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셰익스피어가 말했다. 계획대로 못 산다고"

변창구 서울대 영문과교수 정년퇴임…학생에서 교수까지 46년
셰익스피어 전문가 "이제 자유인, 행복한 연기 해보고 싶다"

변창구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가 지난달 31일 정년 교수 퇴임식에서 퇴임사를 하고 있다. (서울대 제공) ⓒ News1

(서울=뉴스1) 박정환 기자 = 지난 8월31일 서울대학교에서 정년교수 퇴임식이 열렸다. 65세 정년을 맞은 17명의 교수들은 홀가분하지만 만감이 섞인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지난날을 회고했다.

이날 대표로 연단에서 퇴임사를 한 사람은 변창구 영어영문학과 교수(전 서울대 교육부총장)였다. 국내 대표 셰익스피어 전문가답게 그는 퇴임사에 셰익스피어의 명언을 녹여냈다.

"셰익스피어는 이 세상은 무대요, 인간은 연극이라는 인생 속에서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배우라고 말했다. 자유인이 된 저는 행복한 연기를 해보고 싶다."

그에게 있어 '행복한 연기'란 무엇일까. 27년 동안 서온 강단을 떠나는 그의 소회를 퇴임식 다음날인 1일 직접 들어봤다.

"여기 봐, 짐 싹 치웠잖아요."

인터뷰 약속시간에 15분 늦은 변 교수가 잠겨진 교수연구실 문을 열며 말했다. 점심약속이 길어져 부랴부랴 달려왔다는 그다. 문틈으로 살짝 본 연구실은 휑하니 비어있었다. 빈 연구실보다는 분위기 좋은 건물 앞 정원 벤치에서 대화를 나누자고 합의했다. 초가을 햇살이 따스했다.

"여기가 제일 애착이 가는 곳이죠. 3층 연구실 창문에서 보면 바로 보이거든요. 머리 식힐겸 산책도 하고…."

정원은 인문대학 건물이 에워싼 한 가운데 있었다. 개강 첫날이라 학생들의 발길과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았다. 변 교수는 27년 동안 이곳에서 개강을 맞이했다.

변 교수가 처음 서울대와 연을 맺은 건 교수 이전에 학생 때였다. 1970년 서울대 영문학과에 입학한 그는 학생운동이 한창이던 시기에 학교생활을 보냈다.

"저는 내성적이고 조용한 학생이었어요. 데모는 뒤에서 따라다니고, 경찰에게 얻어맞기도 했는데 구속되거나 신문에 나거나 하는 정도는 아니었고요."

무탈하게 대학시절을 보낸 그는 졸업 후에도 무난하게 무역회사에 입사했다. 자신을 가르쳤던 교수가 대학원 진학을 권유했지만 수출역군을 외치던 그때에 무역회사는 매력적인 직장이었다. 그런데 그는 10달만에 사표를 쓰고 만다. 술도 못하는데 회식이 잦아 버텨낼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퇴직 후 스승의 권유가 생각나 대학원에 도전했다. 한동안 펜을 놓은지라 겨우 대학원 시험에 합격했다. 석사학위를 따고 장학금을 받아 미국 유학을 하고 돌고돌아 1989년 교수 신분으로 서울대에 다시 들어왔다.

학생 때도 교수 때도 그는 여전히 영문과였다. 왜 하필 영문과였을까. 그는 "문학을 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 있었는데 영문학이면 좀더 뭔가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며 소박한 이유를 댔다.

◇"셰익스피어가 말했다. 계획에 안달하지 말라고"

그는 국내에서 알아주는 셰익스피어 권위자다. 2000년부터 2년 동안 셰익스피어학회장을 역임하고 관련 강의 등을 수차례 했다. 셰익스피어의 매력에 빠지게 된 계기를 그는 하나씩 설명했다.

"다른 영문작품들은 두세번, 많게는 다섯번 정도만 봐도 대충 이해가 되요. 그런데 셰익스피어 작품은 수십번 읽어도 그 세계가 무궁무진합니다. 아무리 살아도 모르는 인생처럼,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는 인생이 담겨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인생이 담겨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가장 좋아하는 작품인 '리어왕'을 들어 설명했다.

"리어왕에 나오는 구절 중에 '신은 우리 인간을 장난삼아 죽인다. 마치 15살 난 못된 소년이 자기 발밑에 있는 파리를 딱 잡아 죽이듯이'라는 부분이 있어요. 비극적인 얘기지만 그만큼 인간은 굉장히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환기시키는 거죠."

"여기서 신은 거대한 운명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인간은 다가올 운명 앞에서 나약해요. 내게 다가올 운명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좋은 일이 닥치면 겸손하고 세상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도 안달하지 않는 것. 최선을 다하되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단 거죠."

