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국제학교의 '노는' 아이들

[맹모, 제주에 가다 - 이진주의 탐라일기-2]
서울 '마마토모'에서 제주 '맹모'가 되기까지

편집자주 ...서울대 국어교육과와 같은 대학원 언론정보학과에서 공부했다. 서울에서 중앙일간지 기자로 일하다, 지난해 남편과 제주로 내려와 두 아들을 키우고 있다. 왕년의 페미니스트로서 여성성과 모성에 관심이 많다. 도 닦듯 엄마 노릇을 마친 뒤에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독립할 작정이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학교를 짓고,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며 동화를 쓰는 것이 꿈이다.[편집자주]

3주간의 방학이 끝나고 제주국제학교의 여름 학기가 시작됐습니다. 하필이면 방학 첫날 발가락을 다쳤던 큰아이는, 붕대를 풀고 친구들과 축구할 생각에 뛰어서 날아서 학교에 갔습니다. 아빠들을 만나러 서울로, 부산으로, 대구로, 광주로 갔던 친구들도 저마다 이야깃거리를 안고 돌아왔고요.

학교를 좋아하는 아이들

제주국제학교 럭비팀의 경기 모습. 아이들은 쉴 새 없이 뛰고 달리며 ‘오늘’을 즐깁니다. 운동을 잘하는 형아들은 수컷들의 우상이 되지요. 수영, 축구, 럭비 등 다양한 종목에서 대표팀 선배들이 활약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도 대표팀이 되는 꿈을 꿉니다. /사진제공=제주국제학교 © News1

저희 집 큰아이 ‘소구리’가 학교를 좋아하는 이유는 명쾌합니다. 많이 놀 수 있어서죠. 전학 온 첫날 집으로 달려와 했던 말이, “엄마! 노는 시간이 세 시간도 넘어!” 였으니까요. 아이에게는 축구와 필드하키, 수영, 춤 등을 배우는 체육시간도 ‘노는’ 시간입니다. 태권도며 태그럭비(허리에 꼬리표를 달고 하는 럭비의 일종. 격렬한 몸싸움이 없어 어린아이들이 하기에도 안전하다고 합니다.), 원반던지기 등을 할 수 있는 방과 후 수업은 또 어떻고요. 여학생들은 이 시간에 한국무용이나 발레, 리듬체조 같은 프로그램을 듣습니다. 그러고도 모자라 아이들은 1교시 전에도, 점심 먹은 뒤에도, 학교가 파한 뒤에도 수시로 운동장에 나가 뛰어놉니다.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는 녀석들에게는 꿈같은 시간표지요.

손발이 좀 ‘후진’ 제 아이도 수컷은 수컷이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운동에 열광합니다. 학교에 가는 일이 오죽 신나면, 아무도 깨우지 않는데 오전 6시에 벌떡 일어나겠어요. 지난 두 학기동안 큰애는, 아기동생 ‘요구리’와 밤새 씨름한 엄마가 짜증낼까봐, 혼자 일어나 교복도 챙겨 입고 시리얼도 제 손으로 우유에 말아 먹었습니다.

저희가 살고 있는 제주시는 학교와 꽤 멀어서 스쿨버스를 타야 하거든요. 베테랑 기사님도 삼십 분은 운전을 해야 합니다. 안개가 끼거나 눈비라도 내리면 사오십 분은 족히 걸리고요. 학교는 서귀포시에서도 촌으로 꼽히는 대정읍에 있습니다. 넓은 부지를 얻은 대신 병원이나 마트 같은 기반시설은 하나도 없지요. 큰애한테야 학교 앞 신축빌라가 편하기는 하겠지만, 아기 데리고 살기엔 어려움이 많을 것 같아 고심 끝에 시내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왕복 6만원인 택시비도 택시비지만, 동생까지 챙겨 나서려면 공사가 너무 큽니다. 이런 까닭에 아예 처음부터 선언했지요. “늦잠 자서 버스 놓쳐도 엄마가 학교 못 데려다준다~”. 그랬더니 알아서 척척입니다.

