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푼돈 위자료'에 운 납북 어부…'특별법 제정'으로 명예회복 물꼬 트일까

'피고 대한민국' 상대 잇단 승소…보상금은 2500만 원 안팎
허영 특별법 발의…"재심·보상·의료지원까지"

2일 국회 소통관에서 허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 최윤 강원민주재단 이사장이 마련한 '납북귀환어부 인권침해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자 명예회복 특별법 발의' 관련 기자회견에서 당시 피해자가 발언하고 있다.(허영 의원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12.2/뉴스1

(속초=뉴스1) 윤왕근 기자 = 수십 년간 국가 폭력의 그늘 속에서 '간첩 누명'을 안고 살아온 강원 동해안 납북귀환어부들이 최근 국가를 상대로 잇따라 승소하고도 '푼돈 위자료'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평균 2500만 원 안팎의 배상 판결에 피해자들의 허탈감이 커지는 가운데, 이들의 명예회복과 실질적 보상을 담은 특별법 제정이 국회에서 본격 논의되기 시작했다.

허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춘천·철원·화천·양구갑)은 2일 국회 소통관에서 납북귀환어부 피해자 및 가족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납북귀환어부 인권침해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자 명예회복 특별법' 발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강원 속초지역과 전남 여수 출신 피해자와 가족 16명, 강원민주재단 관계자 등도 참석해 특별법 제정의 시급성을 호소했다.

50년 간첩 누명 안고 살았는데…보상금은 '2500만 원'

앞서 납북귀환어부 피해자들은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잇따라 승소했다. 그러나 재판부가 인정한 위자료는 평균 2500만 원 수준에 그쳤다. 피해자들이 청구한 금액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액수다.

지난 1월 춘천지법 속초지원에서 이뤄진 선고에서도 납북귀환어부 당사자에게는 3000만~4900만원, 가족·형제에게는 300만~1500만원의 위자료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50년간 '간첩 누명'을 안고 살아온 이들에게 턱없이 부족한 금액일 수밖에 없다. 재판부는 "귀환 후 불법 구금·고문·사찰은 명백한 국가의 불법행위"라고 인정하면서도, 기존 국가배상 판례와의 형평성을 이유로 낮은 금액을 제시했다.

선고 당시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피해자들에게 "과거 국가기관이 기본권 보장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공개 사과까지 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선고 직후 "국가가 인생을 모두 빼앗아 갔는데, 돌아온 건 푼돈 뿐"이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에 피해자들은 실질적 보상과 명예회복을 위해 전남 지역 납북귀환어부들과도 연대해 특별법 제정 운동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1970년대 조업 중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북, 고초를 겪다 세상을 떠난 납북귀환어부 장 모 씨의 재심이 열린 지난 2022년 8월 31일 춘천지법 속초지원 앞에서 장 씨 유족과 납북귀환어부 피해 진실규명 단체 회원들이 무죄 판결에 환호하고 있다. (뉴스1 DB) ⓒ News1 윤왕근 기자
특별법, 어떤 내용 담기나…"재심·보상·의료지원까지"

허영 의원이 대표 발의한 특별법은 기존의 '개별 소송'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던 구조적 한계를 보완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특별법은 △국무총리 소속 '진상규명 및 피해자 명예회복 위원회' 설치 △피해자 고령·법률지식 부족을 고려한 직권재심 권고제 도입 △납북·구금 기간 및 피해 정도에 따른 보상금 지급 △고문 후유증·트라우마 치료지원 △생계지원금 지급 △유족 지원 근거 마련 등을 담았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납북귀환어부 피해자 김영수 씨는 "16살에 납북돼 귀환 후 고문과 간첩 누명, 사찰·차별 속에서 인생이 무너졌다"며 "늙은 피해자들이 죽기 전에 억울함을 풀 수 있도록 특별법을 제정해 달라"고 호소했다.

최윤 강원민주재단 이사장도 "국가폭력의 실상을 알게 된 뒤 책임감을 느끼고 해결에 나섰다"며 "고령 피해자들이 더 늦기 전에 명예회복과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국회가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표적 '국가폭력' 사건…허영 "바로잡을 마지막 기회"

납북귀환어부 사건은 1950~80년대 분단 상황 속에서 발생한 대표적 국가폭력 사건이다. 어로활동 중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북되거나 기상 악화로 월경한 뒤 억류됐다가 귀환한 어부들은 국내에서 오히려 간첩·월북자로 몰려 당시 엄혹했던 당국으로부터 고문과 수사, 사찰, 차별을 겪었다.

1·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모두 국가 차원의 공식 사과·재심·보상이 필요하다고 권고했지만, 법적 근거 부족으로 실질적 조치로 이어지지 못했다. 피해자 대다수가 70~90대 고령인데다,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도 허다한 탓에 이번 특별법 제정 여부는 당사자와 가족들에겐 사실상 마지막 기회로 여겨지고 있다.

허 의원은 "납북귀환어부 문제는 이념이 아닌 헌법적 책무의 문제"라며 "생존해 있는 피해자들에게 최소한의 명예라도 회복시켜드리는 것이 국가의 도리"라고 말했다.

이어 "특별법 제정은 국가가 저지른 인권침해를 바로잡는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했다. 한편 해당 법안에는 여야 의원 32명이 공동발의에 참여했다.

2일 국회 소통관에서 허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 최윤 강원민주재단 이사장이 마련한 '납북귀환어부 인권침해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자 명예회복 특별법 발의' 관련 기자회견에서 관계자들이 단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허영 의원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12.2/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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