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국제학교엔 왕따가 없습니까?”
[맹모, 제주에 가다 - 이진주의 탐라일기-3]
서울 '마마토모'에서 제주 '맹모'가 되기까지
인생의 어느 한 때라도 외로움의 훈련을 거친 사람은, 자신을 객관화하는 방법을 알게 됩니다. 3인칭으로 사건과 사람들을 관조하다보면, 1인칭으로 살아갈 때와는 또 다른 해답이 보입니다. 그렇게 자신을 돌아보고, 그렇게 교훈을 얻으며, 그렇게 성장하지요. 저 역시 인생의 고비를 넘어설 때마다 그랬습니다.
자식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는, 자신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보다 아프지만,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아마도 이 역시 완전한 3인칭이 될 수는 없겠지요만,
죽음과 색깔
<죽음과 색깔>
죽음은 어떤 색일까
빨간색이 죽음일까빨간색은 피
파란색이 죽음이 아닐까파란색은 바다
분노는 어떤 색일까검은색은 혼세마왕의 뿔
삶은 어떤 색일까
파란색은 빨간색의 반대죽음 반대편의 삶
이 모든 것을 나타내는색은,너무나 많다
큰아이가 이 시를 쓴 건 지난해 유월, 1학년 여름방학이 가까워질 무렵이었습니다. 육아휴직을 내고 두 아이를 돌보기 시작한지도 8개월이 되었고, 밖은 온통 초록이었지요. 국어 교과서에 실린 <도라지꽃 전설>을 함께 읽다가, 아이는 도라지꽃은 왜 하필 보라색인지 물었습니다. 보라색은 슬픈 색이야, 했더니 저런 걸 끄적거린 겁니다. 친구 몇에게 물으니, “그래도 마지막 연이 긍정적이라 괜찮다”며 위로를 해주더군요. 며칠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금세 또 철부지 어린애로 돌아가기에, 찜찜한 채로 그냥 내버려 두었죠. 지인들에게 조금씩 국제학교 합격 소식을 알리며 인사를 돌리던 참이었던가요. 제주에 새로 살 집도 구하고 이사 준비도 시작했던가요. 무엇 때문인가 대단히 바빠 아이가 쓴 시에 관해서는 곧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되짚어 생각해보면, 이 시는 일종의 ‘사인’이었습니다. 자신의 아픔을, 괴로움을, 눈치채달라고 외치는 아우성이었죠. 그래서 자신을 그 고통 속에서 구원해달라고 말입니다. 아이는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방식인 시를 통해서, 제게 말을 걸어왔던 겁니다. 당시엔 끝내 알아보지 못했지만요. 아이는 수신되지 않은 메시지를 부여잡고 한 달을 더, 혼자 힘들어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방학식 하루 전날에야, 저는 아이가 겪어온 그 일들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학교괴담1: 나쁜 일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이에게 벌어진 일을 3인칭 시점으로 이야기하자면, 그것은 ‘학교폭력’이었습니다. 아이가 맡은 역할은 불행히도 ‘피해자’였지요. 그것도 두 달 동안, 고의적이며 상습적으로, 점심시간에 급식실로 향해 가는 복도에서, 담임선생님의 눈을 피해 벌어진 일들이었습니다. 복도엔 CCTV도 없었습니다. 만으로 이제 겨우 일고여덟 살인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도, 나쁜 짓은 몰래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겁니다. 때린 놈은 오그리고 자도, 맞은 놈은 발 뻗고 잔다고 누가 그러던가요. 요즘 세상에선, 가해자가 더 당당하고 피해자가 더 눈치를 봐야하는가 봅디다. 아이의 마음은 죽음을 떠올릴 정도로 지옥이었던 겁니다.
여자아이들은 괴롭힘의 방법으로 따돌림이라는 무기를 씁니다. ‘왕따(대놓고 따돌리는 일)’나 ‘은따(은근히 따돌리는 일)’ 말이지요. 암컷들은 날 때부터 관계지향적이며 사회적인 동물이라선지, ‘홀로 있게 하는 것’이야말로 천형이란 걸 본능적으로 압니다. 여자아이들의 세계에서는 왕따와 여왕벌은 종이 한 장 차이인 경우가 많습니다. 한 번 삐끗하면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일이 빈번하지요. 똑같은 김태희라도 이 그룹에선 여왕벌이지만, 저 그룹에선 왕따가 되는 일도 가능합니다.
