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냐 넌'…민주당 또 뒤흔드는 강성 지지자

강성지지층 '이탈표 31명' 색출…문자폭탄에 의원들 '부결' 인증
과거 초선들 '조국사과' '법사위원장 국힘 이관' 등 '색출광풍' 재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일 오후 서울 시청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범국민대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3.3.1/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서울=뉴스1) 이서영 기자 = 과거 더불어민주당을 흔들었던 강성 지지자들의 '색출광풍' 악몽이 재현되고 있다. 개딸(개혁의딸)들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에 반대표를 던지지 않은 의원들을 색출해 '낙선명단'을 만들고 '문자폭탄'을 돌리고 있는 것. 이에 이재명 대표가 나서서 색출보다는 당의 화합과 단합을 강조하고 나섰음에도 진화 되지 않는 모양새다.

2일 민주당 당원 게시판과 이 대표 팬카페인 '재명이네 마을'등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강성 지지층인 개딸(개혁의딸)들이 체포동의안에 부결표를 던지지 않은 의원들을 색출해 살생부를 만들고 있다.

이들은 소위 '수박'으로 파악되는 민주당 의원들에게 문자를 보내 체포동의안 찬성표를 던지지 않았다는 답장을 받은 것을 인증하기도 했다. '수박'은 겉은 민주당, 속은 국민의힘이라는 뜻으로 비명(비이재명)계를 지칭하는 은어다.

강성지지층은 최소 31명의 이탈표가 발생했다고 보고 비명계 의원들을 위주로 색출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본회의에서 여야 의원 297명이 표결에 참여해 가결 139표, 부결 138표, 기권 9표, 무효 11표로 부결됐다. 민주당 소속 의원이 169명인 것을 고려할 때 최소 31명이 가결을 선택했다는 분석이다.

커뮤니티에 따르면, 강성지지자는 "의원님은 부결표를 던지셨나 가결표를 던지셨나. 수박이라 불리는 리스트에 들어가 있던데 확실한 답변을 들려달라"고 따져 물었다. 이에 의원실은 부결에 투표했다고 해명했다.

색출 명단에 오른 한 민주당 의원은 "말하기 어려운 수준의 폭언이 담긴 문자들이 계속 들어온다"며 "무시하기도 어렵고 안 당해 보면 모른다"고 호소했다.

이밖에도 이 대표의 강성 지지층 사이에선 "이탈자는 자수하라" "수박즙을 짤 때가 왔다" "1급 역적을 색출해야 한다" 등 과격한 반응이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 강성지지자들이 이재명 당대표 체포동의안에 부결표를 던지지 않은 이들을 반드시 깨서 없어야 할 '수박'(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라며 살생부를 제작하는 한편 수박깨기 행사를 예고했다. (SNS 갈무리)

강성지지자들은 문자폭탄 외에도 '수박 깨기?' 라며 오는 3일 오후 여의도 민주당 당사에서 수박들을 규탄하는 집회를 예고하기도 했다. 직접 행동에도 나선 셈이다.

강성지지자들은 박지현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에 이어 이낙연 전 대표의 출당도 요구하고 나섰다. 민주당 당원청원시스템에 올라온 청원에 권리당원 2만 명이 동의할 경우 지도부에 청원 내용을 보고하고 5만 명이 동의한 경우 지도부가 답하기로 돼 있다.

민주당 국민응답센터에 올라온 '박지현 전 위원장에 대한 출당권유 징계를 요구한다’는 청원은 2일 오전 기준 6만 명이 넘게 동의를 받았다.

청원인은 글에서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 가결을 주장하는 박지현 전 위원장의 징계를 요청한다. 16일, 검찰은 이재명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청구)했다"며 "누가 보더라도 검찰의 횡포이자, 정치검찰들의 공작이다. 허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박 전 위원장은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을 가결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밝혔다.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 다음날인 지난달 28일에는 '이번엔 이낙연 전 대표를 민주당에서 영구제명해 해야 한다'는 청원이 올라왔다. 이 청원에는 2일 오전 11시 기준 2만6000명이 넘는 당원이 동의했다.

청원자는 "지난 대선 때 대장동 건을 터뜨려서 지금 이 대표가 고통을 받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이낙연 전 대표"라며 "사실 대장동 사건과 이 대표는 무관하다는 것이 정영학 녹취록을 통해 밝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 대표는 아직까지도 사과하기는커녕 어떻게 하면 자기 사람들을 이용해서 이 대표를 제거할까 궁리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영구제명해야 한다는 민주당 청원. 민주당 국민응답센터 캡쳐 갈무리.

이같은 강성지지층의 색출광풍은 과거 문재인 전 정부 체제때를 연상 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1년 초반, 민주당 초선의원들은 조국 사태에 대한 반성 메시지를 냈다가 강성 지지자들로부터 문자 폭탄을 받은 적이 있다. 강성 지지자들은 이들을 '초선5적' '초선족' 등의 멸칭을 쓰며 색출 작업에 몰두했다.

결국 성명에 참여한 장경태 의원은 "조국 전 장관이 잘못했다고 얘기한 것이 아닌데, 왜곡해서 알려졌다"며 "더 처절하게 반성하고, 사죄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저 개인적으로는 조 전 장관이 잘못했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당시에도 민주당 내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조응천 민주당 의원은 당시 도종환 비상대책위원장에게 "강성 지지자들로부터 초선 의원들을 보호하라"고 공개 요구하기도 했다.

조 의원은 "몇몇 진보 진영 셀럽들이 초선의원 5명의 휴대전화 번호를 노출시켜 좌표를 찍고 '양념'(악플 공격)을 촉구했고 실제 문자폭탄이 쏟아졌다"며 맷집이 약한 의원들은 진저리치며 점점 입을 닫고 있다. 당이 점점 재보선 패배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또 민주당 후반기 송영길 전 대표 시절, 법사위원장 자리를 국민의힘에 넘기기로 결정하면서 친문 지지자들의 반발이 거셌다. 이들은 송 전 대표와 윤호중 전 원내대표 등 지도부 사퇴를 촉구했고 이른바 문자 전화 폭탄을 하루에 수천 통씩 날린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당내에서는 과거 문자폭탄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의원들이 자칫 특정지지 세력만 바라보고 정치를 하는 듯한 모양새가 대의민주주의를 왜곡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있다. 2023.2.24/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이를 의식한 듯 이재명 대표는 강성 지지자들의 색출 작업이 과하다는 지적에 대해 "이번 일이 당의 혼란과 갈등의 계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며 "민주당을 사랑하는 당원들은 중단해주셔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직자들은 이 부분을 유념하고 의원 및 당원들과 소통을 강화해 해소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비명계는 이 대표의 화합 선언에 대해 '당연하다'며 동의하는 모양새다. 이 대표가 이탈표를 색출하는 등 강경하게 나설 경우 당내 다툼이 거세지며 내년 총선에서도 패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비명계 의원은 통화에서 "(이 대표의 언급은) 잘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한다"며 "민주당이 총선 승리를 위해 각자 고민한 결과들이 서로 다르게 나타난 건데, 그걸로 서로 적대시하고 몰아낸다면 민주당이 국민들로부터 멀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2일 오전 회의에서 3월 임시국회 소집도 '이재명 방탄'을 위한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설상가상 개딸이라고 불리는 이 대표 강성지지자들은 수박을 색출하겠다며 44명의 의원 얼굴과 휴대전화 번호가 담긴 수박명단까지 돌고 있다"며 "개딸 홍위병들의 행태는 헌정사상 유례없는 유형의 폭력"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seol@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