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자본'으로 대한민국 판 바꾸자 [전문가 칼럼]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한국 경제가 지난 80년 동안 '한강의 기적'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끊임없이 인적 자본, 경제 자본, 사회적 자본이라는 세 축을 꾸준히 축적하기 위해 온 국민이 힘을 모아 노력한 결과다. 교육을 통한 인재 확보, 산업 혁신을 이끈 과감한 투자, 위기 때마다 결속을 보여온 사회적 신뢰가 그 바탕이었다.

'AI 자본'이 한국 성장의 미래

지금 한국이 맞닥뜨린 인공지능(AI) 전환의 거대한 갈림길은 이 세 축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렵다. 우리는 네 번째 축인 'AI 자본'(AI Capital)을 국가전략의 최상위로 올려도 급변하는 국가 간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조차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다.

AI 자본은 단순히 AI 기술의 확보나 활용 수준을 뜻하지 않는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AI를 이해하고 다루며, 이를 통해 자신의 역량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능력 전체를 의미한다. AI는 제조업의 기계, 설비, 공장처럼 물리적 인프라는 아니지만, 그 생산성 향상 속도와 파급력은 과거 어느 자본보다 빠르고 강력하다.

인공지능을 다룰 줄 아는 개인과 기업은 경쟁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는 반면에 AI를 외면하거나 이해가 부족한 집단은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기조차 어려워 격차가 순식간에 벌어진다. 이것이 바로 'AI 자본'이 대한민국의 미래 판도를 바꿀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는 이유다.

오픈AI 한국 지사 설립 후 첫 기자간담회가 열린 9월 10일 서울 광진구 파이팩토리 스튜디오 앞으로 취재진이 지나가고 있다. /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한국은 교육·기업 역량·AI 인구 기반 매우 취약

한국은 인구 감소, 성장률 둔화, 생산성 정체라는 삼중고에 직면해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AI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국가 재도약을 가능하게 할 마지막 성장엔진이다. 니체가 '권력에의 의지'(Will to Power)를 강조했듯, 오늘의 한국호(韓國號)가 다시 도약할 수 있는지 여부는 우리가 얼마나 절박한 'AI에의 의지'(Will to AI)를 품고 국가의 생사를 건 승부에 나서느냐에 달려 있다.

문제는 한국의 현실이 이 새로운 AI 자본축 형성에 충분히 대비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겉으로는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인프라와 교육열을 갖고 있다. 그러나 AI를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인구의 양과 질 모두에서 아직 AI 활용력은 걸음마 단계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학교 교육은 여전히 암기 중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기업 현장의 AI 투자는 대기업 중심으로 편중돼 있으며, 중소·중견기업은 어디서부터 AI 도입을 시작해야 할지 감히 엄두를 못내고 있는 현실이다. AI를 잘 다루는 소수와 그렇지 못한 다수 사이의 AI 격차가 이미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기 시작한 것이다.

AI 자본화에 승부 걸어야 할 마지막 기회

현재 한국 정부는 겉으로는 'AI 3강'을 외치고 있지만, 주요국을 대상으로 한 국제적 AI 경쟁력 평가는 냉정하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벨퍼센터(Belfer Center)가 올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AI 경쟁력은 글로벌 기준 9위에 그쳤다. 챗GPT처럼 실제 AI 기술을 선도하고 이끌고 있는 AI 핵심인재를 살펴보면 미국, 중국, 유럽 선진국에 한참 뒤진 것이 사실이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벨퍼센터에서 2025 발표한 인공지능(AI) 경쟁력 지수.

앞으로 한국은 AI를 단순히 기술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AI 자본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 전환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이제 구체적인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우선 교육을 개편해 초·중·고부터 대학·평생교육까지 AI 리터러시·비판적 사고·데이터 이해·AI 해석 능력을 키워야 한다. 둘째, 기업 맞춤형 AI 전환을 적극 지원해 기술 격차를 완화하고 생산성 혁신을 유도해야 한다.

셋째, 국민 전체의 'AI 자본지수'를 만들어 AI 경쟁력을 측정하고 관리해야 한다. 넷째, 공공부문이 가장 먼저 AI 행정·서비스를 도입해 민간 혁신을 이끌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데이터를 국가 핵심 기반시설로 간주해 공유·연계·신뢰 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

AI는 기술을 넘어 국가 역량의 새로운 기반이며, 미래 권력의 원천이다. 한국 정부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이런저런 미사여구로 말만 앞세우거나 보여주기식 정책을 앞세워 예산낭비만을 하게 된다면 결국 AI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지금이 바로 'AI 자본'과 'AI에의 의지'를 국가적 차원에서 추진할 마지막 기회다. 준비하는 나라만이 이 거대한 변화의 시대를 주도할 수 있다.

opini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