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왜장 후손 한국 찾아 사죄한다

내달 10일 충북 옥천 가산사서 '한일 화해의 날'
추모 제향 참석…단재 신채호 묘소 등 참배

충북 옥천군 가산사 주지 지원 스님이 30일 충북도청 기자실을 찾아 '대한 광복 80주년 기념과 한일 평화의 날' 행사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청주=뉴스1) 김용빈 기자 =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침략했던 왜장의 후손 2명이 우리나라를 찾아 선조의 잘못을 사죄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433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충북 옥천군 가산사 주지 지원 스님은 30일 충북도청 기자실을 찾아 다음 달 10일 가산사에서 열리는 '대한 광복 80주년 기념과 한일 평화의 날' 행사 계획을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왜장의 후손들이 방문해 참회하는 데 가해자의 진심 어린 반성을 계기로 화해와 용서, 평화의 미래로 나아가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1592년 4월 12일 일본 전국시대 최고 권력자였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키자 모두 9진이 순차적으로 조선을 침략했다.

이번에 한국을 찾는 이들은 5진 후쿠시마 마사노리 부대 소속인 쵸소 가베모토치카 왜장과 6진 모리 데루미츠 부대 소속 도리다 이치 왜장의 후손이다. 5진과 6진은 현 충청 지역에서 주로 전투를 벌였다.

지원 스님은 "음력 8월 18일(올해 양력 10월 9일)은 승병장 영규 대사와 조헌 의병장이 충남 금산 연곤평 전투에서 1500명의 의·승병과 함께 순절한 날"이라며 "그동안 가산사에서 추모 제향을 올려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올해는 왜장의 후손들이 참여해 사죄하는 자리를 갖게 되니 400여년 간 맺힌 응어리가 비로소 풀리게 됐다"고 말했다.

지원 스님은 그동안 일제 강점기의 침략에 이르기까지 과거사 반성에 미진했던 일본 정부와 국민에게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왜장 후손들의 방문은 김문길 박사(전 부산외국어대 일본학과 교수, 현 명예교수)의 역할이 컸다. 김 박사는 왜장들이 베어간 조선인들의 이비총(귀·코 무덤)을 연구해 온 일본 통이다.

가산사가 임진왜란 당시 대표 의병장인 호헌과 승병장 영규 대사의 초상화를 모신 절이란 걸 알고 평소 알고 지낸 왜장 후손들과 논의해 용서와 화해의 자리를 주선하게 됐다.

이번 행사는 국가보훈부가 주최하고 가산사가 주관한다. 국가보훈부 장관 또는 차관이 축사할 계획이고 호사카 유지 광복80주년 기념위원회 위원도 참석한다. 독립운동가 선양 단체인 단재 신채호 선생 기념사업회와 의암 손병희 선생 계승사업회도 후원 단체로 참여한다.

행사 당일 차를 올리는 헌다와 꽃을 바치는 헌화 외에도 장순향·이규범 무용가의 헌무, 왜장 후손들의 선주 의식도 진행한다. 독립군 노래를 부르는 '산오락회' 공연도 열린다.

이들은 단재 신채호 선생 묘소와 사당, 의암 손병희 선생 생가, 천안 독립기념관을 찾은 뒤 일본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가산사는 조계종 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로 신라 성덕왕 720년에 창건됐다. 임진왜란 당시 의·승군이 군영으로 사용했던 곳으로 전란 중 불탔으나 1624년 인조 때 중건했고 숙종이 호국사찰로 지정해 의·승병장의 초상화를 봉안하고 제향을 올려왔다.

일제강점기에는 항일운동의 중심지가 될 것을 염려한 조선총독부가 의병장의 영정을 강탈하고 불온 사찰로 지목해 탄압하기도 했다. 2019년에는 의·승병을 기리는 호국충혼탑이 세워졌다.

vin06@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