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문 두드렸다"…우크라 POW 만난 탈북민 활동가 뒷이야기[155마일]
장세율 겨레얼통일연대 대표 겸 북한군자유송환비상대책위원회 사무총장 인터뷰
- 유민주 기자
(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왜 북한군은 전장에서 자결하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북한군이 본격 투입되면서 우크라이나군과 시민사회가 가장 궁금해했던 질문이었다고 한다. 드론이 보이면 몸을 숨기는 러시아군과 달리 북한군은 무모할 정도로 돌격했고, 생포 직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가 드론으로 촬영된 영상을 통해 수없이 많이 포착돼 왔다.
현대전에서 포로가 되기 전 자결하는 일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오늘날 대다수 문명국가는 군법과 국제법(제네바 협정) 등을 통해 군인들에게 '포로로 잡히더라도 살아남아 기회를 도모하라'고 가르친다. 인명 존중의 가치뿐만 아니라 살아 돌아온 포로가 전술적 정보나 적의 전쟁 범죄를 증언하는 귀중한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군인의 자결은 과거에나 지금이나 흔한 일이 아니기에, 최근 전장에서 북한군의 망설임 없는 자결 현상을 계속 목격한 우크라이나군은 이들을 이해하기 위한 정보가 전략적으로 반드시 필요했다. 다만 이들의 '인권'을 고려하게 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지난 7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 처우조정본부(POW)을 방문한 장세율 겨레얼통일연대 대표는 지난 20일 뉴스1과 만나 "처음에는 현지 시민사회도 북한군 포로 인권 문제에 공감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4년째 이어진 전쟁으로 우크라이나 사회는 극심한 피해를 겪고 있다. 전사자와 부상자를 포함한 사상자 규모는 최대 60만명으로 추산되며, 수백만 명의 피란민과 실향민도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군은 러시아 편에서 우크라이나를 공격한 '침략군'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우크라이나에서 '상대편 군인'의 인권을 이야기하는 일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지난해 2월부터 약 1년 동안 우크라이나 정부와 시민단체 관계자들에게 설득 작업을 이어온 장 대표는 POW를 방문하게 된 과정과 북한군 포로 문제를 둘러싼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시민사회가 '북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2024년 10월 북한군이 쿠르스크 전장에 본격적으로 투입되고 나서였다. 이는 한국에 있는 북한 인권 활동가들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보도를 통해 공식적으로 확인된 이후 많은 활동가와 북한 연구자들도 이 사실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듬해인 2025년 1월 어린 북한군 2명이 우크라이나군의 특수작전으로 생포됐고, 이들의 증언을 통해 자결의 실체가 드러났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깨달은 포로 중 한 명인 백평강 씨는 북한군 지침에 따라 자결하려 했으나 의식을 잃어 우크라이나군에 생포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장 대표는 같은 해 2월 통일부가 주최하는 북한 인권 증진 민간단체 공모 사업인 '제22회 북한자유주간' 행사에 참여했다. 당시 벨기에·독일·프랑스 등 유럽 국가의 시민단체들과 공동 행사를 준비하게 됐는데, 장 대표와 한국의 북한 인권 활동가들은 북한군 포로 문제를 설명할 기회를 얻게 됐다.
장 대표는 특히 북한군이 왜 생포를 거부하고 극단적으로 행동하는지 이해하려면 북한 체제와 공포정치를 알아야 한다는 점을 우선 집중적으로 전달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자신이 북한군에서 복무하며 받았던 교육 경험과 함께, 북한군 내부의 충성 체계와 처벌 구조 등을 설명했다고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현지 시민사회가 이에 공감한 것은 아니었다. 장 대표는 "전쟁 범죄하고 인권 범죄가 같이 해결되어야 한다는 점을 계속 강조했지만, 결국 우크라이나 시민단체들과는 당시 공동 행사를 함께하지 못했다"며 "(우크라이나) 시민단체들은 전쟁범죄 조사 협력은 가능하지만, 북한군 포로의 인권 문제까지는 국민 정서상 어렵다는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결국 장 대표는 초반에는 파병된 북한군인 '폭풍군단'이 어떤 조직인지, 북한군 내부의 사상교육 체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왜 이들이 생포보다 죽음을 택하는지 등에 대한 기본 정보를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 이후에도 우크라이나 시민단체들이 궁금해하는 내용들을 정리해 메일과 보고서 형태로 지속적으로 공유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같은 해 6월 우크라이나 포로수용소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시민단체들로부터 북한군 포로들의 심리 상태가 상당히 불안정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장 대표는 "우크라이나 포로수용소에 있는 러시아군들은 가족들이 제3국을 통해 면회를 오고 있었는데, 북한군 포로들은 사실상 가족을 만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고 말했다.
북한군 포로들이 한국 등 제3국에서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단순히 우크라이나 정부 결정만으로는 부족하며, 국제기구를 통한 복합적인 절차가 필요하다. 현재 북한군 포로 문제는 국제적 보호 절차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 단계다.