반면, 힘에 의한 서열화가 본능인 수컷들은 다릅니다. 남자아이들은 라이벌에게 직ㆍ간접적인 폭력을 가해 찍어누르거나 약자에게 ‘빵셔틀(빵을 사오라고 하는 등 심부름을 시키는 일)’이 되라고 사주합니다. 그럼으로써 위계질서를 세우고 그룹 내에서의 지위를 확인하지요. ‘내추럴 본 리더’가 아니라면 넘버 투, 넘버 쓰리가 되는 데에도 엄청난 힘과 전략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서열은 여간해서는 뒤바뀌기 어렵습니다. 남자아이들 사이의 학교폭력에서 ‘초동대처’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소구리는 외로운 아이는 아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범생이’ 스타일이긴 해도, 성격이 적극적인 데다 노는 걸 워낙 좋아했지요. 남편쪽 집안 내력인 눈웃음도 항상 매달고 있었고요. 돈키호테처럼 턱도 없이 센 남자아이들을 상대하는 일은 가끔 했지만, 여자아이들이나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는 짓은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오지랖이 넓어 그런 일은 꼭 짚고 넘어가는 편이었지요. 같은 반에는 유치원 때부터 친했던 여자친구들이 여럿 있었고, 축구를 제일 잘하는 남자아이와도 처음부터 ‘베프(베스트 프렌드)’가 됐습니다. 남자아이들 중에서도 굳이 분류하자면 ‘간디파(비폭력 평화주의자?)’에 속하는 광범위한 친구 그룹도 있었죠. 그런데도, 아니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다리에 멍이 들 정도의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는 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울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울어줄 것이다
지난해 학교 차원의 안티불링(왕따방지) 캠페인을 벌인 제주국제학교. 아이들은 벽에 손도장을 찍고 이름을 쓰며 친구들을 괴롭히지 않겠다고 서약했습니다. (사진제공=제주국제학교)
아이의 정강이에서 피멍을 발견한 건,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겨우 하루 전이었습니다. 워낙 운동을 좋아해서, 매일 체육관에 다니며 서너 가지 운동을 해왔던 터였습니다. 팔에고 무릎에고 크고 작은 상처가 늘 있었습니다만, 그 피멍은 어딘지 모르게 꺼림칙했습니다. 새끼의 안전에 이상이 있다는 본능, 설명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 나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직감이 왔습니다.
잔디밭을 가로지르는 아이를 불러 세워 물어봤습니다. “소굴아, 다리 어디에서 다쳤어?” 아이는 멈칫했습니다. “음, 어제 축구 선생님하고 놀 때 공을 너무 세게 맞았나 봐.” 이상했습니다. “그래? 선생님이 어린 너에게 그렇게 공을 세게 차실 리가 없는데? 그리고 이 상처는 각이 졌잖니, 축구공은 동그란데.” 아이는 말을 바꿨습니다. “아, 생각해보니까 며칠 전에 교실에서 넘어졌어.” “어떡하다가?” 아이는 말을 보탰습니다. “애들이 모여있길래 무슨 일인지 보려다가 중심을 잃었지.” “그게 뭐였니?” “잘 기억이 안나.” “친구들이 도와주지 않았어?” “응, OO이가 일으켜줬어.” “그랬구나. 그럼 OO이한테 물어봐야겠다.” 아이는 황급히 막아섰습니다. “아니, 사실은 OO이는 잘 몰라, 거기 없었어.” “그럼, 진짜로 무슨 일이 있었니?” 아이는 눈을 피하며 대수롭잖다는 듯 받아쳤습니다. “잘, 모르겠어. 기억이 안 나.”
나쁜 징조였습니다. 아이는 계속 말을 바꾸고 있었습니다. 정말 아무 일도 아니었다면, 처음부터 모르겠다고 하면 될 일이었습니다. 저는 선언했습니다. “그래? 어쩌다 다쳤는지 알게 될 때까지 전학 가는 일 없었던 걸로 하자. 네가 국제학교에 안 다니게 되어도 좋아. 엄마는 네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겠어.” 아이는 별안간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건 안돼! 얼마나 기다렸는데! 제발, 그것만은 말아줘.”
