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소 사시합격'에서 3번째 포토라인 선 우병우는 누구?
만20세 '소년등과'…중수부 시절 노무현 직접 신문
朴정권 사정기관 쥐락펴락…국정농단 '마지막퍼즐'
- 최은지 기자
(서울=뉴스1) 최은지 기자 =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50)은 학창시절 천재로 소문이 자자했다. 서울대 법대 84학번인 우 전 수석은 대학교 3학년인 1987년 제29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만 20세에 '소년 등과'로 사법시험 최연소 합격 기록도 세웠다.
우 전 수석은 1990년 서울지검 검사로 임관해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검사 임관 성적도 차석으로 촉망받는 검사였다.
1992년 우 전 수석은 한직으로 꼽히는 대구지검 경주지청에 발령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법무부, 서울중앙지검 부장, 대검찰청 중수1과장·수사기획관 등 엘리트 코스를 착실히 밟았다.
우 전 수석은 2001년 '이용호 게이트 특검' 특별수사관으로 활약하면서 이름을 알렸고 2003년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부부장때는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사건 수사에도 참여했다. 법조계에서는 그를 '특수통 최고 칼잡이'라고 불렀다.
한창 주가를 올리던 우 전 수석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를 맡으면서 검사인생의 변곡점을 맞는다. 대검 중수부 수사1과장이던 우 전 수석은 노 전 대통령을 직접 신문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이후 검사장 승진 인사에서 연달아 두 번 고배를 마시고 2013년 검사복을 벗었다.
변호사로 활동하던 우 전 수석은 이듬해 5월 박근혜 정권에서 민정수석실 민정비서관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비서관 발탁 8개월만에 민정수석으로 보직이 수직상승했고 사정기관을 총괄하며 막강한 권한을 행사했다. '우병우 사단'이란 얘기가 공공연히 회자될 정도로 검찰 인사를 좌우한다는 뒷말도 무성했다.
사정기관을 손에 쥔 우 전 수석에게 시련이 닥친 것은 지난해 7월 처가와 넥슨의 강남 땅 거래 의혹 보도가 터지면서부터다. 우 전 수석은 의혹을 제기한 기자를 고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들 의무경찰 보직특혜 의혹이 연달아 불거졌고 결국 당시 이석수 청와대 특별감찰관이 우 전 수석 감찰에 착수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 전 특감은 우 전 수석에 대해 아들 꽃보직 전출 의혹 관련해 '직권남용' 혐의를, 가족회사 정강 관련해선 '횡령' 혐의로 각각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지난해 8월 우병우·이석수 특별수사팀(팀장 윤갑근 대구고검장)이 출범했지만 우 전 수석은 민정수석 직위를 그대로 유지했다.
들끓는 여론에 우 전 수석이 민정수석에서 물러난지 나흘 만인 지난해 11월6일 특수팀은 우 전 수석을 피의자신분으로 소환했다. 검찰에 출석하면서 우 전 수석은 질문하는 취재진을 노려보며 논란이 일었고 팔짱을 낀 여유로운 모습으로 수사팀과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취재진에 포착돼 '황제소환' 논란이 불거졌다.
국회에서 특검법이 통과되면서 공은 특검으로 넘어갔다. 박영수 특검은 출범 초기에 우 전 수석에 대한 강한 수사의지를 공언했다. 특검팀은 '비선실세' 최순실씨(61·구속기소) 미얀마 원조개발사업 이권개입을 수사하면서 미얀마 대사 인사에 우 전 수석이 개입한 정황 등이 포착하기도 했다.
특검팀은 공식 수사 종료일을 9일 앞두고 부랴부랴 우 전 수석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서울중앙지법 오민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영장을 기각했고 우 전 수석은 서울구치소에서 기각된 즉시 귀가했다.
결국 공은 다시 검찰로 돌아왔다. 1기 특수본을 재정비하면서 검찰은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부장검사 이근수)에게 우 전 수석 수사 전담팀을 꾸렸다.
그 사이 박근혜 전 대통령은 파면됐고 결국 구속됐다. 국정농단 수사의 '마지막 퍼즐'로 꼽히는 우 전 수석은 6일 검찰 특수본에 피의자신분으로 소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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