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과 2030 여성, 경계를 허물다…전주영화제서 선보인 '남태령'

12·3 비상계엄 이후 '남태령대첩' 후일담과 SNS 기록으로 재구성
김현지 감독 "내란의 무기력과 절망, 서로 대면하며 희망 발견해"

8일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에서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작 '남태령'의 시사회가 열린 가운데 김현지 감독과 김아영·황승유·이휘진·전주환 등 출연진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2026.5.8/뉴스1 장수인 기자

(전주=뉴스1) 장수인 기자 = "12.3 내란의 무기력과 절망…연대와 대면 속에서 희망을 찾았습니다."

지난 2023년 다큐멘터리 영화 '어른 김장하'로 묵직한 울림을 안겼던 김현지 감독이 12·3 비상계엄 사태를 정면으로 다룬 신작 '남태령(The Longest Night: Namtaeryeong)'으로 돌아왔다.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는 8일 폐막작 '남태령' 기자회견을 열고 작품이 담은 의미와 제작 경위 등을 공개했다. 이날 현장에는 김현지 감독을 비롯해 김아영·황승유·이휘진·전주환 등 출연진과 민성욱·정준호 공동 집행위원장, 문석 프로그래머가 참석했다.

영화 '남태령'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인 12월 21일, 전봉준투쟁단의 이른바 '남태령 대첩'에 참여했던 20~30대 여성들의 후일담을 중심으로 그날의 진실을 현장감 있게 담아낸 작품이다. 거대한 정치적 담론이나 남성 중심의 투쟁사가 아닌, 그곳에 모인 이들의 대화, 연대의 감정을 엮어냈다는 점에서 기존 사회 다큐멘터리와 궤를 달리한다.

이날 김 감독은 남태령을 기획한 이유에 대해 "12·3 내란은 저를 비롯한 수많은 콘텐츠 제작자에게 굉장히 깊은 절망과 무기력감을 안겨줬을 것 같다. '내가 무얼 만들든 이걸 이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남태령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대면하면서 서로의 차이를 받아들이는 경험을 하며 희망을 발견했고, 그게 남태령을 선택한 이유"라고 말했다.

폐막작 '남태령' 스틸컷.(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특히 이번 작품의 주된 화자가 2030 여성이라는 점에 이목이 쏠린다. 영화에 출연한 활동가 황승유 씨는 "내란 사건 전후로 '여성들은 어디 있다가 나온 것이냐'는 말이 나왔는데, 강남역 살인사건을 시작으로 세월호·이태원 참사 등으로 또래 친구들이 안타깝게 희생되는 일이 있었고, 저희는 항상 광장에 있었다. 주목받지 못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남태령이 중요한 건 저희에게 승리하는 경험을 준 것"이라며 "경찰 차벽이 열리고 다 같이 행진하면서 '우리가 그동안 약했는데, 모이니까 이길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먼저 손을 잡는 그런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연대는 어디에서 촉발되냐, 어떻게 연대할 수 있었냐'는 취재진 질문에 김 감독은 "사실 농민과 2030 여성을 서로 소통하는 관계는 아니었다"며 "그런데 당시 농민들이 폭행당하는 걸 보면서 '저 사람이 쓰러지면 나도 쓰러지는 거야'라는 마음에 달려가셨던 것 같다"고 답했다.

이어 "마이크 하나, 스피커 작은 거 하나가 있는 그곳에서 밤을 새울 수 없으니, 서로의 이야기를 하며 경계가 무너졌고, 서로에게 밥을 먹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영화에 출연한 전주환 씨는 "사회에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다양한 목소리와 의견이 합쳐질 때 우리 사회가 발전한다고 본다"며 "30년간 농사짓고 살며 농민이 가장 어렵고 불쌍한 줄 알고 지냈는데, 남태령에서 2030 여성들,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인식이 바뀌었고, 삶의 태도도 바뀌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단순한 사건의 나열을 넘어 시대의 이면을 섬세하게 포착한 폐막작 '남태령'은 이날 오후 6시 30분 전북대학교 삼성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공식 상영될 예정이다.

soooin92@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