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법정]⑯친일재산귀속법 합헌…여전히 떵떵거리는 친일파 후손
헌재 "민족정기 바로세우기" 합헌 결정에 친일재산들, 속속 국가 귀속
오래된 과거 일·복잡해진 법률관계 때문 최근 소송서 정부 패소 늘어
- 이장호 기자
(서울=뉴스1) 이장호 기자 =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대한민국 최상위 법인 헌법 전문에는 우리 헌법이 3·1운동과 그에 따라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다고 명백히 명시하고 있다. 일제에 항거한 우리 민족의 정신이 대한민국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립 후 건국된 대한민국은 지독한 이념갈등 속 친일파 청산에 실패했고 헌법 전문의 이 문장은 단순한 선언으로 그치고 만다. 친일파들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에도 주요 요직을 차지했고, 그들이 일제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은 그대로 후손들에게 되물림됐다.
그렇게 수십년의 시간이 하염없이 흘렀다. 그런데 친일파 후손들은 선조들이 일제에게 물려받은 재산을 국가에 돌려놓기는커녕 '조상땅 찾기'라는 기획소송을 통해 재산을 되찾으려고 했다.
이에 국민적 공분이 일면서 2005년 12월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재산을 국가에 귀속시킬 수 있는 근거 법령인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친일재산귀속법)'이 발의됐다.
친일재산귀속법은 국민의 지지를 받아 그해 12월 국회를 통과돼 시행됐다. 러일전쟁 개전시(1904년)부터 1945년 8월15일까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취득한 재산은 친일행위 대가로 취득한 재산으로 추정하고, 대통령 소속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를 둬 위원회에 친일재산을 조사하고 국가에 귀속시킬 수 있는 권한을 줬다.
그러나 도입 당시에도 소급 입법(이전의 일까지 소급해 적용할 수 있게 법을 제정하는 것) 금지 원칙 위반, 재산권 침해 등 헌법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 헌재 "민족 정기 바로 세우기 위한 것" 합헌 결정
법 시행 후 출범한 조사위는 친일파 민영휘 등이 남긴 토지들을 국가로 귀속하는 결정을 했다. 이에 후손들은 위원회의 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행정소송을 내면서 법원에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했다. 그러나 법원이 이를 기각하자 2008년 5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결론은 소송 제기 후 2년 8개월, 법 제정 후 5년 3개월이 흐른 2011년 3월에 나왔다. 헌재는 5(합헌) 대 2(일부한정위헌) 대 2(일부 위헌) 의견으로 합헌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고 일본제국주의에 저항한 3·1운동의 헌법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므로 입법 목적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소급 입법 금지 원칙 위반이라는 주장에 대해 "친일재산의 취득 경위에 내포된 민족배반적 성격,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 계승을 선언한 헌법 전문 등에 비춰 친일반민족행위자 측으로서는 친일재산의 소급적 박탈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친일재산 환수 문제는 그 시대적 배경에 비추어 역사적으로 매우 이례적인 공동체적 과업"이라며 예외적으로 소급입법이 정당화된다고 설명했다.
논란의 소지가 많았던 법인 만큼 재판관들의 의견도 다양했다. 김종대 재판관은 별개의견을 통해 소급입법에 의한 재산권 박탈은 허용될 수 없으나, 우리 헌법의 정신과 법통, 제정배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친일재산은 헌법에서 정한 재산권으로 보호되지 못한다고 했다.
이동흡, 목영준 재판관은 1904년 2월 러·일전쟁 개전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취득한 재산을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으로 추정하는 조항을 '사정(査定)에 의한 취득'까지 포함된다고 해석하면 위헌이라는 한정위헌 의견을 냈다.
'사정에 의한 취득'은 1912년에서 1918년 사이 진행된 일본 총독부의 토지조사에 따라 소득권을 취득한 것을 말한다. 기존 토지 소유자도 토지조사에 따라 새롭게 소유권을 취득한 것으로 간주됐다.
두 재판관은 '사정에 의한 취득'도 귀속 대상에 해당한다면 러일 전쟁 이전부터 보유하고 있던 토지도 친일재산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친일재산과 무관한 재산까지도 박탈당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을 냈다.
반면 이강국, 조대현 재판관은 친일재산을 귀속시키는 일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더라도 소급입법 금지라는 헌법 원칙은 예외를 두지 않는 절대적 금지명령이기 때문에 헌법에 위반된다고 봤다.