아이는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날부터 국제학교에 전학을 가는 것으로 돼 있었죠. 학교를 옮기는 과정에서 학생의 신분이 붕 뜨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그 말은, 이 학교에서의 ‘진실’을 찾고 해결하는 데 단 하루만이 남았다는 뜻이었습니다. 저는 믿을만한 엄마들에게 수소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모인 단편들은 조각조각 모여 고통스런 진실이 되었습니다.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 건 두어 달 전이었다고 합니다. 공교롭게도 축구팀을 탈퇴한 뒤부터였죠. 첫 회에 잠시 말씀드렸던 아이가 주동이었습니다. “너어~ 내 말 안 들으면 우리 엄마한테 일러서 축구팀에서 빼버린다아~”라고 위협했다는 그 아이 말입니다. 녀석에게 경고를 들었던 남자아이들 중에, 소구리도, 소구리의 단짝도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엄마들이 보기에도 한 눈에 ‘리더로 태어난 아이’ ‘진짜 수컷의 냄새가 나는 아이’였습니다. 당연히 축구 실력도 눈에 띄게 좋았습니다. 어린 수컷들은 자연스럽게 그 친구를 리더로 인정했습니다.
그 친구의 엄마는 저희 세대보다 10년은 더 연배가 높았고, 앞서 대학생 아들을 둘이나 키운 선배맘이었습니다. 아이들 문제로 엄마들끼리 낯을 붉히며 분란을 일으키는 타입은 아니었던 거죠. 저 역시 운영위원회 일도 있고 해서 갈등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냥 저희 둘이 조용히 축구팀을 탈퇴하고 끝내려던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차라리 그 때 문제가 되는 녀석의 행동을 지적하고 공유했더라면, 일이 이렇게까지 커지지는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러는 대신 저희는 침묵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는 큰형의 대학졸업식에 맞춰 곧 미국에 갔습니다. 온 가족이 한 달 동안 미 전역을 여행하기로 한 겁니다. 아이들의 정글은 무주공산이 되었습니다.
처음엔 장난처럼 발을 걸어 넘어뜨리는 것으로 시작됐다고 합니다. 입 바른 말을 하는 아이에 대한 앙심을 그런 식으로 화풀이하려던 거였을까요? 그 녀석과 녀석의 ‘꼬붕’은 담임선생님이 여자아이들을 이끌고 급식실로 가는 시간을 노렸습니다. 소구리는 친구와 적을, 장난과 보복을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모든 학교폭력이, 모든 빵셔틀이 그렇게 시작합니다. 여리고 작고 사소한 것으로부터 점점 세고 크고 무시무시한 것으로, 크레센도로. 아이는 거친 놀이인 줄로만 알았기에, 어쩌면 그렇게 믿고 싶어서, 그저 하지 말라, 고만 했다는군요. 웃으면서요. 그러나 수컷들의 대결에선 웃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처음부터 성깔을 보이며 응징하지 않으면 무시당합니다. 그러나 아이는 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우연히 여자아이들 맨 끝에서 아이의 목소리를 들었던 여자친구도 그 웃음 때문에, 남자아이들이 진짜 장난을 치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저 녀석들은 맨날 저래! 하지만 그런 상황은 한 달, 두 달 반복적으로 벌어졌습니다. 불행히도 일이 커졌을 땐 간디파 친구들 중 누구도 녀석들의 행동에 토를 달지 못했습니다. 젊은 담임선생님은 아이들 사이의 ‘블랙리스트’를 알고 종종 벌을 세웠다지만, 자신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이런 일까지 벌어지는 줄은 몰랐다고 합니다.
모든 퍼즐을 맞추고 진상을 파악한 건 밤 9시였습니다. 단 한 나절 사이에, 천국은 지옥으로 변했습니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쁨과 자랑스러움은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분노와 모멸감으로 바뀌었지요. 머리가 터질 듯 아팠습니다.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는 게 뭔지 아시나요? 내일이면, 아이는 친구들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고, 아이스크림과 쿠키를 나누어 먹으며 마지막 추억을 쌓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이 기막힌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아무 데도 갈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몇 건의 진술을 확보하고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아이는 제가 주동자들의 이름을 들고 정황을 설명할 때까지도, 고개를 푹 숙이며 상황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소굴아, 이건 경찰에 신고할 수도 있는 중요한 문제야. 증인도 있고 증거도 있어. 복도에 숨겨져 있는 CCTV가 모든 장면을 찍어놨어.” 아이는 CCTV란 거짓말을 듣고서야 저와 눈을 맞추더군요. “정말이야? 엄마도 CCTV를 봤어? OO이, XX이가 괴롭히는 걸 엄마도 봤어?” 수많은 학교폭력의 희생자들도 그랬다고 하더군요. 자존심이 센 아이일수록 결코 제 입으로 그런 상황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고요. 학교폭력 피해자니 왕따니 하는 말은, 그 자체로 얼마나 무력하고 모멸적인가요? 그래서 CCTV라는 객관적인 눈이 자신을 지켜봐주길, 부인할 수 없는 증거가 되어 먼저 밝혀내주길 원할 뿐이죠. 네가 약한 게 아니라 그 애들이 악한 거야. 네가 당한 게 잘못이 아니라 그 애들이 저지른 게 잘못인 거야.
