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무속인'에 속아 회삿돈 66억 횡령해 바친 대표…2심서 감형
1심 실형→2심 징역형 집행유예…"심리적 지배 상태서 범행에 이르러"
- 한수현 기자
(서울=뉴스1) 한수현 기자 = 지인에게 속아 '가상의 무속인'에게 회삿돈 약 66억 원을 바쳐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전기용품 제조업체 전직 대표가 2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로 감형됐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4-1부(부장판사 김인겸 성지용 전지원)는 지난달 11일 특정경제범죄법 위반(횡령) 혐의로 기소된 김 모 씨에 대해 징역 3년을 선고한 1심 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김 씨는 2019년 1월부터 2020년 4월까지 자신이 부사장이자 대표이사로 있던 전기용품 제조업체의 자금 65억 8700만 원을 빼돌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사건의 시작은 당시 배우자였던 유 모 씨가 장 모 씨와 심 모 씨를 알게 되면서였다. 유 씨는 2017년쯤 자녀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장 씨와 심 씨를 학부모로 알게 됐고, 이후 김 씨도 이들과 가까운 관계가 됐다.
장 씨는 이듬해 초쯤 유 씨에게 "고위층의 사주를 봐주는 유명 무속인이 있다"며 이른바 '조말례'라는 무속인을 소개했다. 김 씨 부부는 조말례와 문자메시지만 주고받았을 뿐 직접 만나거나 통화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조말례는 실제 인물이 아니었다. 장 씨와 심 씨가 가상의 무속인 행세를 하며 김 씨 부부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은 것이다.
김 씨 부부는 조말례를 신뢰하게 됐지만, 이후 이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 김 씨는 2018년 말쯤부터 당시 아내였던 유 씨와 가정불화를 겪었고, 이듬해 6월쯤 집을 나왔다. 이후 조말례의 지시를 따른다며 장 씨와 심 씨의 생활비 등을 마련해주며 함께 생활하기도 했다.
장 씨와 심 씨는 2019년 1월쯤 조말례의 지시라며 김 씨에게 "제단에 바칠 돈이 필요하니 회사에서 돈을 가져오라"고 요구했다. 이에 김 씨는 이사회 승인 없이 회사 자금을 자신의 계좌로 옮긴 뒤 다시 장 씨 또는 심 씨에게 송금했다.
또한 김 씨는 같은 해 1월 회사 직원에게 "급하게 쓸 돈이 필요하다. 2일 안에 혹은 월말에 다시 입금해 주겠다"고 말한 뒤 회사 계좌에서 2억 원을 자신의 계좌로 송금받았다. 이후 같은 방식으로 1년여 동안 회삿돈 약 66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김 씨에 대해 "대표이사로서 회사 자금 관리 등 역할과 책임을 다했어야 할 피고인이 무속인의 지시라는 말을 추종해 거액을 횡령했다"며 실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김 씨가 조말례를 내세운 장 씨와 심 씨에 의해 심리적으로 철저하게 지배된 상태에서 횡령에 이른 것을 감안해 1심의 형이 무겁다는 김 씨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회사의 자금을 횡령한 금액이 무려 66억 원가량에 달해 죄책이 결코 가볍지 않다"면서도 "횡령금은 대부분 장 씨와 심 씨가 사용한 사실이 인정되고, 이 같은 범행의 경위는 김 씨의 형을 정함에 있어 충분히 고려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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