동생이 좀 자란 요즘엔 저도 기력을 찾아서, 하다못해 계란말이라도 부쳐서 먹입니다. 가끔은 흑돼지 오겹살이나 스테이크도 구워 먹이고요. 아침부터 무슨 요란이냐고 하실 테지만, 유학 간 친구들이 “머리가 아니라 몸이 달려 공부 못하겠다”고 푸념하던 게 생각이 났거든요. 지력이 아니라 체력 문제란 거지요. 대학에 들어간 뒤 진짜 ‘공부전쟁’을 할 때 외국 아이들이 무서운 뒷심을 발휘하는 건, 어쩌면 이 노는 시간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무심히 뛰는 동안 길러진 근육들이 ‘공부 근육’까지 단련시키는 건 아닐까요?

“어머니, 아이에게 물어보셨나요?”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저는 아직 강남엄마의 때를 벗지 못하고 몇 가지 실수들을 했습니다. 그 중 피아노 레슨을 둘러싼 일은 지금 생각해도 귓불이 달아오릅니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선 정규 음악 수업과는 별개로 피아노나 첼로, 바이올린 같은 악기 레슨을 신청해서 들을 수 있는데요, 선생님들의 면면이 아주 훌륭합니다. ‘서울바로크합주단’처럼 국내 정상의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는 연주자가 일주일에 한 번씩 내려와 첼로를 가르쳐주시는가 하면, 해외유학까지 다녀온 전문가 선생님들이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맡아 주십니다. 플루트나 클라리넷 같은 관악기며 클래식 기타까지 모두 학교가 공들여 모셔온 분들로 교사단이 꾸려졌습니다. 저는 눈이 휘둥그레해졌지요.

학교 오케스트라의 연주 모습. 이런 모습이 부러워서 저희 아이도 연습을 시켜보려 했습니다만, 아이는 탁 튕겨져 나갔습니다. /사진제공=제주국제학교 © News1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전 다룰 줄 아는 악기가 하나도 없습니다. 학벌이나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문화적 교양과 정신적 풍요를 중시한다는 유럽의 기준으로 본다면, 저는 중산층 근처에도 가지 못할 겁니다. 아마도 제 마음 속에는 항상 그런 열등감이 있었나 봅니다. 그 열등감은 점점 자라나, 자식들은 제대로 된 교양인으로 키우고자 하는 욕망으로 변했습니다. 학교 공부만 잘하는 ‘범생이’는 절대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제 머릿속 이상형은, 춤도 잘 추고 옷도 잘 입고 놀기도 잘 하는 아이였습니다. ‘날라리’처럼 보이지만 공부도 잘하는, 남의 집 ‘엄친아’ 있잖아요, 왜.

물론 저도 초등학교 때 남들 다 가는 피아노학원에 잠깐 다녀본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30센티 자로 손등을 툭툭 때리는 선생님이 너무 싫고 무서웠어요. 울면서 피아노를 그만둔 이후, 어떤 악기도 잡아본 일이 없었습니다. 학교 음악시간에 배우는 건 고작해야 멜로디언이나 실로폰, 리코더 정도? 아, ‘초딩’ 때부터 갈고 닦은 탬버린 연주 실력은 노래방 회식 때마다 두고두고 써먹긴 했네요. KBS 드라마 <직장의 신(일본 드라마 <파견의 품격> 리메이크작)> ‘미스 김(김혜수 분)’ 언니처럼요. ‘직딩(직장인)’의 진정한 필수스펙 ‘음주가무’ 중에서, 음주는 빼고 가무는 저도 좀 됩니다만, 그건 진짜 교양이 아니잖아요.

학교 축제에서 친구들이 공주 같은 드레스를 입고 플루트며 첼로를 연주하는 걸 보면 부럽기도 했고, 대학 와서는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선배들에게 은근슬쩍 반하기도 했지만, 제가 나서서 뭘 다시 배울 생각은 못했습니다. 악기라는 건 어린 시절부터 반복된 훈련을 통해 습득되는 것이잖아요. 뻔히 보이는 어려운 길을 걷기엔 너무 나이가 들어버린 거죠.

