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자 584명 개인정보 재판부에 제출한 동대표…대법 "정당행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원심 "개인정보 제3자 제공·누설" 유죄
대법원 "주민들에게 어떠한 피해 발생 안 해, 정당행위"…파기환송

서울 서초구 대법원. /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서울=뉴스1) 서한샘 기자 = 가처분 사건 재판부의 요청에 따라 입주자 580여 명의 개인정보가 적힌 카드를 제출한 것은 정당행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 씨에게 벌금형 집행유예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지법에 돌려보냈다.

앞서 대전 서구의 한 아파트 주민 일부는 지난 2020년 관리비 절감·운영 개선을 요구하며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전체 세대의 과반 동의로 입주자대표회의가 해산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입주자 대표회장과 동대표 A 씨 등을 상대로 직무집행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해당 사건 재판부는 해산 결의 정족수가 충족됐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 A 씨 등에게 2주일 이내에 세대주, 세대 구성원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때 A 씨는 아파트 관리소장 B 씨와 공모해 재판부에 입주자 동의 없이 개인정보가 적힌 입주자 카드 584장을 제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입주자 카드에는 세대주, 직업, 차량번호, 가족 사항, 생년월일, 전화번호, 주소 등 개인정보가 그대로 적혀 있었다.

원심은 재판부의 석명 요청에 따라 입주자 카드를 증거로 제출했더라도 이는 개인정보 제3자 제공, 누설에 해당한다면서 벌금 70만 원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A 씨의 행위가 정당행위에 해당하지도 않는다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은 A 씨의 행위가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담당 재판부는 A 씨 등에게 2주일 이내에 세대주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 제출을 명했는데 아파트 세대수 등에 비춰볼 때 그 기간에 입주자들로부터 개인정보 제공에 대한 개별적 동의를 받기는 사실상 어려워 보인다"며 "또 A 씨는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를 삭제함으로써 침해 위험성이 큰 정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보호조치를 취했다"고 설명했다.

입주자들에게 이렇다 할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도 짚었다. 대법원은 "입주자 카드에 기재돼 있는 개인정보 내용은 세대주·세대원 특정에 필요한 정보에 불과하다"며 "개인정보를 제공받은 제3자가 공공기관 지위에서 가처분 사건을 심리하는 담당 재판부인 사정까지 더해 보면 주민들에게 어떠한 피해가 발생했다고 보기도 쉽지 않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입주자 카드에 기재된 최소한의 개인정보조차 이용하지 못함으로써 입주자대표회의 해산에 관한 서면동의 등 효력을 명확히 판단하지 못한다면 사회·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여지도 있다"며 "입주자 카드를 제출한 것이 정당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원심 판단에는 정당 행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보고 원심판결을 파기했다.

sae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