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민심 '앵그리맘', 교육감 선거 좌우했다

전국 진보 교육감 '돌풍', 고승덕 '추락'에 직접 영향
서울 조희연 당선자 "유권자, 부모님 마음으로 투표"
신율 교수 "정치와 교육 분리해서 접근한 투표 결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후보가 5일 새벽 서울 신문로 선거사무소에서 부인 김의숙씨와 함께 꽃다발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 2014.6.5/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서울=뉴스1) 박태정 기자 = "엄마들이 교육청책에 정말로 화가 난 거다."

5일 점심시간 서울 광화문 인근 식당가에서 들려오는 6·4 지방선거에 대한 직장인들의 평가는 대개 세월호 민심을 대표하는 '앵그리맘'이라는 공통 분모로 귀결됐다. 엄마들과 의견이 크게 다르지 않은 '앵그리대디'의 목소리도 높았다.

실제 '앵그리맘'이 이번 선거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 지는 연령대와 성별 투표 결과를 자세히 분석해봐야 드러나겠지만 '세월호 사태' 이후 형성된 30~40대 여성들의 분노가 큰 변수였던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중학생 2학년 아들을 둔 주부 김지영(47)씨는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아이 친구 엄마들 사이에서 지금과 같은 정부를 그대로 둘 수는 없다는 공감대가 컸다"며 "특정 후보 지지를 표명하지는 않았지만 반드시 투표를 하자는 분위기는 어느 선거 때보다 강했다"고 전했다.

'앵그리맘'의 분노는 진보 교육감의 전국 돌풍에서도 확인된다. 진보성향 후보들이 17개 시·도 교육감 가운데 13곳에서 승리를 거뒀다. 이중 전교조 지부장 출신이 6명이다.

보수진영은 대구·경북·울산 등 영남권과 대전 4곳에서만 당선자를 내는 참패를 당했다. 그 결과 4년 전 선거에서 6명에 불과했던 진보 교육감이 두 배 넘게 증가해 앞으로 현장 교육정책에 있어 대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전국적인 진보 교육감의 압승은 보수진영 후보들의 분열과 기존 진보 교육감의 성과 등이 영향을 미친 결과이기도 하지만 세월호가 몰고 온 여파가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특히 서울시교육감 선거는 '앵그리맘'의 분노가 완벽한 반전 드라마를 연출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진보 진영 조희연 후보의 경우 선거 초반까지 대중적인 인지도가 떨어지는데다 교육감 선거가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하면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지난달 28일 마지막 방송사 여론조사에서도 고승덕(26.1%), 문용린(23.5%) 후보가 오차범위에서 각축전을 벌이고 조 후보(14.9%)는 크게 뒤처지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1주일도 안 되는 사이 절대적인 열세를 극복하고 8.43% 포인트의 득표율 격차로 압승을 거둔 데는 '앵그리맘'의 선택이 중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지난달 31일 고 후보 친딸 희경씨의 페이스북 글 파문이 커지면서 조 후보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던 고 후보의 지지층이 이탈하기 시작했고 그 여파는 득표율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진보 성향을 갖고 있더라도 교육 정책에서는 대체로 보수적인 선택을 하는 학부모들이 최종 선택을 달리했다는 것이다.

투표 마감 직후 출구조사 결과 당선이 예상되자 조 후보가 결과를 조심스럽게 기다리면서도 "서울의 유권자께서 부모님의 마음으로 투표하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앵그리맘'을 승리의 주 요인으로 주저 없이 꼽았다.

당선 확정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그는 "우리 사회에 요구되는 세월호 이후 한국 교육의 변화 과제를 끌어안고 열심히 실현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평소 주목받지 않던 교육감 선거에서 민주진보 후보가 광범위한 지지를 얻은 건 한국 교육이 달라져야 한다는 의견이 광범위하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반면 고 후보는 예상보다 큰 참패를 면치 못했다. 자신의 텃밭인 '강남3구'에서 조차 조 후보에게도 밀리며 '전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내 25개 자치구 가운데 1위를 차지한 곳은 단 1곳도 없었으며 금천구에서만 2위에 머물렀다. 선거 막바지 터진 친딸의 페이스북 글 파문이 예상보다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고 후보 딸의 폭탄 발언이 막판 선거를 뒤집을 만큼 큰 힘을 발휘한 것은 이번 선거가 세월호의 자기장 안에 있었기에 최대한 증폭이 가능한 것이었다.

반면 조 후보는 선거 막바지 아들이 포털사이트 정치 토론방에 아버지를 지지하는 글을 올린 것이 딸의 발언으로 유탄을 맞은 고 후보와의 차별성으로 부각되면서 반사이익을 누리며 승좌에 올랐다.

조희연 캠프의 김형배 선거대책위원장은 "이번 선거 결과는 캠프의 승리가 아니다. 세월호 사태가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며 "딸의 페이스북 글 파문으로 고 후보는 물론 문 후보까지 난타전을 벌이며 가족을 핵심 가치로 보는 보수층에게 외면받을 수 밖에 없었다"고 평가했다.

이번 선거에서 '앵그리맘'의 선택은 특히 교육감 선거에서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권자들이 정치인에 대한 선택과 교육감 선택의 기준을 다르게 했다는 설명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전체 선거 결과로 보면 실제 '앵그리맘'의 영향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고 본다"면서도 "하지만 교육감 선거에서는 세월호 여파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유권자들이 정치와 교육을 분리해 접근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pt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