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처음 입은 옷 어디로 갈까…말레이 작가가 묻는 '기후 육아' [황덕현의 기후 한 편]

낡기 전에 작아지는 유아 의류…작품으로 전환한 말레이 작가
섬유폐기물 연 9200만톤…옷 입는 기간은 36% 짧아져

싱가포르 내셔널갤러리 어린이 비엔날레에 설치됐던 말레이시아 작가 듀오 '이산화탄소'(Co2_karbondioksida)의 작품 '판타지'(Fantasy) ⓒ 뉴스1

(세종=뉴스1)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 지난 6월 말 딸이 건강하게 태어났다. 늦은 결혼 뒤 노력 끝에 만난 아이였다. 정신없는 와중에 쏟아지는 축하 속에 몇몇 선물이 있었다. 새 물건은 감사했지만, 쓰다가 물려준 옷과 장난감도 눈에 들어왔다. 기후·환경 분야를 취재해서인지 새것보다 덜 새롭지만 더 많은 이야기를 담은 물건들이 인상 깊다.

부모에겐 하루하루가 길겠으나, 사실 아이는 빨리 큰다. 산후조리원에서는 신생아가 하루 30~50g 정도 자란다고 설명하는데, 체중 3.7㎏으로 태어난 아기 기준으로는 하루 0.8~1.4%씩 몸집이 커지는 셈이다. 이를 체중 75㎏ 성인으로 환산하면 매일 약 600g~1㎏씩 몸무게가 늘어나는 것과 맞먹는 성장 속도다. 사람의 일생에서 가장 빠른 성장기라는 말이 실감 난다.

옷은 금방 작아지고, 각종 장난감은 잠시 흥미를 끌다 어느 순간 손에서 멀어질 것이다. 어른의 옷은 낡아서 버려지는 경우가 많지만, 아이의 옷은 낡기도 전에 작아진다. 그래서 육아는 사랑의 시간이면서 동시에 소비가 급격히 늘어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지난 3월까지 싱가포르 내셔널갤러리 어린이 비엔날레에 설치됐던 말레이시아 작가 듀오 '씨오투'(CO2_karbondioksida, 이산화탄소)의 작품 '판타지'(Fantasy)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했다. 작가 부부 오스카 리와 셀린 탄은 당시 2살이던 딸 퀸에게서 영감받아 헌 아기 옷과 장난감을 모아 하나의 설치작을 만들었다.

작품에는 130㎏의 어린이 옷과 약 400개 장난감이 쓰였다. 더 이상 입지 못하는 옷, 더 이상 갖고 놀지 않는 장난감은 버려지지 않고 전시장 천장에 매달린 모빌과 부드러운 큐브, 아이들이 만지고 누울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누군가의 첫 옷과 첫 장난감이 다른 아이의 상상력이 된 셈이다.

씨오투는 아이가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물건은 어디로 가는지, 쓰레기통일지 혹은 다른 가족일지를 묻는다. 이 질문이 가볍지 않은 것은 아기 옷 한 벌은 너무 작고 가볍지만, 그 옷이 만들어지고 버려지는 과정은 절대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섬유 폐기물은 이미 거대한 환경 문제가 되고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매년 약 9200만톤의 섬유 폐기물이 발생하고, 의류 생산은 2000년 이후 2배 가까이 늘었지만 옷을 입는 기간은 약 36% 짧아졌다고 분석했다.

옷은 더 많이 만들어지고 더 짧게 입힌다. 빠르게 작아지는 아이 옷과 빠르게 바뀌는 유행은 서로 닮았다. 모두 아직 쓸 수 있는데도 다음 것으로 밀려난다.

물려받은 아기 옷이 인상 깊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단순한 절약이 아니었다. 앞서 한 아이를 감싸던 옷이 다른 아이에게 건너오는 일이다. 물건은 낡았지만, 쓰임은 끝나지 않았다. 누군가의 시간이 다른 가족의 시간으로 이어졌다.

물론 물려 쓰기만으로 육아 소비의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는 없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많고 안전과 위생도 중요하다. 모든 물건을 다시 쓰자는 말은 현실적이지 않다. 다만 새것을 사는 일이 당연한 만큼 다시 쓰는 일도 자연스러워져야 한다.

'판타지'가 흥미로운 이유는 헌 물건을 초라하게 보여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작품은 버려진 옷과 장난감을 죄책감의 대상으로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들이 누워 보고, 만지고, 상상할 수 있는 꿈의 공간으로 바꾼다. 자원순환을 훈계가 아니라 놀이로 보여준다.

아이를 낳고 보니 '미래세대'라는 말이 추상적이지 않게 됐다. 딸이 처음 입은 옷은 언젠가 작아질 것이다. 장난감도 언젠가 손에서 멀어질 것이다. 그때 그것을 쓰레기로 보낼지, 다른 아이의 시간으로 넘길지는 부모와 사회가 함께 정할 일이다.

아이가 자란다는 것은 물건이 남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후위기 시대, 육아를 시작하며 우리는 아이에게 무엇을 사줄 것인가 보다 먼저 아이가 쓰고 남긴 것을 어디로 보낼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황덕현 경제부 기후환경전문기자ⓒ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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