그러면서 변 교수는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하는데 너무 안달하지 말라"라고 조언했다.

그는 "인생을 계획하고 노력한만큼 이뤄진다는 자세. 물론 올바른 자세이지요. 그런데 인생이 뜻대로 되나요. 전혀 예측 불가능하고 불행도 겹칩니다. 계획처럼 안 되도 그건 네가 어떻게 할 순 없다. 세상은 늘 그렇게 돌아간다. 셰익스피어 전 작품은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변 교수 역시 계획처럼 되는건 없었다. 나서기 싫어하는 성격의 그는 뜻하지 않게 굵직한 보직을 많이 맡았다. 2002년 서울대 교무부처장을 시작으로 교무처장과 인문대학장, 2012년에는 교육부총장과 대학원장을 지냈다.

"처음엔 정운찬 총장께서 보직을 제의하셨는데, 그전에 일면식도 없어서 좀 의아했어요. 막상 보직을 맡으니 계속 맡게 되더라고요. 나름 보람이 있긴 했지만 연구를 왜 안하고 싶었겠어요. 보직 안한 동료 교수들이 2~3년에 한번씩 책을 썼다고 보내줍디다. 저는 10년간 한 권도 못썼는데 그때마다 상당히 억울했죠."

보직을 맡았을 당시 서울대에선 대한민국을 뒤흔들 만한 이슈들이 터져나왔다. 2006년 '황우석 사태'가 대표적이다. 당시 교무처장이었던 변 교수는 황 교수의 파면을 결정한 서울대 징계위원회 결정을 직접 발표했다.

"그때 너무 힘들었어요. 황 교수와는 이전에 차도 마시고 저녁도 먹고 나름 알고 지냈는데. 그 인간적인 고뇌가 이해가 되더군요. 그래도 원칙은 원칙이니까. 당시 본관 앞을 나서면 수많은 황 교수 지지자들이 '매국노 변창구' 피켓을 들고 항의하기도 했어요. 마음고생이 심했죠."

서울대 법인화 추진이 한창이던 2011년에는 인문대학장을 맡아 법인화에 대한 교수들의 우려의 목소리를 모아 총장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당시 생각에 변함이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법인화 추진 과정에서부터 너무 급하게 된 측면이 있다"며 "법인화는 대학 자율화를 보장한다는 것인데 아직 완전한 자율성을 보장받지 못한 것 같아 아쉬운 부분이 있다"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성공과 실패 모두 내덕, 내탓 아냐"

27년 강단에 서면서 김 교수는 기억에 남는 성과로 2011년 인문대학장 시절 '아시아언어문명학부'를 설립한 것을 꼽았다. 서양 언어학과가 대부분인 상황에서 아시아 언어를 배울 수 있는 학문적 지평을 넓히고자 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동안 스쳐간 수많은 제자들도 기억에 그대로 담았다. 그중 특히 안타깝게 낙오한 제자가 기억에 남는듯 했다.

"정말 똑똑한 학생이었는데 석사를 거치면서 조울증이 있어 괴로워하다가 결국 학업을 그만뒀어요. 공부를 너무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강박증이 자리잡은 탓입니다. 서울대 학생들이 이처럼 괴로워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요. 서울대생이라는 자의식이나 완벽주의, 주위에서의 기대감 등 다양한 요인 때문이죠."

"그러다보니 자신이 진정하고 싶어하는 것에 용기를 못 내는 경우도 많습니다. 혹시나 실패해서 무너질까봐 두려운거죠. 비단 서울대생뿐만 아니라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청년들도 뭔가를 하기 두려운 시대입니다."

변 교수는 언어학적인 설명을 덧붙여 청년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날 우리는 성공한 사람을 '위너'(winner), 패배한 사람을 '루저'(loser)라 하지만 옛날에는 승자를 'fortunate'(운좋은), 패자를 'unfortunate'(운이 좋지 않은)라고 썼다고 합니다. 운을 뜻하는 'fortune'의 어원은 로마신화에 나오는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Fortuna)에서 왔고요."

"즉 운명의 여신이 손을 잡아주면 운 좋게 성공한 거고 손을 놓치면 불운하게도 실패하는 것이죠. 성공과 실패는 그런거에요. 성공해도 온전히 내 덕으로 생각하지 말고, 실패해도 온전히 내 탓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시간은 어느덧 약속한 인터뷰 시간인 한 시간이 훌쩍 넘었다. 그가 문득 처음 만난 시간을 언급한다. '15분' 늦게 만난 것도 셰익스피어 말대로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단다. 문득 그의 퇴직 후 계획이 궁금해졌다.

"별다른 건 없고 일단 쉴 겁니다. 학교에 갈 곳도 없고, 인터뷰 끝났으니 집에 가서 잘거에요."

계획없이 홀연히 떠나는 그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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