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이벤트' 없었지만 큰 주목받은 북한…한·미·중 대북 외교 본격화
트럼프의 깜짝 회동 제안으로 北에 시선 집중…北은 민감하되 거리 둔 외교
내년 4월 미중 정상회담…APEC 의장국 中, 한반도 문제 띄울 가능성 커져
- 김예슬 기자
(서울=뉴스1) 김예슬 기자 = 경주에서 일주일간 숨 가쁘게 진행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서 미국과 중국, 의장국인 한국 외에도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곳은 APEC 참가국이 아닌 '북한'이었다는 평가가 2일 나온다.
북한이 주목을 받은 이유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와의 '깜짝 회동' 가능성 때문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APEC 정상회의 주간이 시작되기 전인 지난 24일부터 "김정은을 만나고 싶다"라고 밝히면서 두 정상의 회동이 이번 APEC에서 가장 큰 이벤트가 될 수도 있다는 관측마저 나왔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에 '공식 반응'을 보이진 않았지만, 외교적 제스처로 이를 의식하고 있다는 티를 냈다. 지난 22일엔 평양에서 경주까지의 거리(약 450㎞)에 맞춰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을 발사했고,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하루 전인 지난 28일에도 탐지가 어려운 방식의 순항미사일을 발사했다.
지난 26일엔 대미 외교의 책임자인 최선희 외무상이 러시아와 벨라루스로 출장을 가 APEC이 끝난 31일에서야 복귀했다. 전반적으로 미국과의 어떤 접촉도 응하지 않겠다는 냉랭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이러한 북한의 행보에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빠져 있었던 것도 특징이다. 김 총비서는 두 번의 미사일 발사를 참관하지 않았고, 지난 30일엔 평양 인근의 병원 건설장을 시찰하고, 1일엔 러시아 파병 부대인 11군단(폭풍군단)을 시찰하면서 APEC이나 트럼프 대통령과 무관한 공개활동을 진행했다.
다만 이는 단순한 '무관심'의 표현이 아니라 잘 계산된 행보로 볼 수 있다. 북한은 그간 김 총비서와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 친분'은 정세와 무관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특이한 행보를 보여 왔다. 지난 2019년 2월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사전에 조율된 의제를 깨면서 협상이 결렬돼 김 총비서가 '망신'을 당했음에도, 미국과의 외교가 중요한 북한의 입장이 반영된 방식으로 볼 수 있다.
김 총비서가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에 침묵하면서도 직접 외교적 행동에 나서지 않은 것은. 미국의 제안을 거절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체면은 상하지 않게 하겠다는 계산에 따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거리를 둔 북한의 행보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얻은 '성과'는 결코 적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가리켜 "일종의 핵보유국(nuclear power)"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북한이 자신들의 국제적 지위가 핵보유국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맞장구를 치는 듯한 모습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에서의 핵보유국(nuclear weapon state)과는 다르지만, 전문가들은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핵 보유를 인정받는 것이 NPT 체제에서의 인정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길 것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 대화한다면 대북제재 완화 혹은 해제 문제도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상황을 종합하면 북한은 이제 '핵보유국으로서 제재 해제 문제를 논의'하는 대미 협상의 시작점을 설정하게 된 셈이다.
한중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문제를 '전략적 소통 의제'로 끌어올리자는 이재명 대통령의 제안에 중국이 "지역의 평화와 발전을 위해 긍정적 에너지를 불어넣을 것"이라고 호응한 것도 북한의 입장에선 '득'이다. 중국이 북한을 압박하지 않고 지지하는 방식의 외교를 펼치겠다는 의사를 재확인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내년 APEC 의장국이고, 이에 앞서 내년 4월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찾아 미중 정상회담을 열기로 했기 때문에 이때가 대북 외교의 새 분기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반도 사안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는 일정이라는 점에서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APEC의 '보이지 않는 참가국'으로 존재감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 북한은 올해 12월 중순으로 예고한 노동당 전원회의와, 내년 1월 개최가 예상되는 9차 노동당 대회를 통해 "김정은과 만나기 위해 돌아오겠다"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강한 대화 의지, 시진핑 주석의 외교적 지지를 기반 삼아 전면적 대미 외교에 나설 시점을 구상할 것으로 보인다.
yeseu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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