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조 유가 담합' 정유 4사 재판행…"만성화된 관행 노골적 표출"(종합)

美·이란 전쟁에 리터당 30~40원 올려…총 피해액 26조
자영주유소에 '갑질'하고 유가 정보 사전 교환하기도

나희석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정거래조사부 부장검사가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브리핑실에서 미국·이란 전쟁 관련 유가 교란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26.7.6 ⓒ 뉴스1 이광호 기자

(서울=뉴스1) 김민재 최동현 기자 = 검찰이 국제 정세 불안을 틈타 기름값을 인위적으로 인상한 혐의를 받는 국내 주요 정유회사 4곳과 임직원을 재판에 넘겼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검사 나희석)는 공정거래법 위반 등 혐의로 HD현대오일뱅크 가격 결정부서 부서장 A 씨를 구속 기소하고, 책임 매니저 B 씨와 법무실장 C 씨를 불구속 기소했다고 6일 밝혔다.

HD현대오일뱅크와 유가 담합에 가담한 GS칼텍스 국내 영업 부문장 D 씨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아울러 HD현대오일뱅크·SK에너지·GS칼텍스·에쓰오일(S-OIL) 4개 정유사 법인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정유 4사는 올해 3월 미국·이란 전쟁이 촉발하자 사전 협의를 통해 국내 유통되는 유류 및 석유제품의 가격을 임의로 올리거나 동결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4사의 직접 담합 규모가 14조 2000억 원, 경쟁제한 효과는 26조 원에 달한 것으로 파악했다.

한국석유공사 등에 따르면 국내 주유소 휘발유와 경유 가격은 미국·이란 무력 충돌이 발발한 직후부터 일평균 리터(ℓ)당 20~80원씩 치솟았다. 국제 유가 흐름이 통상 2~3주 후에 국내에 반영되는 흐름이 깨진 것이다.

이에 검찰은 국내 시장을 과점하는 정유 4사가 담합해 유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렸다고 보고 수사에 착수했다.

나희석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정거래조사부 부장검사가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브리핑실에서 미국·이란 전쟁 관련 유가 교란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26.7.6 ⓒ 뉴스1 이광호 기자

수사팀은 HD현대오일뱅크 소속 A 씨와 B 씨가 전쟁 이전에도 SK에너지 실무진과 가격 정보를 교환한 사실을 확인했다. 나희석 부장검사는 "전쟁 직후 담합은 만성화된 담합 관행이 국제적 위기 상황에서 노골적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A 씨는 올 3월 미국·이란 전쟁이 발발하자, SK에너지 가격 결정부서 부서장과 가격을 대폭 높이기로 합의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 정유사 대화방에서는 지난 3월 4일 국제유가가 폭등하자 한 사람이 "오늘 가격 100원 더 올린다", "우리 올해 2조 벌 듯", "역시 전쟁으로 먹고사는 회사", "트럼프 만세" 등 대화가 오가기도 했다.

검찰은 HD현대오일뱅크와 GS칼텍스가 공정거래위원회 현장 조사 실시 정보를 미리 파악하고 조직적으로 관련 증거를 인멸한 사실도 확인했다.

C 씨는 올해 3월 공정거래위원회 현장 조사 사실을 미리 알고 타사의 가격 정보를 취합한 자료를 삭제한 혐의(증거인멸)를, D 씨는 공정위 현장 조사 전에 가격 결정 회의 자료를 공유한 사내 메신저를 삭제한 혐의를 받는다.

나희석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정거래조사부 부장검사가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브리핑실에서 미국·이란 전쟁 관련 유가 교란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26.7.6 ⓒ 뉴스1 이광호 기자

검찰은 유가 상승의 고질적 원인으로 지목된 '전량 구매계약'과 '사후정산제' 관행도 재판에 넘겼다.

정유 4사는 지난 2021년 1월부터 지난달까지 5년간 주유소들과 '전량 구매' 방식의 공급 계약을 맺고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자사 제품만 구매하도록 한 강제한 혐의로 기소됐다.

전량 구매계약은 특정 주유소가 석유제품을 단일 정유사로부터 공급받도록 의무화한 계약이다. 사후정산제는 정유사가 주유소에 기름을 임시 가격으로 공급한 뒤, 일정 기간이 지난 후 국제 유가 및 시세에 맞춰 차액을 정산하는 방식이다.

검찰은 4대 정유회사가 자영 주유소와 전량 구매계약을 체결한 후 석유 전량을 특정 정유사로부터 구입할 의무를 부과했다고 판단했다. 구매 가격은 일방적으로 결정한 뒤 통보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팀은 "(이 계약을) 위반하는 경우 중소상공인이 감당할 수 없는 거액의 손해배상청구 등을 통해 불합리한 계약구조를 유지·강화한 점을 확인해 4대 정유회사를 모두 기소했다"고 했다.

수사팀은 '싱가포르 현물시장 가격지표'(MOPS·몹스)와 연동해 국내 유가를 책정했다는 정유사의 주장도 반박했다. MOPS는 아시아 및 태평양 지역의 석유 제품 현물 거래 가격 지표다.

나 부장검사는 "몹스가 20원 이상 떨어졌을 때 (정유사가) 가격을 인상하거나 동결한 사례가 많다"며 "몹스 가격에 따라 기계적으로 국내 판매가를 정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한편, 나 부장검사는 가격 정보를 교환한 실무진만을 기소하고 '윗선'을 기소하지 않은 이유는 "당사자 휴대전화에서 관련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공정위 현장 조사가 사전 노출된 것에 관해서는 "이번 사건뿐만 아니라 전분당 사건 때도 공정위 사실이 노출됐다"며 "관련 제도적 시스템을 점검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minja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