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님, 올해는 못 갑니다"…바싹 마른 겨울에 막힌 강릉 성묘길
강원 동해안 건조경보만 21일째…산불위험 '최고조'
강릉 국유임도 전면 통제…굳게 내린 차단기
- 윤왕근 기자
(강릉=뉴스1) 윤왕근 기자
"조상님, 올해는 불조심해야 해서 못 갑니다."
설 명절을 앞두고 강원 동해안 지역에 장기간 건조경보가 이어지면서 강릉 일부 지역 성묘객들의 발길이 사실상 막혔다. 산불 위험이 최고조에 달하자 산림당국이 명절 기간 국유임도를 전면 미개방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지난 11일 오후 강릉시 강동면 언별리의 한 임도 진출입로. 다가올 명절, 성묘객 차량이 오가야 할 임도 길목에는 입산 통제 차단기가 내려와 있었다. 차단기에는 '설 명절 임도 미개방 안내문'이 붙어 있었고, 안내문에는 "최근 건조한 날씨와 국지적 강풍으로 산불 발생 위험이 매우 높아 임도를 개방하지 않는다"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차단기 너머로 이어진 산길은 사람 기척 없이 조용했다. 인근 산불 감시 초소 옆에는 '산불 조심' 깃발이 강한 바람에 연신 펄럭였고, 발밑에는 마른 낙엽과 부서진 나뭇가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겨울 산에서 느껴지던 습기는 찾아보기 어려웠고, 나무와 흙 모두 바짝 말라 작은 불씨 하나에도 불길이 번질 수 있을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실제 동부지방산림청 강릉국유림관리소는 최근 강릉지역에 건조경보가 지속 발효됨에 따라 이번 설 명절 기간 국유임도를 개방하지 않기로 했다. 관리소는 그동안 명절 전·후 성묘객 편의를 위해 한시적으로 국유임도를 개방해 왔으나, 올해는 대형 산불 발생 우려가 크다고 판단해 미개방을 결정했다.
임도는 산림청이 산림을 관리·보호·이용하기 위해 조성한 도로로, 평소에도 산림보호법에 따라 일반인과 일반 차량의 통행이 제한된다. 다만 명절 연휴 기간에는 성묘객 편의를 위해 한시적으로 개방돼 왔다. 그러나 올해는 강릉을 포함한 동해안 6개 시군에 건조특보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입산 자체를 통제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강릉 지역에서는 강릉국유림관리소가 관리하는 국유임도 367.05㎞가 설 명절 기간 전면 통제된다. 국유임도 통행이 불가피한 경우에는 명절 이전에 관리소를 방문해 인적사항과 방문 목적을 기재한 뒤 입산허가증과 임도통행허가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실제 해당지역 기상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강원기상청에 따르면 동해안 지역에는 지난해 12월 26일 오전 10시 건조주의보가 처음 내려졌고, 같은 달 31일 건조경보로 격상됐다. 이후 지난달 10일 주의보로 완화됐다가 19일 새벽 일시 해제됐지만, 이틀 만인 21일 다시 건조주의보가 발효됐고 다음 날인 22일 건조경보로 재격상됐다.
지난 11일 현재 동해안 6개 시군에는 지난 1월 22일부터 건조경보가 해제 없이 21일째 이어지고 있다. 특히 지난달 19일부터 이틀간 특보가 잠시 해제된 기간을 제외하면, 동해안 지역에는 사실상 약 46일간 건조특보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강수량과 적설량을 보면 '마른 겨울'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님을 보여준다. 강릉지역 1월 강수량은 2023년 77㎜, 2024년 46㎜였으나 지난해에는 16.5㎜로 급감했고, 올해는 3.7㎜에 그쳤다. 평년 대비 7.7% 수준에 불과하다.
강릉지역 1~2월 최심신적설(북강릉 기준)도 2023년 38.5㎝, 2024년 30.6㎝에서 2025년 0.8㎝, 2026년 0㎝로 사실상 눈이 내리지 않은 상태다.
대기는 이미 '불이 나기 쉬운 상태'에 들어섰다. 10일 기준 실효습도는 삼척·고성 간성 26%, 동해·속초 27%, 강릉 28%로 대부분 30% 이하를 기록했다. 실효습도는 목재의 건조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로, 50% 이하부터 화재 발생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다.
여기에 강풍까지 겹쳤다. 기상청은 11일과 13일 강원 동해안과 산지를 중심으로 순간풍속 초속 15m(산지 20m)에 달하는 강한 바람이 불 수 있다며 작은 불씨도 대형 산불로 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같은 상황에 강원도와 지자체도 대응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강원도는 산불방지대책본부 가동 시점을 당초 2월 1일에서 1월 20일로 앞당겼고, 임차 헬기 8대를 1월 19일 조기 배치했다. 기상 여건에 따라 영서권 헬기를 영동권에 전진 배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 최근 도내 18개 시군과 산림청, 군·경, 해군, 공공기관 등 40개 유관기관이 참석한 산불방지협의회를 열어 공조 체계를 점검했다. 강릉시는 봄철 산불방지 특별대책을 가동해 본청 직원 책임 담당 근무 체계를 운영하며 읍면동 현장을 중심으로 감시·순찰과 불법 소각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성묘객 증가에 대비해 산림 입산 통제와 등산로 폐쇄 조치도 병행 중이다.
속초시 역시 산불전문예방진화대와 주야간 감시원, 드론 감시 인력을 산불 취약지에 집중 배치하고 민관군 협력체계를 가동해 예방부터 초기 진화, 주민 대피까지 공동 대응에 나섰다.
권용훈 강릉국유림관리소 임도 담당 주무관은 "설 명절 기간 중 폭설이나 강수로 차량 통행이 위험하다고 판단될 경우 임도 출입을 전면 차단할 계획"이라며 "기상 상황이 좋지 않을 경우 사전에 국유림관리소에 문의해 임도 출입 가능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불편하더라도 산불 예방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며 시민들의 이해와 협조를 요청했다.
wgjh6548@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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