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발령에 집 어떡하나요?"…서울 토허제에 실수요자 '멘붕'
해외 파견 시 주택 구매도 '차단'…"실거주 못 한다고 여겨"
구청 민원 폭주·행정 혼선 지속…"국토부 지침 미비"
- 윤주현 기자
(서울=뉴스1) 윤주현 기자
"해외 발령 전에 집을 사두려 했는데, 갑자기 규제가 나와 버렸네요. 이제 방법이 없다는 게 말이 되나요?" (회사원 A 씨)
서울의 한 직장인 A 씨는 정부의 갑작스러운 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구역) 지정 발표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몇 달 뒤 해외 파견을 앞두고 있었지만, 이제는 실거주 요건 때문에 새 집을 살 수 없게 됐다.
정부가 예고 없이 서울 전역을 토허구역으로 묶으면서, 실수요자들 사이에 혼란이 커지고 있다.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주재원 나가기 전 주택 구매 가능한가요?", "파견 중 집을 사면 불법인가요?" 같은 문의가 잇따른다.
23일 서울시와 각 구청에 따르면 해외 이주나 장기 파견을 앞둔 사람들은 토허구역 내 주택을 원칙적으로 취득할 수 없다.
갭투자(전세를 끼고 매입) 없이 현금으로 사더라도, '4개월 내 입주·2년 실거주'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자치구 허가 담당자는 "전세를 끼지 않아도 해외 파견 전에 집을 사겠다는 건 실거주 의사가 없는 것으로 본다"며 "이 경우 허가가 나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규제 적용 이전에 이미 집을 샀다면 예외적으로 가능하다. 그는 "실거주 중에 발령이 난 경우에는 '이용 목적 예외 신청'을 통해 보유를 유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책 발표 직후 커뮤니티에는 실수요자들의 불만이 폭주했다. 실거주 의사가 명확한 사람들까지 피해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 주재원 가족 B 씨는 "남편이 해외 근무 중이라 아이 둘과 함께 외국에 나와 있다"며 "돌아올 때를 대비해 작은 집 대신 새 아파트를 사려 했는데, 갭투자자 취급을 받는다. 우리 같은 사람은 어쩌란 말이냐"고 토로했다.
현장 행정도 혼란에 빠졌다. 서울 25개 자치구는 모두 허가 업무를 담당하지만, 강남·용산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토허구역 경험이 거의 없어 민원이 폭주했다.
한 구청 관계자는 "규제 발표 직후 전화가 빗발쳤다. 업무 매뉴얼도 제대로 내려오지 않아 혼선이 컸다"며 "현재 담당 인력을 늘려가며 대응 중"이라고 말했다.
국토부가 서울시와 사전 협의 없이 규제를 밀어붙인 탓에 구체적 지침이 뒤늦게 내려오고 있다는 게 자치구들의 공통된 불만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준비 없이 시행돼 실수요자 피해를 키우고 있다고 지적한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연구소장은 "지난 3월 토허구역 확대 때도 행정 혼선이 심했다"며 "국토부 차원의 명확한 예외 기준과 지침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지난 15일 서울 전역과 수도권 12개 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했다. 면적 6㎡ 이상 아파트를 거래할 때 구청 허가가 필요하며, 2년 실거주 의무가 부과된다.
gerrad@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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