명 들어있었다. 그 친구들의 고향을 찾아가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약 4시간가량의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의 체험을 저녁에 발표해야 하는데 80여 년의 흔적을 찾는데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택시를 타거나 버스를 타고 옛 주소지에 도착, 마을회관을 우선 찾는다. 거기에 그 마을의 토박이 어르신들이 있고 그 어르신들에게 할아버지의 이름을 들려주면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했다.

"음~ 문00 씨? 글쎄 들어본 적이 없는데. 저 건너 집에 000 씨가 사는데 이 마을 사정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이야. 거기 가보자."

친구의 뿌리를 찾아주겠다는 이 기특한 청년들을 대견하게 여긴 어르신이 스쿠터를 타고 무작정 그 집으로 달리니 그 뒤를 쫓느라 체력을 다 소진한 청년들. 마침 그 000 씨가 이야기를 듣고

"문00 씨 먼 친척이 근처에 사는 데 전화 넣어줄게."

제주도에서 지정한 문화재로 남은 할아버지의 집에서 설명을 듣고 있는 청년들.ⓒ News1

심한 제주도 사투리에 무슨 말인지 영문도 모르고 있던 청년들은 문00 씨의 손녀가 왔다는 소식에 다급히 달려온 그 친척에게 생전의 할아버지, 아버지에게는 들을 수 없었던 문00 씨 일가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생전의 할아버지가 남긴 주소도 틀렸다고 한다. 친척이 수정해 준 주소로 가 보니 지금은 빈터였다. 그래도 정확한 주소를 찾았다. 끊어진 기억이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저에게 고향에 대한 추억은 구체적인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찾아올 이유가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제 고향에 찾아올 이유가 생겼습니다. 여기에 할아버지를 알던 친척이 있고 그를 기억하고 이제 저를 기억해 주는 마을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외에도 일가가 제주도를 떠나 일본으로 건너가서 빈집으로만 있던 가옥이 묘하게도 4·3을 피하고 현대사를 무사히 넘겨 제주도의 문화재로 남은 집의 손녀가 겪은 일화도 특별하다. 이 조는 두 팀으로 나뉘어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가 목적지를 묻자 '000 가옥'으로 가자고 했다.

"어? 여기 내가 아주 잘 아는 곳인데? 여기는 왜 가나요?"

"저희 재일동포 친구의 고향을 찾아가는 건데요. 조00라는 친구인데 그 가옥의 원주인의 증손녀거든요."

"뭐라고요? 내가 그 집을 20년 동안 관리하던 사람인데 그 손녀가 왔다고?"

몇 십만분의 일의 기적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기사는 다른 팀에 속해 택시를 타고 조00 가옥으로 온다는 손녀를 청년들과 함께 기다렸다. 목적지에 내린 재일동포 4세 조00은 처음 보는 사람이 마치 오랫동안 보지 못한 친척 동생을 만난 것처럼 반갑게 자신을 맞아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기적의 기사님 덕분에 청년들은 조00의 6촌, 숙모를 만날 수 있었다.

조00은 당초 이 기획에 참여할 때 걱정이 앞섰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4·3을 피해 일본으로 건너갔고 사회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던 그는 해방 직후 만들어진 재일동포의 조직인 '재일조선인연맹'(조련)과 '재일조선인총연합'(총련)에서도 일했다. 이것이 가혹한 냉전 시대에 본토의 친척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익히 들었다고 한다. 연좌제가 존재하던 시절이었다. 친척을 만나봤자 차가운 시선으로 자신을 대하거나 어쩌면 만나주지도 않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게 기우였다. 그 집 마당에 모인 청년들에게 6촌 친척은 조00의 할아버지와 그 일가가 겪은 현대사를 담담히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 안에는 어떤 원망도 회한도 없었다고 한다.

2박3일의 빼곡한 일정을 모두 소화한 후 하나가 된 청년들의 얼굴.ⓒ News1

"이 행사에 오기 전 저는 많이 불안했어요. 하지만 이제 그 불안함이 없어졌어요. 고향이란 참 따뜻한 것이구나 느꼈어요. 이제 안심하고 남쪽에 올 수 있을 것 같아요."

재일조선인의 '고향'은 95% 이상이 남쪽이다. 제주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등등. 분단과 전쟁, 차별과 가난을 통과한 그들의 삶의 색깔은 무지개만큼이나 다양하고 스펙트럼이 넓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사연이 거기에 숨어있다는 말이다. 세대를 이어 뿌리를 지켜 온 그들에게 다른 디아스포라에는 없는 것이 있다. 고향에 대한 기억이 '단절'된 것이다.

'단절'은 '분리'를 의미한다. 가족의 분리를 의미하고 떠나온 땅과 그 사람들과의 분리를 의미한다. 공통의 기억과 문화를 소유하는 무리를 '민족'이라 한다면 민족의 분리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 그렇기에 자신의 근본을 안다는 것은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 자신도 속했음을 깨닫는 작업이다. '내 친구의 고향은 어디인가'는 재일조선인 4세 본인에게는 고향 땅 어딘가에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안심시켜 주는 일이었고 함께 동행한 남쪽의 친구들에게는 우리의 근현대사가 잉태한 아픔이 나와 내 친구의 일임을 몸소 깨닫게 해 주는 일이었다. 결국 우리는 서로 어딘가에서 이어지고 있음을 책이 아니라 현실로 똑똑히 보여주는 일이었다.

물론 제주도라는 지역의 특성 때문에 이 청년들이 겪은 긍정의 경험이 다른 지역에서도 똑같이 작용하리란 보장은 없다. 그만큼 우리의 근현대사에 깃든 아픔이 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이 오랜 시간 단절되었던 기억을 이어주는, 또는 다르다고 여겼던 서로를 이어주는 일이었음을 고맙게 생각한다. 경험 좀 해 본 어른인 나로서는 이것저것 재면서 결국 더 앞으로 나가지 못할 일을 과감하게 실천한 청년들에게 부끄럽기도 하다.

'우리는 하나'라는 이 추상적인 말을 구체적인 상상력과 대담한 실천을 통해 현실로 가능케 해준 이 청년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김명준 조선 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사무총장/영화 감독ⓒ News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