그러면서도,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저는 아이에게 욕심을 냈습니다. 남자아이지만 악기 한두 개쯤은 멋지게 다뤄주길 바랐고, 기왕에 쳤던 피아노는 계속 배우길 기대했지요.(“소굴아, 나중에 피아노 치면서 프로포즈하면 여자친구가 감동 먹는다!” 아, 철 없는 에미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걸까요?).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 학교 오케스트라에 서려면 첼로 같은 악기도 익혀둬야 할 것 같았고요.

이런 엄마들의 얘기는, 예일대 법대 교수 에이미 추아가 쓴 <타이거 마더>에도 등장합니다. 유태인인 추아 교수의 남편(그 역시 예일대 법대 교수입니다.)이 악기를 못 다루는 건, 시부모님이 아이를 너무 관용적으로 키워서라고 비판하는 장면 말입니다. 어른이 되면 어린 시절 악기 연습 안한 걸 대부분 후회하는데, 그럴 줄 알면서도 아이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는 건 방치라는 겁니다. 중국계 이민 2세로, 자녀교육에 인생을 건 아시아계 타이거맘 중에서도 ‘상 타이거맘’인 추아 교수는, 대학에서 만나는 학생들은 너그러운 얼굴로 대하면서도, 정작 자기 새끼들인 두 딸은 냉혹할 정도로 조련했습니다. 악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어요. 연습이 안되면 잠도 안 재우고, 여행 다닐 때마다 악기를 싸들고 가는 건 기본이요, 현지에서 ‘새끼 선생님’들을 구할 정도였다고 하니까요.

전 그녀에 비하면 ‘고양이맘’ 수준이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했습니다. 학원 뺑뺑이를 돌리는 것도 아니고 음악인데 뭐. 다 나중에 지들 좋으라고 하는 일이야. 아인슈타인이나 슈바이처도 머리가 안 풀리고 가슴이 답답하면 바이올린을 연주했다잖아. 모차르트도 아버지가 골방에 가둬가며 피아노 연습시킨 거라고.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어? 이렇게요.

그래서 마음이 급했습니다. 선생님들이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는 상급생 위주로 시간표를 짜다 보면 어린아이들은 아무래도 밀리게 되니까요. 피아노 선생님과 상의해 일주일에 한 번 점심시간을 활용해 레슨을 받기로 결정했지요.

그런데 이를 알게 된 담임선생님은 단호했습니다. “어머니, 그렇게 하면 ‘소구리’가 점심을 굶게 돼요. 게다가 남자아이들은 점심시간마다 뛰어나가 축구를 하는데, 가뜩이나 운동을 좋아하는 아이가 얼마나 속이 상하겠어요?” 심지어 첫 점심 레슨 때는 담임선생님이 직접 식당에 들러 샌드위치까지 싸다 주셨다고 합니다. 피아노 선생님께 그 얘기를 전해 듣고 얼마나 부끄럽던지요. 쥐구멍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더군요. 야옹~

두 아이 엄마이신 담임선생님의 눈에 저는, ‘아이를 학대하는 이상한 한국 엄마들 중 하나’로 보였을 겁니다. 여기까지 내려와서도 제 버릇 개 못 주고, 쯧쯧. 저는 바로 꼬리를 내렸습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가 아직 욕심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는 아이 입장에서 생각하겠습니다. 꾸벅.” 너무 창피해서 학교 행사에 가서도 한동안은 선생님 눈을 피해 다녔다니까요.

엄마 욕심을 내세우다 부끄러웠던 일이 또 있습니다. 두 번째 학기 시작을 앞두고 방과후 수업 신청을 받을 때의 일이에요. 저는 맨날 하는 운동 지겹지도 않나 싶어, 딱 한 시간 공부 비슷한 수업을 신청했습니다. 대치동 엄마들이 ‘스펙’을 쌓으려고 가르친다는 ‘영어 디베이트’ 말입니다. 제주에도 국제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대치동 영어선생님 몇 분이 내려와 계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그런 데 보내겠다고 하면 애아빠가 펄펄 뛰며 반대할 게 뻔했습니다. “창의력 죽인다”며 미술학원도 안 보내는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학교에 디베이트 수업이라니! 이게 웬 떡이냐 싶어 덥석 물었죠.

