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현실화…산업·에너지 구조 전환 속도[2025경제결산]⑥

극단적 폭염·호우·가뭄 반복…날씨, 산업·사회 안전 위협
기후부 출범·2035 NDC 설정…재생에너지·전력망 전환 속도

대구 북구 노곡동 마을이 집중호우에 침수돼 119구조대가 고립된 주민을 구조하기 위해 구명보트를 타고 마을로 들어가고 있다. 2025.7.17/뉴스1 ⓒ News1 공정식 기자

(세종=뉴스1)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 2025년은 역대급 기상 이변이 일상이 되며 기후 변화가 단순한 환경 이슈를 넘어 생존과 직결된 '국가적 위기'임을 실감케 한 해였다.

이재명 정부는 취임 직후 기후에너지환경부를 신설하는 파격적인 조직 개편을 통해 기후 대응을 국정 핵심 과제로 격상시켰다. 이는 온실가스 감축과 사회 전 분야의 기후대응 체질 개선을 위한 정책적 첫발을 뗀 것으로 평가된다.

100~200년 빈도 폭우·폭염이 매달·매주…극단적 날씨, 일상이 됐다

2025년 날씨는 '평년 대비'라는 표현이 무색해졌다. 과거 100년 빈도로 여겨졌던 폭염과 폭우가 한 달, 한 주 단위로 반복되며 극단적 날씨가 사계절을 지배했다.

여름철 전국 평균기온은 25.7도로 관측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고, 더위는 6월 말부터 시작돼 예년보다 1달가량 앞당겨졌다. 7월 하순과 8월 중·하순에는 낮 기온이 크게 오르고 밤에도 열이 식지 않으며 폭염과 열대야가 겹쳤다.

전국 폭염일수는 28.1일로 평년보다 17.5일 많았다. 구미·전주·강릉 등 20개 지점에서 관측 이래 가장 많은 폭염일수가 기록됐고, 대관령에서는 관측 이래 처음으로 폭염이 발생했다. 열대야도 전국 평균 15.5일로 평년보다 9일 많았으며, 서울은 46일로 1908년 이후 가장 많았다. 부산·인천·강릉·속초·목포·청주 등 주요 도시 대부분에서 기록이 새로 쓰였다.

강수는 총량보다 양상이 문제였다. 여름철 강수량은 평년보다 적었지만 7월 중순과 8월 전반에는 기록적인 집중호우가 반복됐다. 시간당 100㎜ 안팎의 재난성 호우가 연중 15차례 발생했다. 반면 강원 영동은 여름 강수량이 평년의 34.2% 수준에 그치며 가뭄과 건조가 이어졌다. 같은 계절 안에서 침수와 물 부족이 동시에 나타났다.

특히 가뭄 피해가 컸던 강원 강릉은 2025년 1~8월 누적 강수량이 약 404.2㎜로 전년 동기(703.5㎜) 대비 57.5% 수준에 그쳤고, 주요 식수원인 오봉저수지 저수율이 10%대까지 떨어지는 등 댐 바닥의 물(사수·死水)까지 끌어써야 할 수준까지 치닫기도 했다. 하루 제한급수와 국가재난사태 선포가 이어지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했다.

산불도 역대 최대 피해 면적을 기록했다. 산림청 발표에 따르면 올해 산불 발생 건수는 347건으로 최근 10년 평균보다 다소 적었지만, 피해 면적은 10만 4788ha로 1986년 산불 통계 작성 이래 가장 컸다. 사망자는 32명, 부상자는 54명으로 집계됐다. 산림청은 당시 낮은 강수량과 높은 기온, 강풍이 겹치며 불길 확산을 키웠다고 분석했다.

가을도 평범하지 않았다. 전국 평균기온은 16.1도로 지난해에 이어 역대 2위를 기록했다. 9~10월에는 고온과 잦은 비가 이어졌고, 11월에는 강수량이 급감하며 건조특보가 발효됐다. 연간 열대야 일수는 79일로 역대 최다였다. 계절의 경계가 흐려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여름과 가을 모두 우리나라 주변 해역의 해수면 온도는 최근 10년 중 최상위권을 기록했다.

재난 대응 기준을 끌어올린 기상청

올해 극단적 날씨는 기상 대응 체계의 기준 자체를 바꿔놓았다. 폭염과 집중호우가 반복되며 '특보'와 '예보'만으로는 위험을 전달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분명해졌다. 기상청은 이에 따라 올해 호우 긴급재난문자를 전국으로 확대했다. 수도권과 일부 지역에 국한됐던 체계를 전 지역으로 넓혀, 강수 위험을 보다 직접적으로 알리겠다는 취지다.