아이의 상처 입은 자존감을 어떻게 회복시켜야 할까요? 저는 물었습니다. “그 애들을 어떻게 할까? 경찰서에 끌고 갈까? 교장선생님 앞에서 네게 무릎 꿇게 할까? 원하는대로 해줄게. 어떻게 해야 네가 속이 시원하겠니?” 아이는 말했습니다. “그래도 친군데, 경찰은 너무 심하잖아. 반 아이들이 보는 데에서 그랬으니까, 반 아이들이 보는 데에서 사과를 받고 싶어.” 소구리가 원하는 건, 단지 그것뿐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밤이 새도록, 교양이고 나발이고 다 뒤집어 엎어버리고 싶은 마음과 싸워야 했습니다. 제 새끼를 이렇게 만든 놈들을 불러다 피투성이가 되도록 물어뜯고 싶은 마음을 억눌러야 했습니다. 소구리는 아름다운 마지막을 원했고, 그것이 아이의 자존심을 지키는 길이라면 그렇게 해줘야 했으니까요.
다음날 아침, 뒤늦게 모든 걸 알게 된 담임선생님은 아이를 위해 오전 시간을 털어 송별회를 열어주었습니다. 잘못한 일들을 자연스럽게 공개사과하는 자리도 만들었고요. 소구리를 좋아했던 여자아이들 몇이 더러 울음을 터뜨렸고, 간디파 남자아이들은 제주도로 놀러오겠다고 굳은 약속을 했다지요. 그리고 담임선생님은, 문제 아이들의 부모들에게 전화와 면담을 통해 이 사실을 통보했다고 했습니다. 성적표에도, 학교폭력의 ‘가해자’란 사실을 적시하겠다고 했지요.
학교괴담2: 이상한 아이 뒤엔 이상한 엄마가
형식적이긴 해도 아이들이 공개 사과를 했다니, 이제는 엄마인 제 문제가 남았습니다. 선생님이 말씀을 하셨다기에 저는 그 아이들의 엄마로부터 진정성 있는 사죄를 받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연락이 없었습니다. 얘기 좀 하자,고 제가 먼저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몇 시간이 흐른 뒤에야, 연락이 왔습니다. 둘째아이가 어려 나가기 어려우니 그냥 전화로 하자더군요. 그 엄마는 “무슨 일이냐”고 말했습니다. 학교에서 담임선생님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거면서, 아이의 폭력성에 대해 적은 통지표도 보았을 거면서, 그동안 수많은 엄마들에게 항의전화를 받아왔을 거면서, 마치 처음인 것처럼, 아무 일도 모르는 것처럼. 무슨 일이냐고, 저는 실망했습니다. “아시는 줄 알았는데 모르셨군요, 그럼 처음부터 설명을 하겠습니다.” 긴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엄마는 대뜸 물었습니다. “그 무릎의 상처를 우리 OO가 냈나요?” 이런 말도 했습니다. “그 얘기 어디서 들은 건가요?” “믿을 수가 없어서 제가 직접 확인을 해야겠어요. 누구한테 들었는지 말해 주세요.” 이것 보세요, 어머니. 보통 사람이라면, 자신도 새끼를 키우는 에미라면, 이럴 때 이렇게 말해야지요. “아이가 얼마나 아픈가요?” “엄마는 얼마나 괴로우세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안합니다.” “제가 새끼를 잘못 키웠습니다 ”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하지만 깨달았습니다. 이상한 아이 뒤엔 이상한 엄마가 있다는 것을요. 이 엄마로부터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건,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요.
