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의 확장] 어려운 남북관계 속 사라진 북한의 '통일 포스터'

“Design으로 보는 북한 사회” 제39편 (39)통일과 디자인-1

편집자주 ...[시선의 확장]은 흔히 '북한 업계'에서 잘 다루지 않는 북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그간 주목 받지 못한 북한의 과학, 건축, 산업 디자인 관련 흥미로운 관점을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최희선 디자인 박사·중앙대 출강

(서울=뉴스1) 최희선 디자인 박사·중앙대 출강 = 벌써 5월의 넷째 주가 다가온다.

다음 주는 대한민국 정부에서 국민의 통일 의지 고취를 위해 11년째 개최하고 있는 '통일교육주간'이다. 올해 통일교육은 메타버스 경진대회, 글램핑 토크쇼 등 MZ 세대가 흥미를 보일 다양한 활동들로 구성됐다. 중장년층에게 ‘통일교육’하면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초·중·고에서 미술 시간 의무적으로 그렸던 남북 평화통일 포스터가 아닌가 싶다.

남북의 대결 구도로 서로 데면데면한 요즘, 북한에서 '한반도 통일'을 주제로 새로 디자인한 선전화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작년 말 당 기관지 노동신문의 홈페이지를 개편하면서 '조국통일'의 기사 항목을 없애버렸다는 소식(강진규, NK Economy 2022. 11. 3.)이 들렸는데, 아마 최근 북한의 통일 선전화가 사라진 것도 북측의 적대적 대남정책으로의 변화가 그 배경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북한미술계에서 '통일'의 소제는 주로 선전화가들의 몫이었다.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 해당하는 북한 선전화는 때로는 남한과 비슷한 남북통일의 소재를 이미지로 활용하기도 하며, 시대별로 특별한 방법으로 디자인하기도 한다.

북한의 통일 포스터들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한반도기(좌부터) 1. 김휘웅·리광철(2002), <조국통일의 결정적 국면을 열어나가자!>, 『조선문학예술년감』2. 최제식·최성근(2005), <자주적이고 번영하는 통일강국을 일떠세우자!>, 『조선문학예술년감』3. 2018년 선전화, <온 겨레가 민족자주의 기치밑에 하나로 굳게 뭉쳐 부강번영하는 통일강국을 일떠세우자!>, 북한의 대남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 트위터 게시물(2018. 6) 4. 2018년 선전화, <조선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수립하기 위하여 적극 투쟁하자!>, 북한의 대남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 트위터 게시물(2018. 6)

남북한 통일포스터에 빈도 높게 사용되는 소재는 단연 '한반도'이다.

북한 선전화에서 한반도는 통일된 금빛 조국으로, 녹색 소나무 형상으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가장 흔히 볼 수 있었던 것은 백색 배경의 '푸른 ‘한반도'일 것이다. 시기적으로 보면 북한 선전화에 평화로운 하늘빛의 파란색 한반도가 사용된 때는 1991년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이후인 듯하다. 80년대까지 북한 통일 선전화들을 보면 사회주의 상징의 '붉은' 한반도와 주먹으로 적을 부수는 과격한 적화통일의 묘사가 주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선전화에서 한반도기를 3명이 같이 들었을 경우는 각각의 인물은 북한과 남한 주민, 해외 동포를 의미한다. 2명이 등장할 때는 남북의 힘으로 이루는 '자주통일'을 상징한다. 통일 선전화에 인물들이 묘사될 때는 북한은 유난히 '손'을 강조한다. 손은 통일 조국의 염원과 자주 의지의 표현이자, 남북 단결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21세기 북한의 통일 상징인 '조국통일3대헌장 기념탑'도 두 여인이 치켜세운 두 손 위에 헌장과 한반도가 받쳐져 있다. 이 기념탑은 만수대창작사에서 디자인해 2001년 완공된 것으로, 일제 해방 55주기를 상징하는 높이 55M의 대형 조형물로 남측에서 평양-개성고속도로를 통해 평양시로 진입하는 관문에 위치해 통일 선전화의 단골 주인공이 됐다.

1984년 전국 선전화전람회 출품작, 안재호의 <더는 미룰수 없다!>, 「조선예술」(1984. 8)(좌) 김동철·동하도·김명철, <우리민족끼리 힘을합쳐 조국통일 이룩하자!>(2001), 『조선문학예술년감 2002』(우)

과거 북한의 통일 선전화에는 일종의 규칙들이 있었다. 미군이 등장할 때는 시사 만화 만평 양식의 포스터로 디자인했으며, 이산가족 문제 등 감성에 호소하는 주제는 회화적 수법의 선전화로 상황 묘사를 돋보이게 했다.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선군시대에는 군인이 등장하거나 구호를 크게 외치는 인물들이 통일 포스터도 자주 등장했다.

김정은 위원장 시대 창작된 북한의 조국통일 포스터들(좌부터) 1.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의 새국면을 열어나가자!>, 「조선예술」(2014. 6) 2. <조선반도를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지대로 만들자!>(2019. 1) 3.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오는 력사적인 해로 빛내이자!>(2019. 1)

김정은 위원장의 집권 초기에는 큰 변화는 없었지만, 2018년 6월 이후로 선보인 포스터들은 손맛이 느껴지지 않는 매끈한 디지털 양식으로 완전히 탈바꿈됐다.

선전화들이 선명한 소재 묘사와 그라데이션 색 표현으로 좀 더 화려해졌고, 무엇보다도 통일 소재를 흰색 비둘기, 꽃과 나무, 어린이 등 좀 더 부드러운 내용으로 대체했다는 것이 과거와 크게 달라진 점일 것이다.

이와 같은 변화는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1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대외 선전을 위해 고심한 결과로 여겨진다. 북한의 통일 선전화는 내부뿐만 아니라 대외 메시지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북한 선전화에 푸른색 한반도기 등장은 국제 스포츠 행사의 남북 단일팀 구성처럼 남북한의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었을 때 등장했었다. 통일 선전화도 북한의 국제정세가 급변할 때 주로 쏟아져 나왔다. 최근 북한의 조국 통일과 평화 포스터는 좀처럼 볼 수 없었는데, 북한이 이와 같은 선전화를 내놓는다면 앞으로 남북대화의 가능성도 아마 긍정적으로 점쳐볼 수도 있지 않을까?

북한의 통일 포스터들을 관찰하다 보니, 남북관계가 선전화를 통해 상대방의 패를 읽는 카드 게임 같아 마음이 조금 씁쓸해진다.

somangchoi@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