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방치부지 vs 울산바위 경관…고성 아파트에 속초까지 '촉각'

미시령 넘으면 마주하는 설악권 대표 경관…행정구역 넘어 속초도 영향권
도의원·시의회 이어 번영회 등도 대응 채비…고성은 방치 부지 정비 과제

설악산 울산바위.(뉴스1 DB)

(속초·고성=뉴스1) 윤왕근 기자 = 강원 속초에서 미시령을 바라보면 행정구역의 경계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속초와 고성에 걸쳐 우뚝 솟은 울산바위도 마찬가지다.

그 울산바위를 마주 보는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에 최고 16층짜리 아파트 8개 동이 들어서는 계획이 추진되면서 이웃 속초가 들썩이고 있다.

'고성 땅에 짓는 아파트를 놓고 속초가 왜 나서느냐'는 시선도 있지만 속초지역의 생각은 다르다. 행정구역은 고성이더라도 울산바위와 미시령을 중심으로 형성된 경관은 속초와 고성을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강원도의원 개인 차원의 문제 제기를 넘어 속초시의회가 공식적으로 사업 재검토를 요구하고, 속초시번영회 등 민간단체들도 성명 발표와 항의 등 대응을 준비하면서 논란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산 89-2번지 일원에는 759세대 규모의 공동주택 건립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지하 6층~지상 12~16층, 8개 동 규모다.

원암리는 미시령을 통해 속초와 고성으로 이어지는 설악권의 길목이다. 주변에는 원암저수지가 있고 뒤편으로는 울산바위가 거대한 암벽을 드러낸다.

속초에서 이 사업을 단순한 '옆 동네 개발'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다.

강원 고성군청 전경.(뉴스1 DB)

쟁점은 아파트 자체보다는 '어디에, 얼마나 높게 들어서느냐'에 맞춰져 있다.

실제 울산바위 조망 문제는 사업 심의 과정에서도 이미 한 차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사업자의 최초 계획은 8개 동 모두 17층, 950세대였다. 고성군이 건축·경관심의 과정에서 조망 시뮬레이션을 실시한 결과 일부 지점에서는 아파트에 울산바위가 상당 부분 가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건물 높이를 위치에 따라 12~16층으로 낮추고 세대수도 191세대 줄인 759세대로 변경했다.

고성군 관계자는 뉴스1에 "처음에는 8개 동이 모두 17층이었는데 어느 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울산바위가 많이 가리는 부분이 있었다"며 "많이 가리는 쪽은 12층까지 낮추는 등 동별로 층수를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층수를 낮춘 현재 계획에서도 조망 영향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군 관계자는 "100% 완전히 보인다거나 밑부분까지 다 보인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며 일부 지점에서는 울산바위 하단이 가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지점에서 '고성의 개발'은 '속초의 현안'으로 넘어왔다.

강정호 강원도의원(속초)은 "행정구역상 고성군 소관이지만 속초의 관문"이라며 설악산과 울산바위 조망뿐 아니라 생활권과 생태·경관적 가치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속초시의회도 2일 입장문을 내고 공동주택 건립계획 재검토를 공식 요구했다.

시의회는 고성군의 행정적 권한과 지역발전을 위한 노력은 존중한다고 전제하면서도 울산바위를 "속초와 고성을 비롯한 설악권 주민들이 함께 누려온 자연유산"으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건축물 높이와 배치·규모를 면밀하게 다시 살피고, 경관 영향 검토 결과를 충분히 공유하는 한편 인접지역 주민 의견을 반영한 보전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지자체와 정치권에 이어 민간의 움직임도 감지된다.

속초시번영회 등 지역 민간단체들도 공동주택 건립계획과 관련한 성명 발표와 항의 등 대응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계획이 알려진 직후 제기됐던 '울산바위가 가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정치권을 거쳐 지방의회와 시민사회로 번지는 모양새다.

속초시청 전경.(속초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하지만 고성군 입장에서 이곳은 경관 문제만으로 바라볼 수 없는 땅이기도 하다.

사업부지는 1990년 콘도미니엄 사업계획 승인을 받고 1993년 공사가 시작됐다가 중단된 곳이다. 이후 30년 넘게 사업이 표류하면서 당시 만들어진 지하 구조물 등이 현재까지 남아 있다.

고성군으로서는 수십 년 묵은 장기 방치 사업장을 정리해야 한다는 과제가 있는 셈이다.

군 관계자는 앞서 뉴스1에 "30년 정도 방치돼 있는 만큼 이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고 말했다.

아파트 건립이 확정된 단계도 아니다. 현재 강원도 건축위원회 정식 심의에 앞선 사전검토가 진행되고 있다.

결국 원암리 아파트를 둘러싼 논쟁에는 두 지자체가 처한 서로 다른 사정이 겹쳐 있다.

고성에는 30년 넘게 멈춰선 개발부지를 정리해야 하는 문제가 있고, 바로 경계를 맞댄 속초에서는 울산바위를 포함한 설악권의 경관이 한번 달라지면 되돌리기 어렵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도에는 고성과 속초를 나누는 선을 그을 수 있지만 울산바위를 바라보는 풍경까지 그 선을 따라 나눌 수 있느냐는 질문이 이번 논란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wgjh6548@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