한데 아기 데리고 조그만 스마트폰 창으로 꼬물거리다 보니 뭔가 오류가 났었나 봐요. 뭘 잘못 눌렀는지 같은 요일에 두 과목이 겹쳐진 겁니다. 한 과목은 토론, 그리고 다른 한 과목은, 두둥~ ‘마술’이었죠! 악, 이노무 손꾸락. 한국 학교 같으면 그런 일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먼저 부모에게 연락이 오잖아요. 그런데 이 학교에선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었답니다. 담임선생님이 아이를 붙잡고 물으셨대요. “소굴아, 너 어느 수업 듣고 싶니?” 우리의 소구리는 무엇을 골랐을까요? 당연히, 마술이겠죠!

저는 또 한 번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아이에게 물어보지 않고 엄마 마음대로 했던 걸, 딱 걸렸잖아요. 그래서 이번 학기에는요, 소구리를 컴퓨터 앞에 앉혀놓고 지가 직접 고르도록 놔뒀습니다. 그랬더니 결과는요? 월요일 태그럭비, 화요일 프리스비(원반던지기), 수요일 마술, 목요일 축구, 금요일엔 주니어 대표팀으로 뽑힌 체조를 하고요(손연재? 아니죠, 양학선입니다.)! 전부, 싹, 다 노는 걸로만 채우더군요. “아니, 잠깐만 소굴아, 목요일에 태권도 있는데? 지난 학기에 우리 도복도 샀잖니? 태권도 승급 안 할 거야?” “안 돼, 엄마. 친구들이랑 축구하기로 했어. 도복은 아까우니까 후배 물려주지 뭐.” 아니, 소굴아, 저기, 있잖아! (쾅! 총총….) 에라, 이노무 자슥아.

놀면서 배운다, 제주국제학교의 커리큘럼

놀면서 배우는 제주국제학교 아이들. 지난 학기 3학년은 로마 문화, 4학년은 그리스 문화를 주제로 수업했습니다. 학기 마지막 날, 그리스군은 흰 옷, 로마군은 붉은 옷을 입고, 그리스-로마 전쟁에 나섰네요. 역사적 사실의 의거, 로마군이 승리했습니다. /사진제공=제주국제학교 © News1

노는 것과 공부하는 것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건, 학교 수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말하는 융합학문, 스팀(STEAM)교육이지요. 예를 들어 볼까요? 지난 학기 3학년 아이들은 로마 문화를 배웠습니다. 그리스-로마 문화는 서양 문화의 뼈대인 만큼, 우리 같으면 사람 이름이며 지명, 신화, 역사적 사건 같은 것들을 달달 외우도록 했을 겁니다. 제가 자랄 때 흑백 프린트를 썼다면, 요즘 아이들은 올컬러 학습만화를 보겠죠. 조금 더 여건이 나은 경우엔 박물관으로, 현지로 현장학습을 가기도 할 거고요.

그런데, 이 학교는 달랐습니다. 한 학기 동안 역사는 물론, 거의 모든 수업의 장에서 이 주제를 활용했습니다. 미술시간엔 풍선에 종이를 붙여 로마병사 투구를 만들고, 카드보드지를 구부려 방패도 만들었습니다. 조를 나눠 찾아온 자료로 팝업북도 꾸몄습니다. 아이들은 로마의 군대부터 복식, 가축, 숫자와 문자체계까지 스스로 연구했지요. 학기말 조회시간에는 직접 만든 투구와 방패에 집에서 만들어 온 갑옷까지 차려입고, 로마군대를 묘사한 소극도 공연했습니다. 저도 몰랐는데, 로마 군사들은 에티켓 같은 것도 없이 손으로 음식을 마구 집어먹더라고요. 아무 데서나 트림도 꺽꺽 하고 방귀도 뿡뿡 뀌고요. 아이들이 입으로 방귀소리를 냈는데, 그런 지저분한 음향효과가 나올 때마다 어린이 관중들이 빵빵 터졌지요. 3학년 학생 모두가 한 마디씩 대사를 치는 진짜 연극이었습니다.

