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영화제 '새활용 굿즈'와 영국 농부들…기후위기를 묻다 [황덕현의 기후 한 편]
'기후대응 농업' 갈등 그린 '데릭 대 데릭'
-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전주=뉴스1)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 전주국제영화제는 부산국제영화제처럼 거대한 규모를 내세우는 영화제는 아니다. 대신 독립영화와 실험영화, 사회 문제를 다루는 작품들을 꾸준히 소개해 왔다. 여러 차례 기후변화나 환경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도 내비쳤다.
최근에는 폐현수막이나 버려진 자재를 활용한 새활용(업사이클링) 굿즈도 꾸준히 내놓고 있다. 8일까지 열렸던 제27회 행사에도 영화관 영사막(스크린)이나 현수막을 활용한 제품을 내세워 눈길을 끌었다.
물론 이런 시도가 곧바로 '친환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지속가능성을 강조하는 문화행사가 오히려 또 다른 소비와 상품 판매로 이어질 경우 '위장 환경주의'(그린 워싱)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는 인식 아래, 적어도 전주영화제는 환경과 자원 문제를 문화 영역 안으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올해 상영된 영국 다큐멘터리 '데릭 대(對) 데릭'(Derek vs Derek)은 기후 문제를 소개하는 작품 가운데 하나다. 영화는 거대한 재난이나 북극곰을 앞세우는 대신 영국 데번의 이웃 농장 두 곳을 3년 동안 조용히 관찰했다. 한쪽에는 집약 낙농을 하는 데릭 밴버리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농장을 야생 자연으로 되돌리려는 데릭 고우가 있다.
흥미로운 점은 두 사람 이름이 모두 데릭이라는 것이다. 밴버리는 전통적인 농부다. 젖소를 키우고 목초지를 관리하며 생산량을 고민한다. 반면 고우는 농장을 자연으로 돌려놓으려 한다. 비버가 물길을 만들게 하고, 멧돼지가 땅을 헤집게 두며, 사라졌던 야생동물이 돌아오도록 농장을 바꾼다.
처음에는 갈등이 거셌다. 밴버리에게 고우의 농장은 '농사'가 아니라 난장판처럼 보인다. 비버는 물길을 바꾸고, 야생동물은 울타리를 넘어오는 등 전혀 관리가 안 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주변 농민 입장에서는 피해가 된다. 반대로 고우는 지금의 농업 방식이 곤충과 새, 생태계를 사라지게 만든다고 봤다.
영화가 흥미로운 이유는 어느 한쪽을 악역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밴버리는 단순한 '반(反)환경 농부'로 조명하지 않는다. 낮은 농산물 가격과 불안정한 날씨, 가족 생계를 감당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고우의 '재야생화'(Rewilding) 역시 낭만적으로만 그려지지 않는다. 자연이 돌아오지만, 동시에 지역사회 충돌도 생긴다.
기후위기는 바로 이 지점에 걸쳐 있다. 영화는 기후변화를 숫자나 과학 용어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홍수와 폭우, 사라지는 곤충, 줄어드는 새를 보여준다. 영화엔 밴버리가 기록적인 겨울 홍수를 겪으며 기후변화를 현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는 설명도 담겼다.
영화는 '땅은 무엇을 위한 공간인가. 먹거리를 생산하기 위한 곳인가, 아니면 자연을 회복시키는 곳인가'를 묻는다.
실제 영국 자연보전 보고서인 '자연의 상태'(State of Nature) 2023년 판에 따르면 1970년 이후 영국 야생 생물 개체 수는 평균 19% 줄었다고 분석했다. 주요 원인으로는 집약 농업과 기후변화가 꼽혔다. 영화 속 두 농장의 충돌은 결국 실제 현실을 압축해 보여주는 셈이다.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조금씩 달라진다. 밴버리는 재야생화된 땅에 곤충과 새가 돌아오는 모습을 직접 본다. 이후 자신의 농장에도 자연을 위한 공간을 일부 남겨두는 방향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자연이 무너지면 농업도 오래 유지되기 어렵다는 방향을 천천히 조명한다.
영국 셰필드 다큐멘터리 영화제는 이 작품을 '영국 시골의 미래를 둘러싼 싸움'이라고 봤다. 다시 말하자면 한국의 농어촌 지역에서도 언젠가 나타날 수 있는 갈등 그리고 조정이란 것이다.
기후위기 보도는 여전히 기후 재난의 극단적 모습에 집중한다. 하지만 '데릭 대 데릭'은 기후위기가 결국 농촌과 먹거리, 지역 공동체 문제라는 점을 보여준다. 곤충이 줄어들고 흙이 망가지면, 가장 먼저 흔들리는 건 농업이다. 그리고 농업이 흔들리면 결국 인간도 흔들린다.
영화 속 울타리는 단순한 경계선이 아니다. 생산성과 생태계, 생계와 자연, 현재와 미래가 맞부딪히는 선이다. 전주에서 만난 이 기후 영화는 버려진 현수막을 다시 쓰는 일처럼, 망가진 땅과 관계도 다시 고쳐 쓸 수 있는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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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기후변화는 인류의 위기다. 이제 모두의 '조별 과제'가 된 이 문제는 때로 막막하고 자주 어렵다. 우리는 각자 무얼 할 수 있을까. 문화 속 기후·환경 이야기를 통해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을 끌고, 나아갈 바를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