◇최근 '친일재산 환수' 소송서 연달아 패소…"입증 쉽지 않아"친일재산환수법 시행 이후 국가로 환수 조치를 하고 있는 토지들이 점차 늘고 있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2021년 2월 기준 친일재산귀속법에 따라 국가에 귀속된 친일재산은 총 1297필지(867만9581㎡·공시지가 853억원)에 달한다.
이중 2008년부터 2020년까지 698억여원(705필지)을 매각해 순국선열‧애국지사사업기금 재원으로 조성해 독립유공자 등의 예우지원 및 생활안정을 위해 사용했다.
이에 더해 2021년 2월 독립유공자의 생활안정을 위해 친일귀속재산 토지 중 활용도가 있는 토지 148 필지를 선별해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2010년 조사위가 활동을 종료하고 조사위 활동을 인계받은 법무부가 현재까지 진행한 친일재산 환수 관련 소송은 총 103건이다. 위원회에서 승계 받은 건이 95건, 자체적으로 제기한 건은 8건이다. 이 중 현재 진행형인 5건과, 헌법소송인 9건을 제외한 89건에서는 단 3건을 제외하고 국가의 승소가 모두 확정됐다.
그러나 최근 진행 중인 소송에서는 난항을 겪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현재 진행 중인 관련 소송 5건 중 4건은 국가가 패소했다. 2건은 1,2심 모두 패소해 현재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고, 1건은 1심 패소 후 2심이 진행 중이다. 나머지 1건은 현재 1심이 진행 중이다.
대표적인 소송이 친일파 이해승의 후손이 낸 소송이다. 철종의 아버지 전계대원군의 5대손인 이해승은 국권침탈 때 기여한 공을 인정 받아 1910년 일제로부터 후작작위를 받았다.
1912년 '종전 한일 관계에 공적이 있다'는 이유로 한국병합 기념장을 받았고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귀족의 지위와 특권을 누렸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2007년 이해승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정했다.
법무부는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임야 2만7905㎡에 대해 친일재산이라 판단, 2021년 2월 "토지 소유자를 국가로 되돌리기 위한 소유권이전등기 절차를 이행하라"며 이해승의 손자 이우영 그랜드힐튼호텔 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해승이 1917년 취득한 홍은동 임야는 이후 이 땅을 단독으로 상속받은 이 회장으로 소유권이 이전됐다. 1966년 근저당권 설정에 따른 경매절차에서 제일은행(SC제일은행의 전신)으로 소유권이 넘어갔다가 1967년 이 회장이 다시 사들였다.
이 회장 측은 "경매절차에서 소유권을 취득한 제일은행과 별도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취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1심은 제3자가 선의로 취득하거나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고 취득한 권리를 해하지 못한다는 친일재산귀속법 규정을 근거로 이 회장 측 손을 들어줬다.
친일재산귀속법은 제3자에 대한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고 있다.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상속인도 제3자 범위에 포함되기 때문에, 이 회장은 친일재산인지 모른 채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고 토지를 취득한 제3자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2심도 1심과 마찬가지로 판단했다. 이 사건은 대법원 판단을 앞두고 있다.
이 회장을 상대로 제기했다가 사실상 패소한 또다른 소송도 있다. 정부는 이 회장 소유 토지 197만㎡를 국가에 귀속시켜려 했다. 그러나 이미 친일재산귀속법에 따라 해당 토지들에 대해 이 회장 소유를 인정한 대법원 확정판결이 있기 때문에 이후 법 개정을 통해 다시 소송을 제기한 것은 위법하다며 법원은 충북 괴산에 있는 수로 4㎡만 환수대상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대형로펌의 한 변호사는 "일제시절 친일파가 받은 재산을 친일재산이라고 추정한다고 하더라도, 추정은 재판에서 뒤집히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고 했다.
이어 "결국 몰수대상인 친일재산인지 여부를 정부가 치밀하게 입증해야 하는데 워낙 오래된 일이고, 그 기간 동안 토지를 둘러싼 법률관계도 복잡해졌기 때문에 환수조치에 애를 먹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무부는 앞으로도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재산에 대해 반환청구 등 적절한 조취를 계속 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친일파 후손들과 정부의 법적 다툼은 앞으로도 한동안 쭉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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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판결은 시대정신이다.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옳다고 믿는 가치와 때론 나아 가야할 방향을 담고 있어서다. 우리 사회는 짧은 기간 압축적으로 성장하면서 여러 차례 격변기를 거쳤다. 이 때문에 1년 전에는 옳다고 믿었던 시대정신이 오늘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역사의 변곡점에서 과거와 정반대의 판결이 많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건의 판례를 통해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짚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