폭염 대응도 앞당겨졌다. 폭염 영향예보 제공 시점은 하루 전에서 이틀 전으로 조정됐다. 산업 현장과 농업, 보건 분야에서 사전 대응 시간을 확보하겠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대설 안내문자와 도로 위험기상정보 역시 확대돼, 교통과 생활 안전에 영향을 주는 기상 정보를 보다 촘촘하게 전달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변화는 올해 반복된 국지적 폭우의 영향이 컸다. 시간당 100㎜ 안팎의 강한 비가 짧은 시간에 쏟아지는 사례가 잦아지면서, 기존 기준으로는 위험을 제때 포착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여기에 교통 통제나 배수펌프장 관리 부실(대구) 등이 겹치며 문제가 더 커지기도 했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내려진 27일 오후 인천 중구 을왕리 해수욕장을 찾은 시민들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 2025.7.27/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지진 대응도 속도를 냈다. 진앙 인근 주민에게 경보를 직접 전달하는 지진현장경보 체계가 도입됐고, 국외지진 조기경보 영역도 확대됐다. 기후와 지질 재난을 동시에 관리해야 한다는 인식이 반영된 변화다. 해수면 온도에 대한 3개월 기후예측 서비스 역시 시작돼, 해양을 통한 기후 신호 감시가 강화됐다.

기상·기후 인공지능 전환도 올해 본격화됐다. 한국형 수치예보모델에 인공지능을 접목해 위험기상 예측 자료를 생산하고, 여러 예측 결과를 종합하는 앙상블 규모를 확대했다. 극한 날씨가 상시화된 현실에서 예측의 속도와 정확도를 끌어올리기 위한 조치다.

기후부 출범…날씨를 넘어 구조로 대응하다

이 같은 기후 현실 속에서 10월,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현 산업통상부)의 전력·에너지 정책을 묶어 출범한 기후에너지환경부는 감축·에너지·환경·재난을 하나의 정책 축으로 묶었다.

기후부는 부처 출범 뒤 최우선 과제로 세운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를 2018년 대비 53~61% 감축으로 설정했다. 산업계에서는 하한 조정을, 과학계와 시민사회에서는 상향을 요구했으나 정부는 이를 브라질 벨렝에서 열린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에서 발표하며 공식화했다. 김성환 기후부 장관은 제시한 범위 안에서 이행 가능성과 국제 신뢰를 함께 담보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기후부는 제4차 국가 배출권 할당계획(2026~2030), 제3차 할당계획 변경안을 의결했다. 정부는 2018년 순 배출량 7억4230만tCO₂eq(온실가스 상당량톤) 대비 2030년까지 40%를 감축한 뒤, 이후 5년 동안 13~21%포인트를 추가로 줄이겠다는 책임을 공식화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18일(현지시간) 브라질 벨렝에서 열리고 있는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30)에 참석해 리 가오 중국 생태환경부 차관과 만나 2035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와 COP30 전망 및 한·중 환경협력 등을 논의하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11.19/뉴스1

부문별로는 전력 부문에서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력망 전환, 산업 부문에서 연료·원료의 탈탄소화, 건물 부문에서 에너지 자급자족 건축과 열 공급 전기화, 수송 부문에서 전기·수소차 보급 확대를 주요 수단으로 제시했다. 재생에너지 100GW 보급, 해상풍력 25GW 확대, 에너지 고속도로 구축, 히트펌프 확산, 수소환원제철과 CCUS 실증, 배출권거래제 개편이 한 패키지로 묶였다.

제4차 배출권 할당계획에서는 발전 부문의 유상할당 비율을 2030년 50%까지 단계적으로 높이고, 철강·시멘트·석유화학 등 수출 비중이 높은 산업은 100% 무상할당을 유지하기로 했다. 유상할당으로 확보되는 재원은 기업의 탈탄소 전환 지원에 투입된다.

생활과 현장에 닿는 정책도 병행됐다. 탄소중립 포인트제 개편, 전기차 보조금의 청년·다자녀 확대, 녹색전환보증 도입, 환경영향평가 절차 개선, 배출권 거래 접근성 확대가 추진됐다. 재난 대응과 감축 정책을 동시에 끌고 가겠다는 기조가 분명히 했다.

소방수된 李정부, 기후위기에 정책 순서 바꿔 속도 '가속'

2025년은 기후위기가 정책 의제의 순서를 바꾼 해였다. 폭염과 집중호우, 가뭄과 건조가 한 해 안에서 반복되며 기후 문제는 환경 이슈를 넘어 안전과 산업, 지역 격차의 문제로 확장됐다. 기후부 출범과 기상 대응 체계 강화는 이런 현실에 대한 제도적 대응이다.

날씨가 먼저 변했고, 계엄·탄핵 이후 이재명 정부는 기후대응의 국가 구조를 재편하며 정책 속도를 가속화했다. 2025년은 기후위기를 전제로 한 국가 운영이 본격화된 첫 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ac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