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정보기관 끈질긴 악연…선거 앞두고 '긴장감'

'공무원간첩 사건' 조작 의혹 "재선 방해 들통"
'박원순 제압 문건'·SNS 비방 등 우연의 일치?

'서울시 탈북 공무원 간첩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유우성씨와 변호인단이 14일 오후 서울 서초동 중앙지방법원 기자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뉴스1) 장우성 기자 = 국정원이 지난해 1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을 발표하자 '서울시'라는 말이 붙은 것만으로도 박원순 서울시장은 표적이 됐다. 보수 성향 단체들은 서울시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 시장을 성토했다. 시의회에서도 새누리당 측은 "간첩에게 공무원 지위를 유지시켜줬고, 탈북자들의 개인정보가 유출됐으니 박 시장이 책임져야 한다"고 추궁했다. 당시 구속된 서울시 계약직 공무원 유우성씨가 임용된 것은 박 시장 취임 이전 오세훈 전 시장 시절인 2011년 6월이었지만 공세는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지난해 8월 1심에서 유씨의 간첩 혐의가 무죄 판결되고, 항소심 중 제출된 검찰의 핵심 증거인 유씨 북한·중국 출입경 증서는 국정원 인사가 조작한 것이라는 의혹이 최근 제기되자 민주당은 "오 시장 때 채용된 사람을 조작해 박 시장의 재선을 막으려다 덜컥 걸렸다"며 정치적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재선을 저지하기 위한 국정원의 전략이 있다는 것이다. 지방선거를 100일도 남겨놓지 않은 상황에서 주목되는 대목이다.

박 시장과 국정원의 악연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는 점도 '표적론'의 개연성을 주장하는 측의 근거다.

박 시장과 국정원의 '불편한 관계'는 꽤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대 인권변호사 시절 박 시장은 정보기관들의 요주의 대상이었다. 1993년 문민정부 출범 이후 잠잠했던 정보기관과의 악연은 2008년 촛불시위 이후 재연되기 시작했다. 박 시장이 17년간의 시민단체 활동을 정리하고 서울시장에 도전하게된 이유 역시 2009년 불거진 국정원의 박 시장에 대한 사찰 의혹도 한몫했다. 시장 당선 후 불거진 각종 사건에도 국정원이 단골로 등장했다.

박 시장이 정보기관의 리스트에 올라있다는 사실이 처음 확인된 것은 1990년 10월 '보안사 민간인 사찰' 파문 때다. 당시 보안사가 이른바 '프락치'로 회유했던 윤석양 이병은 보안사 민간인 사찰 자료를 폭로하면서 양심선언을 했다. 윤 이병이 공개한 동향파악대상자 색인카드에는 김영삼 민주당 대표최고위원, 김대중 평민당 총재 등 야당 정치인을 비롯해 각계 인사 1300여명이 포함됐다.

여기에는 당시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을 겸하고 있던 박원순 변호사의 이름도 끼어있었다. 당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박원순 시장은 언론계 인사로 분류돼 보안사의 사찰 대상이 됐다. 권인숙성고문사건, 보도지침사건, 박종철고문치사사건 등 굵직한 시국사건의 변론을 맡아 이름을 알렸던 박 시장은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 당시 발기인으로 참여해 논설위원을 지내고 있었다.

박 시장은 2007년 국방부 과거사위의 조사를 통해 보안사의 '청명계획'에 따라 한승헌 전 감사원장 등과 B급 요주의 인물로 지목돼 관리받았던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당시 보안사는 정국이 혼란스러워지면 계엄을 선포해 친위 쿠데타를 일으킬 계획을 세우면서, 박 시장을 포함한 야권 인사들을 일제 검거하기 위해 집 구조와 예상 피신처까지 파악해놓았다.

군사정권 시대가 끝나고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박 시장과 정보기관은 더 맞설 일이 없어지는 듯 했다. 심지어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국정원장 후보로 하마평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2007년 대선 이후 박 시장과 국정원은 또다시 팽팽한 긴장 속에 돌입했다.

참여연대가 제 궤도에 오르자 2000년 이후에는 아름다운재단, 희망제작소 등을 설립하면서 현실 비판적 운동과는 거리를 뒀던 박 시장은 2009년 이명박 정부의 국정쇄신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연이은 언론 인터뷰에서는 국정원이 자신을 꾸준히 사찰·감시하면서 희망제작소와 정부기관·기업 사이의 계약을 백지화시키는 등 탄압했다고 폭로했다. 이에 국정원이 명예훼손 혐의로 2억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내자 박 시장은 15건의 국정원 개입 의혹 사례를 추가 제기했다. 결국 법원은 이듬해 법원은 박 시장의 손을 들어줬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국가가 개인을 상대로 냈다 급기야 패소로 연결된 소송으로 기록됐다. 박원순 시장은 이후 여러 자리에서 "이 사건이 아니었다면 시민단체에 계속 있었을 것"이라며 "이명박 정부가 나를 서울시장으로 나서게 했다"고 말했다.

서울시장 당선 뒤인 지난해 5월에는 국정원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른바 '박원순 제압 문건'이 한겨레의 보도로 공개됐다. '서울시장의 좌편향 시정운영 실태 및 대응방향'이라는 제목의 이 문건은 박 시장 당선 직후인 2011년 11월 만들어진 것으로 박 시장의 정치적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국가기관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내용이 뼈대다. 검찰은 시민단체와 민주당이 고발한 이 사건을 문건과 국정원의 고유 문서 양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했으나, 국정원 기획설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제압문건'이 작성되기 직전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박 시장 당선에)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 부서장 회의 '지시말씀'이나 비슷한 시기 국정원 요원의 SNS 계정이 박 시장에 대한 비난 글을 집중적으로 올렸다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했다.

박 시장 주변에서는 선거가 가까워 올수록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박 시장의 트위터 팔로워가 78만명에 이르지만 이중 적지않은 숫자가 '안티 박원순'이라는 분석도 한다. 아들의 병역 의혹 등 과거에 이미 규명된 내용까지도 반복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것을 보면, 과연 순수한 개인이 하는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번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증거 조작 의혹 역시 국정원이 1심을 뒤집기 위해 집착하다 화를 부른 것이라며, 앞으로 등장할 '네거티브'에 경각심을 나타내는 의견도 있다. 2011년 보궐선거 때는 박 시장이 노출된 기간이 짧았으나 이번에는 선거까지 시간이 비교적 길다는 점이 "색깔 시비를 비롯해 전방위적으로 치밀한 공격이 들어올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낳고 있다.

박 시장의 한 측근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또 어떤 동어반복, 침소봉대와 거짓말이 나올지 우려된다"며 "다시한번 정확한 팩트를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간결한 메시지를 전달, 시민이 관심을 갖고 사실에 기반해 판단하게끔 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nevermind@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