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도종환 민주당 4·11 총선 비례후보 방송연설문

4월입니다.

담 옆에는 개나리꽃 백목련꽃이 화사하게 피어나고, 들에는 제비꽃 민들레꽃이 곱게 피어 있는 봄입니다.

모두가 혹독한 시간을 견뎌낸 꽃들입니다.

최선을 다해 아름답게 살고 있는 꽃들입니다.

내가 거듭나지 않으면 세상은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아는 꽃들입니다.

내가 혹독한 시간과 싸워 이기지 못하면 세상은 황량한 골짜기에서 꽃밭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아는 꽃들입니다.

세상에는 이런 봄꽃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는 이번 4·11 선거의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후보입니다.

비례대표 공천 심사발표를 며칠 앞둔 시점에 문화예술계를 대변하는 후보가 되어달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시인인 제가 정치를 한다고 하니 주변에서 반대가 심했습니다.

대체 뭐가 부족해서 당신마저 그 더러운 판으로 들어가느냐고 독자는 물론 동료들마저 질타했습니다.

20년 간 글을 써온 잡지는 연재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고, 예정되어 있던 강연은 줄줄이 취소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절친한 친구가 화를 참지 못해 이제 저와는 밥도 먹지 않겠다고 전화를 했을 때 며칠간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문학 분야의 이른바 1%에 해당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갖고 있는 명성과 그에 따른 혜택을 누리며 얼마든지 편하게 살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전업 작가의 길을 가고 있는 대부분의 문인들은 얼마나 어렵게 살고 있습니까?

얼마 전, 한 젊고 유망한 시나리오 작가가 굶어 죽었다는 소식, 여러분도 아실 겁니다.

월 평균 급여가 80만원 남짓한 문인, 연극인, 문화예술인들이 십만 명이 넘습니다.

한류가 세계를 휩쓸고 있다고 하지만, 정작 우리 문화계는 산재보험 혜택도 받지 못하고 옥탑방에서 지하방으로 전전하는 이들이 허다합니다.

문화 예술 쪽만 그렇습니까?

이 사회 전반이 그렇습니다. 99% 서민들의 삶이 그렇습니다.

물가는 오르는데 실질소득은 줄고, 애들 학원비며 등록금, 병원비, 교통비 같은 지출은 자꾸만 늘어나니 중산층과 서민의 지갑은 갈수록 얇아지고 있습니다.

반면에 상위 1% 부자와 재벌들은 세금도 줄여주고 규제도 풀어주고 온갖 혜택을 제공한 덕분에 나날이 곳간이 불어납니다.

대기업들이 사상 초유의 수출 실적에 영업이익을 올리는 동안, 일자리는 별반 늘어나지 않았고 청년들의 얼굴은 갈수록 어두워졌습니다.

정치가 더럽다고 외면하기에는 지금 우리가 서있는 현실이 너무나 절박합니다.

비단 민생파탄 문제만이 아닙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지난 몇 년간 피땀으로 일군 민주주의와 평화와 인권이 하루아침에 무너졌습니다.

특권과 반칙이 난무하기 시작했으며, 상식과 원칙이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전직 대통령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 마침내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하는 권력을 보면서 절망했습니다.

오백만 국민이 울었고 저도 울었습니다.

복지 예산이 줄어들어 장애인, 노인, 빈곤아동들이 국가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데도, 수십조 원을 강바닥에 쏟아 붓는 정부를 보면서 탄식했습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와 교양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냉혹하고 비정한 사회를 그대로 놔둘 것인가, 아니면 한국사회의 새 판을 짜고 미래로 나아갈 것인가? 그 절체절명의 기로에 우리는 서있는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문학과 예술의 발전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양심과 표현의 자유입니다.

비판적 사유와 창조의 역량은 한 사회의 문화와 민주주의를 성숙시키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입니다.

우리가 찬란한 문화와 전통을 가질 수 있는 것도 바로 목숨을 내놓고 직언하는 인문의 정신이 살아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어렵게 예술혼과 문학정신을 지켜가는 작가들을 지원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촛불시위에 참가하면 문예진흥기금 보조금 지원한 것을 회수하겠다며 각서를 쓰라고 했습니다.

독재정권에서는 해직과 투옥, 고문과 같은 폭력으로 예술인들을 길들이더니 이제는 돈으로 길들이려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한없이 절망하고 말았습니다.

각서쓰기를 거부한 <한국작가회의>는 삼 년째 단 한 푼도 정부지원금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 정부는 자기들 뜻을 따르지 않는다고, 임기가 보장된 문화단체기관장들을 내쫓고, 김제동, 김미화를 비롯한 유명 연예인들마저 방송 프로그램에서 퇴출시키고, 그들을 사찰했습니다.

청와대가 민간인을 불법으로 사찰한 사실만으로도 천인공노할 일인데, 이 정부는 사과는커녕 오히려 전 정부도 한 일이라고 물타기하고 있습니다.

고인이 된 전 대통령까지 욕보이며 자신들의 불법사찰 행위를 물타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수많은 기자와 PD, 아나운서들을 거리로 내쫓은 것도 결국은 반대의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함이었습니다.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자유롭게 상상할 권리마저 빼앗긴 사회는 죽은 사회입니다.

민주주의도 평화도 희망도 사라진 나라에서는 문학과 예술도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습니다.

무너진 언로와 문화의 기틀을 바로 잡고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 이것이 지금 정치가 해야 할 일입니다.

제가 울면서 쓰지 않은 시는 남들도 울면서 읽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껏 제 문학이 가난과 소외, 눈물과 고통, 사랑과 희망을 이야기했던 것처럼, 힘들고 지친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위한 제도를 만드는 일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려고 합니다.

함께 눈물 흘리고 그 눈물을 닦아주고자 합니다.

시인의 마음으로 그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주어진 봉사 기간이 끝나고 나면 저는 다시 시인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문학으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고 선배문인, 동료 문인들과 독자들이 요구합니다.

저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 사회가 민주화의 길을 걸어오는 동안 시장은 자유화의 길로 달려왔습니다.

그래서 양극화는 심화되고 불평등과 불균형과 차별의 벽은 높아져 왔습니다.

이런 체제 안에서는 다음에 누가 대통령이 되고 누가 국회의원이 되더라도 희망을 가질 수 없습니다.

돈이 없어 공부도,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해야 하는 사회, 자살률이 이렇게 높은 사회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라 할 수 없습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거치며 2013년 이후에는 한국사회의 새로운 판을 짜야 합니다.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벽을 만납니다.

어떤 벽도 나보다 강하지 않은 벽은 없습니다.

그러나 물 한 방울 없고 흙 한 톨 없는 벽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담쟁이를 보십시오.

나 혼자만 살길 찾으면 된다고 생각하지 않고, 백 개 천 개 이파리들과 손에 손을 잡고 한 발짝씩 나아가 마침내 벽을 넘는 담쟁이를 보십시오.

뿌리로 벽을 뚫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붙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포기하지 않는 담쟁이를 보십시오.

그리하여 마침내 절망적인 환경을 아름다운 풍경으로 바꾸는 담쟁이처럼 우리도 우리를 가로막는 이 벽을 넘읍시다.

그런 담쟁이를 보면서 이런 시구절을 썼습니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중략)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4월 11일 수요일, 여러분과 함께 그 벽을 넘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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