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가 126% 룰 도입…빌라 세입자 절반 전세대출 '막힌다'

HUG에 이어 HF도 적용…전세사기 방지 목적
임대인·임차인 모두 타격…"보증 줄어 월세 전환 가속화"

서울 시내 빌라 밀집지역.(자료사진) 뉴스1 ⓒ News1 김도우 기자

(서울=뉴스1) 김동규 기자 = 현 시세 10억 원짜리 다가구 주택에 세입자 10명이 들어 있다면, 이 가운데 절반은 전세대출을 받지 못할 수 있다. 한국주택금융공사(HF)가 28일부터 전세보증 심사에 '공시가격 126% 룰'을 적용하면서다. 전세사기와 무리한 갭투자(전세 낀 매매)를 막겠다는 취지지만, 다가구·다세대 등 비아파트 임대차 시장에선 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공시가격 126%룰 적용 시작…임대인과 임차인 모두 혼란

HF는 이날부터 은행재원일반보증과 무주택청년 특례보증 심사 시 선순위 채권과 임차보증금의 합이 공시가격의 126%(공시가격 140%x담보인정비율 90%)를 넘으면 보증을 거절한다. 126%는 공시가격의 140%에 담보인정비율(LTV) 90%를 곱한 수치다.

예를 들어 공시가격이 5억 원인 다가구 주택의 경우 선순위 채권과 임차보증금 합계가 6억 3000만 원을 초과하면 보증을 받을 수 없다. 세입자가 10명이라면 6명만 보증 승인이 가능하고, 나머지 4명은 전세대출이 막히게 되는 구조다. 이 때문에 세입자는 입주에 차질을 빚고, 집주인 역시 퇴거 예정 세입자에게 보증금 반환이 어려워질 수 있다.

이미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같은 기준을 적용하면서 빌라 등 비아파트 전세대출이 크게 줄었다. 이 틈을 타 HF 보증 수요가 몰렸는데, 이제 HF까지 강화 기준을 도입하면서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 난감한 상황에 놓였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전세사기 방지 등을 위해 엄격한 기준을 만들었는데 오히려 사정이 좋지 않은 집주인과 실수요 세입자들에게 부담을 주게 됐다"며 "이런 혼란은 상대적으로 집값이 높지 않거나 최근 몇 년간 하락폭이 컸던 지역에서 더 크게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 강서구 빌라 밀집지역. (자료사진)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월세 가속화 전망…보증 심사 기준 정교화해야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전세사기 방지에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동시에 월세 전환 가속화와 비아파트 기피 심화를 불러올 것으로 내다본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종전보다 받을 수 있는 대출의 총액이 줄어든 만큼 다세대나 다가구 주택 거래 회전율이 떨어질 것"이라며 "이에 따라 월세나 반월세 거래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무리한 갭투자를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비아파트 선호도는 더 낮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한국부동산경영학회장)도 "대출이 막히면 보증부 월세 수요가 늘고, 영세 임차인의 주거비 부담이 커질 것"이라며 "개별 임차인의 재정 상태도 고려하는 정교한 보증 심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가장 좋은 것은 공시가격이 올라서 보정이 되는 것인데 단기간에 이런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다"며 "주택가격 산정 기준을 현재 시세에 일정 수준 부합하도록 하는 방식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dk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