그 과정에서 핵심은 포로 본인의 '자유의사' 확인이었다. 수용소에 억류된 상태에서 나온 발언이 과연 진정한 의사인지 검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우크라이나 정부나 시민단체가 아닌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등이 개별 면담을 통해 포로가 실제로 북한 송환을 거부하고 있는지 독립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정부도 배제된 채 적십자가 직접 진술을 기록하고 국제기구에 보고하는 절차를 거친다.
지난해 3월 포로들 중 한 명이 한국으로의 귀순 의사를 먼저 밝혔고, 나머지 한 명도 고심 끝에 지난해 10월 귀순 의사를 밝히면서 이들이 모두 한국행을 원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장 대표는 지난해 10월 북한군을 직접 면회한 김영미 PD를 통해 포로들에게 편지를 전달했다고 한다. 이후 전달받은 친필 답장에는 "한국에 가고 싶다"는 의사가 비교적 분명하게 담겨 있었고, 이를 계기로 우크라이나 시민단체들 내부에서도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편지를 읽는데 절박함이 느껴졌다"며 "생각보다 훨씬 두려워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이건 우리에게 보내는 구조 신호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 편지를 계기로 더 가족 같은 마음으로 챙겨야겠다고 생각하게 됐고, 한국에 올 수 있도록 진짜 무엇인가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며 "그다음 달인 11월 7일 바로 '북한군자유송환비상대책위원회'를 발족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장 대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당시에도 POW 측은 메일을 통해 북한군 포로들이 여전히 포로 교환 대상이라는 입장을 유지했다고 한다. 북한으로 송환될 경우 실질적인 박해 위험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이에 장 대표 측은 우크라이나 정부 25개 부처에 북한군 포로에 대한 인도적 보호 요청서를 지속적으로 발송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올해 3월 15일 우크라이나 측은 관계 부처 회의를 통해 북한군에 대한 보호 조치를 최종 결정했고, 같은 달 23일 비대위 측에 공식 메일을 전달했다. 메일에는 북한군 포로들이 제네바협약에 따라 인도적 보호를 받고 있으며 국제 보호기구들의 면접도 허용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장 대표는 "비강제 송환 원칙을 고려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고 나서야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자유의사가 확인된 이후에는 국제 보호 대상자 등록 절차가 이어진다. 장 대표는 적십자의 확인 이후 유엔 난민기구(UNHCR) 등 국제보호기구가 해당 인원을 국제 보호 대상자 또는 난민으로 인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군 포로 사례는 해외 파병 군인이 포로가 된 뒤 자유의사를 밝힌 첫 사례에 가까워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우크라이나 측이 이 같은 절차를 강조하는 배경에는 국제인도법 문제가 있다고 짚었다. 제네바협약상 전쟁포로는 원칙적으로 종전 후 본국 송환 대상이 되지만, 우크라이나는 북한군 포로들이 본국 송환을 거부하고 있다는 점과 강제 송환 시 인권 침해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 국제법 틀 안에서 문제를 처리하려 한다는 것이다.
특히 우크라이나는 정치적 협상이나 포로 교환 카드 방식이 아니라 국제기구 판단과 자유의사 원칙을 중심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고 장 대표는 전했다. 러시아와의 포로 교환 과정에서 자유의사 원칙이 흔들릴 경우, 자국 포로 송환 문제 전반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장 대표는 북한군 포로들이 국제 보호 대상으로 인정될 경우 그다음 단계에서 한국 정부가 헌법상 자국민 보호 원칙에 따라 여권 발급 및 입국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탈북민들이 제3국에서 난민 심사를 거쳐 한국행 절차를 밟는 과정과 유사한 구조라고 덧붙였다.
"나는 탈북했을 때 태국에서 난민 심사를 받고 들어왔다. 중국에 파견 나간 북한 노동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동남아 쪽으로 우회해서 한국에 들어오는 루트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전쟁 지역 복구 작업 등으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접경 지역에 북한 노동자들이 더 많이 파견될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태국에 난민 수용소가 있는 것처럼, 앞으로는 우크라이나를 통해 탈북할 수 있는 새로운 루트를 확보하는 문제도 중요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우크라이나 측에서도 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번 우크라이나 방문에서 긴장감과 평화로움을 동시에 느꼈다고 말했다. 전사자들을 추모하는 공간인 마이단 광장에서 불과 150m 떨어진 곳에 젊은 청년들이 춤을 추는 클럽이 있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를 묻자 현지에서 이런 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우리가 자유로운 일상을 지키는 것 자체가 침략자들을 이기는 것이고, 결국 그것이 우리가 승리하는 방식이다'. 장 대표는 이 말이 전쟁 중에도 인간다운 삶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들렸다고 한다. 우크라이나가 북한군 포로 문제에서도 인권이라는 가치를 쉽게 포기하지 않으려는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던 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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