내게 단 하루밖에 남아있지 않았다면, 이런 식으로 마무리하진 않았을 거라는 말에야, 그 엄마는 말했습니다. 가까스로, 간신히, 겨우, “그렇다면, 미안해요.”라고요.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도 아니고 그렇다면 미안해요,였습니다. 그렇게라도 사과를 받았으니 용서하려 했지만, 며칠 뒤 마주쳤을 때, 못본 척 쌩하고 지나치더군요. 꼬붕의 엄마와 함께요. 제주에 내려오기 직전, 반 아이들 모두를 초대한 거창한 송별 파티에서 저도 그 엄마와 아이들을 제외했지요. 유치하다고요? 그래요, 아이가 1학년이면 엄마도 1학년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진심 어린 사과 한 마디면 충분했는데 말입니다. 아이의 피멍이 사라진 뒤에도,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의 독은, 오래 남아 있었습니다.
“그곳엔 왕따가 없나요?”
지난해 열린 전교적인 학교폭력방지 캠페인에서 학생들은 손도장을 찍었습니다. 이 손도장은 벽에 남아 있는 동안, 마음 속 규율의 역할을 할 겁니다. 물론, 학교는 도덕적인 계도만이 아닐 더 강력한 처벌의 형식도 갖추고 있습니다. (사진제공=제주국제학교)
많은 분들이 그런 기대를 안고 이곳을 지켜보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학교폭력 청정지역 제주국제학교를요. 여기 제 손에 나쁜 소식과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나쁜 소식을 먼저 전할게요. 왕따도 학교폭력도 없다고는 말하지 못합니다. 성정이 거칠거나, 모나고 튀는 아이들은 어디나 존재하니까요. 지능이 높다고, 모범생이라고, 환경이 유복하다고 나쁜 짓을 하지 않기를 기대하는 건 순진한 바람입니다. 더 나쁜 소식을 알려드릴까요? 왕따와 학교폭력은 국제중에도, 명문외고에도, SKY대에도 있습니다. 유학을 가면 어떨까요? 영어를 못한다고, 유색인종이라고 차별당합니다. 어른이 되면 다를까요? 다름을 참을 수 없어 벌어지는 일들은 직장에서도, 예배당에서도, 절간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납니다. 그럼 죽을 때가 되면요? 그런 갈등은 노인정에서도, 호스피스 병동에서도 벌어집니다. 원래 사람이 그런 겁니다. 그런 미숙하고 잔혹한 동물성을 서로 깎아내며 평생동안 사회화를 하는 겁니다.
그러니 당연히, 이곳에도 있습니다. 입학과정에서 1차 스크리닝(아이가 학교폭력의 가해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전 학교 교장선생님이 확인하는 서류를 받습니다. 면접에서도 아이들을 집단관찰하며 사회성을 검토합니다.)을 합니다만, 아이들이 그렇게 많은 자유를 누리며 극심한 경쟁상황에 노출돼 있지도 않는데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여기, 좋은 소식도 있습니다. 문제의 발생을 막을 수는 없지만, 여러 가지 시도들로 약화시킬 수는 있습니다. 또 해결 방법도 다릅니다. 우선 학교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캠페인을 벌이고 대처합니다. 핑거페인팅을 하고, 고무팔찌를 나눠끼고, 연극을 올리면서 친구들은 최소한 침묵의 목격자가 되지는 않습니다. 학교폭력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아이들은 단지 사건을 방조한 것만으로도 평생동안 지속되는 열패감을 느낀다고 하더군요. 어떤 채널을 통해서든 다른 친구의 어려움을 알리는 일이 용감하고 정당한 행위로 권장됩니다. 순진하고 조용한 아이들도 그룹으로 뭉치면 강해진다는 것을 배웁니다.
또 저는 다른 일로 참석하지 못했으나, 얼마 전 열린 교장 선생님과의 공개 다과회에서도 수많은 얘기들이 오갔다고 하더군요. 혹시나 내 새끼가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담임선생님에게도 드러내 말하지 못했던 엄마들이, 터놓고 이야기하며 함께 눈물을 흘리는 진풍경도 벌어졌다고 합니다. 누군가 내 얘기를 들어주고, 같은 아픔을 느끼며 공감대를 만드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위로를 받습니다. 거기서 ‘힐링’을 느낀 한 엄마는 다음 티파티에도 꼭 참석하겠다며 여러 엄마들에게 권하더군요.
