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쨉니다" 스탈린·김일성 사진 찢는 '불손' 까지…초강수 둔 北 대표
[남북회담 사료 공개] 핵공동위서 "6·25 일으킨 쪽이 누구인가" 공방
北 '南의 북침' 주장에 증거 제시하며 고성 오가
- 유민주 기자
(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내 쨉니다(찢습니다). 사진 지금."
1992년 12월 17일 남북 핵통제공동위원회 마지막 본회의인 제13차 회의. 남측 위원장인 공로명 전 외교장관이 북측 대표인 최우진 외교부 부부장에게 사진 한 장을 건넸다. 김일성 주석과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린 신문 사진이었다.
공 위원장이 "6·25는 김일성과 스탈린이 공모해 일으킨 전쟁이라는 증거"라며 사진을 내밀자, 최 부부장은 사진을 받자 쥐더니 바로 찢어버렸다. 공 위원장이 "위대한 지도자 사진인데 왜 찢습니까"라고 되묻자 북측은 "그쪽에서 도발하려고 계획했다. 계획적이다"라고 맞받아치며 회담장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거칠어졌다.
통일부가 30일 공개한 3836쪽 분량의 비공개 남북회담 사료에는 이 장면뿐 아니라 1991년 말부터 1993년 초까지 진행된 남북 핵협상 과정에서 핵문제를 바라보는 북한의 시각과 협상 논리가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북한이 6·25전쟁의 책임을 남측에 돌리고 미국의 핵위협을 이유로 핵문제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펼친 반면, 한국은 소련 측 문서와 남북 합의를 근거로 맞서며 치열한 공방을 벌였던 당시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남북 핵통제공동위 제13차 회담에서 북한은 6·25전쟁 책임이 남측에 있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하며 한반도 긴장의 원인을 미국과 한국에 돌렸다. 외부의 핵위협이 계속되는 만큼 자위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논리도 폈다.
이에 공 위원장은 6·25전쟁이 북한의 남침이라고 기록한 니키타 후르시초프(흐루쇼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회고록과 공개된 구소련 외교문서를 근거로 김일성 주석이 스탈린의 지원을 받아 남침을 준비했다는 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공 위원장은 "후르시초프 회고록과 구소련 외교문서에 '스티코프 전문'까지 공개돼 있는데 더 이상 북침 주장을 반복하지 말라"며 "무엇이 동족을 해친 범죄적 행위인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라고 맞섰다. 스티코프 전문은 6·25전쟁 때 스탈린과 평양 주재 소련대사인 테렌치비티 스티코프가 주고받은 비밀 전문이다. 이 전문에는 소련의 군수지원 등 북한과 소련이 전쟁 준비를 사전에 공모했음을 알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번에 공개된 사료에선 남북이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이후에 진행을 추진한 상호 사찰 방식에 대해 서로의 생각이 180도 달랐던 부분도 확인할 수 있다.
북한은 1991년 말 핵협상 과정에서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조치협정에 서명하겠다고 약속했고, 이에 한국 정부는 1992년 팀스피리트 한미연합훈련을 취소했다. 북한은 1992년 1월 IAEA 안전조치협정에 서명하고 같은 해 5~6월 첫 임시사찰도 수용했다.
이어 1992년 2월 남북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발효했지만, 상호 사찰 방식에서는 끝내 접점을 찾지 못했다. 한국은 조기 상호 사찰과 특별사찰을 요구했고, 북한은 영변 핵시설 사찰을 허용하는 대가로 주한미군 기지에 대한 사찰을 요구했다. 주한미군의 전술핵무기도 사찰 대상이 돼야 한다는 것이 북측의 주장이었던 것이다.
같은 해 3월 출범한 핵통제공동위에서도 양측은 사찰 대상과 방식, 특별사찰 도입 여부 등을 놓고 평행선을 달렸다.
북측 대표는 남측이 미국과 팀스피리트 훈련 재개를 합의한 점을 문제 삼으며 "민족 앞에 사죄하고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맹세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또 "미국의 핵무기를 끌어들인 사람과 외부의 핵무기를 끌어들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동등하게 사찰을 받을 수 있느냐"며 주한미군기지가 사찰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것은 편파적 조치라고 반발했다.
그러나 우리 측도 "비핵화 공동선언은 여러분들의 계획을 추진하도록 만들어준 문서가 아니다"라며 강경한 태도로 북한을 계속 압박했다. 당시 남측은 미국과의 연합방위체제를 비난한 북측에 "세계 여러 나라가 국가 안보를 위해 연합방위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며 "한미 공동방위체제도 북한의 6·25 남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반박하는 등 핵문제를 둔 남북의 공방은 34년 전에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통일부는 이번 회담록 공개가 1992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채택과 이후 핵통제공동위원회 협상 과정을 보여주는 자료이자, 남북이 핵문제를 직접 협의했던 당시 협상 내용과 쟁점을 확인할 수 있는 사료적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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