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려난 김정일의 '선군절'…김정은, 선대 색채 지우기 지속

선군절 당일 1면에 경제 기사 보도한 노동신문…'선군' 언급도 한 차례
2020년대 들어 의미 축소된 '선군절'…선대 지우기 지속

(평양 노동신문=뉴스1) =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를 기념하는 '선군절'을 맞아 김 위원장의 동상이 있는 만수대언덕을 참배하는 북한 주민들과 군인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서울=뉴스1) 윤주현 기자 = 북한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치사상인 '선군정치'를 기리는 '선군절'의 정치적 의미를 축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일영도체계를 강화하는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선대 지우기' 기조가 선군절에도 적용되는 것으로 26일 분석된다.

노동신문 1면서 빠진 선군절 기사…'선군' 단어도 단 한 차례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25일 선군절 66주년을 맞아 이를 기념하는 기사를 신문 2면에 실었다. 신문 1면에는 박태성 내각총리의 경제 시찰 소식과 올해 2월 9차 노동당 대회에서 결정된 국가발전 5개년 계획 완수를 독려하는 기사가 게재됐다.

선군절은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60년 8월 25일에 6·25 한국전쟁 당시 서울에 가장 먼저 진입한 '류경수 제105탱크사단'을 현지지도한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핵과 미사일 개발에 총력을 기울인 김 위원장의 통치사상인 '선군정치'의 정당성과 업적을 선전하는 날로, 북한은 지난 2013년부터 선군절을 국가적 명절 및 공휴일(국가적 휴식일)로 공식 지정하기도 했다.

이에 걸맞게 노동신문의 대대적인 선군절 관련 보도 또한 지난해까지 꾸준히 이어졌다. 지난 2024년 선군절에 노동신문은 1면에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의 혁명무력 건설 업적은 강대한 우리 국가와 더불어 끝없이 빛날 것이다'는 기사를 배치해 김 위원장의 선군 업적을 조명했다.

지난해 선군절에도 노동신문은 1~2면을 모두 선군절 관련 보도로 채웠다. 1면에는 선군절에 대해 "이날이 있어 우리 혁명무력의 강화·발전과 주체혁명 위업 수행에서 새로운 전환이 일어나게 됐다"며 김 위원장의 선군 노선을 정당화했다. 2면 또한 '8월 25일, 역사의 이날이 있었기에'라는 기사로 기념일의 의미를 부각했다.

그런데 올해는 선군절 관련 기사가 내각총리의 경제 시찰 기사에 밀려 2면에 배치되는 이례적인 모습이 나타났다. 신문은 김 위원장의 '선군 신화'가 창조됐다는 강원도 철령 일대를 조명하며 김 위원장의 업적을 되짚으면서도, 이를 김정은 총비서의 지도력과 연결했다. 해당 기사에서 '선군'이라는 표현도 단 한 차례만 사용하는 등 과거 보도 톤과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기념행사의 규모도 대폭 축소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지난 2023년까진 선군절 당일에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며 관영매체를 통해 이를 비중 있게 보도했다. 하지만 2024년부터는 관련 기사가 거의 사라졌다.

사실상 전 분야에서 선대 지우기 진행 중인 北…김정은 '유일영도' 부각

북한이 선군절 관련 선전 규모를 대폭 줄인 것은 김정은 총비서의 '유일영도'를 부각하기 위해 진행 중인 '선대 지우기'의 일환으로 분석된다.

김 총비서는 특히 노동당이 아닌 '국방위원회'를 핵심 통치기구로 삼아 군대를 전면에 내세웠던 김정일 위원장 시대 기조에서 벗어나 김일성 주석처럼 '당적 통치'를 중시하고 있다. 김 위원장 시절 통치 기구였던 국방위원회는 국무위원회로 바뀌어 외교 기능도 일부 수행하는 등 성격이 재편됐고, 2021년엔 노동당 8차 대회를 통해 당 규약에서 '선군'이라는 단어도 삭제했다.

최근 수년간 김 총비서는 선대 지도자의 생일 등 각종 국가 명절에도 금수산태양궁전을 직접 참배하지 않거나,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 김정일 위원장의 생일인 '광명성절' 등의 용어 사용을 자제하면서 최고지도자에 대한 신격화도 줄이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종합적으로 김 총비서를 중심으로 한 '유일영도체계'를 다각도로 강화하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북한은 지난 2월 노동당 제9차 대회를 통해 '유일 영도 체계'를 한층 강화한 것으로 분석된다. 노동신문은 당 대회 관련 보도에서 당 규약 개정 사실을 밝히며 "당 건설과 당 활동 전반에 대한 당 중앙의 유일영도 체계를 철저히 확립하고, 중앙집권적 규율을 강화하는 원칙에서 당 중앙 지도기관들의 권능과 사업체계를 명백히 규제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다만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 같이 꾸준히 독자적인 통치 체제 구축을 강화해 왔다는 점에서 김 총비서가 앞으로도 여러 방면에서 '선대 지우기'를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선군절 축소 등의 움직임은 김정일 통치 시기 선군정치의 유산을 청산하는 과정의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라며 "시간이 흐를수록 선군절의 의미와 상징성은 더욱 퇴색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gerrad@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