이렇게 선생님들도, 엄마들도, 아이들도 적극적으로 문제를 공론화하고, 해결방안을 찾습니다. 상황을 직시하고 바꾸려는 노력이라도 합니다. 혹시라도 문제행동이 발견된 학생들은 담임과 교감과 교장선생님을 거쳐, 전체 재단의 교장선생님까지도 면담을 한다 들었습니다. 최소한 피해자가 쉬쉬하고 숨 죽어 지내며, 학교를 떠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제주국제학교 학부모 모임에서 누군지도 모르는 어느 분은 이런 글을 남기셨더라고요. “옛말에 아들 가진 부모는 도둑도 욕하지 말고, 딸 가진 부모는 창녀도 욕하지 말라고 했다.”고요. 저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습니다. 그만큼 새끼 키우는 일이 조심스럽고, 부모 마음대로 안 된다는 뜻이겠지요. 어릴 때 참했던 아이들도 사춘기를 겪으며 어떤 괴물로 변할지 모르고요. 내 자식이 절대 그런 짓을 저지를 리 없어! 얘는 개미새끼 한 마리도 못 죽이는 아이야! 그렇게 장담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단 한 가지 분명한 건, 엄마도 아이도 결국은 성장한다는 겁니다. 저도 그렇지만 부모라고 해서 다 어른이 아니거든요. 자식을 키우면서 자기 속에 숨겨져 있던 상처 입은 어린아이도 함께 키운다고 합니다.
그런 일을 겪으며 한 뼘 자란 제 아이도 이제야 수컷의 룰을 익혔습니다. 정글에서 살아남으려면 자신도 수컷이 돼야 한다는 걸 알아차린 거지요. 유리 조각상처럼 앉아있기만 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을요. 그나마 여긴 아마존의 극한 환경이 아니라 이제 막 어린 묘목들이 자라나는 동네 뒷숲이긴 합니다만.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저 역시도, 제가 만들어낸 기준을 깨뜨리며, 조금씩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이쪽에서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대하는데, 가식으로 받으며 뒤통수 치는 사람은 사실은 별로 많지 않더라고요.
기왕 북치고 장구치고, 도랑치고 가재잡고(아, 이건 아닌가요?), 병주고 약드리는 김에, 한 마디만 더 보태겠습니다. 아인슈타인도 스티브 잡스도 왕따였고, 스티븐 스필버그도 미국 리얼리티 프로그램 ‘서바이버’ 우승자 권율도 학교폭력에 시달렸습니다. 한때의 엄친아였지만 타진요(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까지 만들어지며 국민왕따가 됐던 타블로는 “온 세상이 안티(에픽하이, <Don't hate me>)”라고 노래했지요. 아, 너무 수컷들 얘기만 했나요? 여자의 예를 들어볼게요. 매거릿 대처도 김연아도 인생의 최고봉에 오르기까지 왕따였습니다. 최고의 자리에서도 외롭긴 마찬가지였군요. 좀 더 극단적인 예를 들어볼게요. 전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님조차 고향에선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궁극의 정신력으로 인생의 승리자가 된 사람들, 그래서 인류의 삶을 바꾼 사람들, 요샛말로 ‘멘탈 갑’인 사람들은 모두 그런 훈련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지금 외롭고 힘든 아이들과 그 부모님들에게 이 얘기가 한 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군요. 다만 한 사람, 어머니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의 편이 되어주셔야 합니다. 내 새끼가 어디가 모자라 맞고 다니나 욕지거리가 올라와도, 실제로 어리바리한 모습을 보면 한 대씩 쥐어패고 싶어도, 도를 닦는 마음으로 참아내자고요. 온 세상이 안티여도 너만 내 편이면 되는 단 한 사람, 애인이든 친구든 그 누구든 아이의 인생에 나타날 때까지, 아니 어쩌면 아이를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날 때까지, 혹은 세상을 떠난 후에도요. 어렵지만 저도 그럴 테니까요. 저도 그런 에미가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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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서울대 국어교육과와 같은 대학원 언론정보학과에서 공부했다. 서울에서 중앙일간지 기자로 일하다, 지난해 남편과 제주로 내려와 두 아들을 키우고 있다. 왕년의 페미니스트로서 여성성과 모성에 관심이 많다. 도 닦듯 엄마 노릇을 마친 뒤에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독립할 작정이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학교를 짓고,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며 동화를 쓰는 것이 꿈이다.[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