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 어려웠던 그 시절 공순이들 어떻게 살았나보니

구로공단 노동자생활체험관 가보니…24일부터 가리봉오거리展

(서울=뉴스1) 고유선 기자 = '노동자들은 회사 기숙사나 가리봉 일대의 '닭장집'에서 살았다. 그나마 혼자서는 사글세를 감당키 어려워 2평 남짓한 단칸방에 세 명이 동거했다. 철제 프레임에 비닐을 씌운 '비키니장'을 들여놓으면 셋이서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했다. 한창 피어나야 할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 어린 여공들의 얼굴은 잔업과 철야로 누렇게 떴지만 박봉을 쪼개 고향집에 부치며 밝은 표정을 잃지 않았다' -심상정 '당당한 아름다움' 中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한국 산업화의 핵이자 그림자였던 서울 구로공단의 노동자들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먼지 가득한 작업장에서 근무와 잔업에 시달리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싸구려 임금에 노동력을 팔았다.

흔히 '공순이', '공돌이'로 불렸던 그들은 공단 배후 주거지역이었던 가리봉동 일대의 '벌집' 혹은 '닭장집'으로 불리던 다가구 주택에 세들어 살았다. 그야말로 더이상 집이 들어설 수 없을 것 같은 공간에도 '꾸역꾸역' 방을 만든 모습이 지금의 '쪽방촌'과 흡사하다.

공순이, 공돌이들의 눈물이 깃든 그 시절 그 곳을 재현해 놓은 금천구 가산동의 '구로공단 노동자생활체험관'을 23일 오후 다녀왔다. 주택가 한 가운데 위치한 체험관은 구로공단 역사, 공순이들의 애환과 구로 노동사(史)를 담은 기획전시실과 영상실 그리고 지하1층의 벌집 재현관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

구로공단 조성 50주년을 맞아 찾은 그곳은 평일 오후라 그런지 쓸쓸함과 적막이 감돌았다. 체험관 밖에 설치된 '가리봉상회'의 유리 낀 나무 문에는 언제 열었는 지도 모르게 먼지가 잔뜩 끼어있었다. 잘 열리지 않는 문을 억지로 열고 들어가보니 내부에는 옛날 간식과 팽이, 종이인형 등 놀잇감들이 전시돼 있었다.

노인 한 명이 지키고 있는 기획전시실은 구로공단의 역사와 그 시절 공순이들의 비밀이야기와 희망, 여공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비인간적 퇴근시간 몸수색과 소지품검사, 대우어패럴 노조간부들의 구속 사건을 계기로 벌어진 1985년 구로동맹파업,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대학생들의 위장취업 등 그 시절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줬다.

구로공단 노동자생활체험관 기획전시실 내 벌집 재현 공간 ⓒ News1

한 쪽 구석에 위치한 그 시절 공순이들이 살았던 방에는 얇은 파이프를 얼기설기 엮은 뒤 헝겊을 씌운 비키니장과 작은 책상, 서랍장과 밥 솥, 낡은 선풍기 한 대가 놓여져 있었다. 손 때가 묻은 벽지와 나무 선반, 스무살을 전후한 어린 여공들 답게 곱게 찢어붙여 놓은 잡지 사진들과 영화 포스터가 정겨웠다.

이곳에서 두 세명의 여공들은 12시간의 고된 노동을 견뎌낸 몸을 뉘이고, 가족들에게 부칠 월급을 생각하고, 야학에서 만난 선생님과 친구들을 떠올리고, 내일은 조금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품었을 것이다. 방음이 되지 않는 방들이 한 데 붙어있는 구조 탓에 옆 방에 술주정뱅이나 집나온 아이들이라도 모이는 날에는 시끄러워 잠을 설쳤을 테다.

열다섯 나이로 구로공단 공순이로 일했다는 소설가 신경숙 선생의 자전소설 '외딴방'에 의하면 그 시절 공순이들은 변변찮은 화장실도 없이 수 십명의 사람들이 좁은 공동세면장에 모여 각자 연탄아궁이에 데운 물을 들고 나와 부리나케 머리를 감고 세수를 했다. 두 서 너 개 남짓의 공용화장실에 길게 줄을 서기도 했다.

지하 1층 벌집 재현관에 들어서니 아까 기획전시실에서 본 벌집들이 밀집해 있다. 복도에는 알전구가 흔들리고 있고 1m도 되지 않는 좁은 복도를 사이로 대 여섯곳의 방들이 마주 보고 있다. 모든 방들은 두 세 평 남짓한 공간과 성인 한 명밖에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비좁은 부엌 겸 현관으로 구성돼 있었다. 방 마다 다른 주인의 취향을 반영한 듯 어떤 방에는 기타가, 어떤 방에는 미싱이 놓여 있었다.

체험관은 화요일부터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문을 연다. 매주 월요일과 설·추석연휴는 휴관한다. 관람료는 무료다.

구로공단은 구로구 구로동과 금천구 가산동 일대 1.98㎢ 일대에 1965년부터 1973년까지 조성됐다. 정부의 수출주도 정책에 힘입어 1970년대 고도성장의 심장부 역할을 담당했다.

봉제, 가발, 완구 등 노동 집약적 형태의 경공업이 부흥하던 한 때 이곳은 국내 총 수출액의 10%를 담당하기도 했다. 이후 제조업들의 급속한 쇠퇴로 쇠락의 길을 걷던 이곳은 1997년 구로첨단화계획 등이 수립되며 현재는 IT업체들이 집약된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일명 G밸리)'로 탈바꿈했다.

1970년대 구로공단 여성근로자들의 모습(사진=서울역사박물관 제공) 2015.04.23/뉴스1 ⓒ News1 고유선 기자

서울역사박물관은 구로공단에서 IT산업단지로 변모한 지난 50년 간의 시간을 기록한 '가리봉오거리'전(展)을 24일부터 7월12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가리봉동 벌집에서 직접 철거해온 문짝, 당시 월급봉투 등 생활사 자료와 사진, 인터뷰 등을 한데 모으는 등 구로공단 반세기 역사와 관련한 자료를 총망라했다.

전시는 1부 '구로공단 속으로', 2부 'G밸리라는 오늘' 등 1, 2부로 나뉘어 열린다. 1부에선 구로공단이 탄생하게 된 역사적 배경과 함께 구로공단 전성기의 모습이 펼쳐진다.

2부에선 구로첨단화계획 이후 지식기반산업 위주로 변모했고 2000년 '서울디지털산업단지'라는 새 이름을 가지게 된 일명 'G밸리'의 오늘이 소개된다.

k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