공연을 마치고는 운동장에서 그리스 군대로 꾸민 4학년 선배들과 한판 붙기도 했습니다. 로마군단의 특징 중에 거북이 대형(귀갑진)이라고 있는데요, 아이들이 실물 크기 방패를 들고 삼삼오오 모여 귀갑진을 재현하는 데 깜짝 놀랐습니다. 집에 돌아온 소구리에게 “와, 대단한데, 로마군대가 이겨서 기분 좋았겠다~” 했더니 쿨하게 대답하더라고요. “원래 역사적으로 로마가 이기게 돼 있어. 내년엔 (그리스 역사를 배우는) 우리가 져.” 이렇게 스며들 듯 공부하면 뭔들 못하겠어요. 저는 진심으로 이 아이들이 부러웠습니다.

저는 사회부 기자 출신입니다. 그러나 제가 들려드리는 이야기는, “대치동에서도 할 것 안할 것 다해본 극성 엄마들이 제주도까지 내려가 어쩐다더라.” 하는 사회고발이 아닙니다. 우리 교육이 도대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엄마의 마음으로 고민하고, 여기서 보고 듣고 배우는 것들을 이 학교에 다니지 않는 다른 친구들에게도 전해줄 수 있는 방편을 찾아보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 모두가 학교라는 괴물에 잡아먹히지 않도록요. 요행히 탈출했다고 나 몰라라 하기엔, 비등점을 향해 부글거리는 저 열기가 너무 뜨거우니까요. 이 액체폭탄이 터지면, 우리 모두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을 겁니다. 지금까지의 일들은, 전조에 불과합니다.

이 학교에서 아이들은, 공부만 잘한다고 리더가 될 수 없다는 걸 배웁니다. 누구는 축구를 잘하고, 누구는 그림을 잘 그리고, 누구는 춤을 잘 추고, 누구는 요요를 잘 다룹니다. 누구는 아이들을 재미있게 만들어주고, 누구는 다른 친구들 말을 귀담아 들어주며, 다른 누구는 외로운 아이와 먼저 놀아 줍니다. 그림 잘 그리는 아이와 수학 잘 하는 아이가 같은 조가 되면, 멋진 방패를 만들 수 있습니다. 말 잘하는 아이와 잘 들어주는 아이는 찰떡 궁합이 됩니다. 오늘 심통 부린 아이도 내일 반성할 수 있다는 걸 압니다. 오늘 짜증내던 아이도 내일 한 뼘 더 자란다는 걸 압니다.

해외생활을 오래 한 동포아이가 한국말을 못할 수도 있고, 다문화가정 아이가 김치를 더 좋아할 수도 있다는 걸 압니다. 이 모든 걸, 그냥, 놀면서 저절로 알게 됩니다. 이게 학교입니다.

제가 이렇게 역사와 지리를 배웠다면, 시험 문제는 다 맞고도 머릿속에는 아무런 지식도 지혜도 남지 않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까만 글자들이 가슴까지 가지 못하고 뇌에서 하얗게 휘발되는 대신, 한국사 동양사 세계사의 이야기들을 씨줄 날줄로 삼아 오늘을 사는 통찰력의 양탄자를 짰을 겁니다. 그 양탄자를 타고 날아다니며, 한반도과 국제사회의 미래를 내다보는 전망을 키웠겠지요. 제가 이렇게 수학과 과학을 배웠다면, 문제풀이까지 통째로 외워 경시대회를 치르는 대신, 수의 비밀과 자연의 신비를 시로 읊는 어른이 되었을 겁니다. 제가 이렇게 체육을 배웠다면, 제가 이렇게 음악을 배웠다면, 제가 이렇게 미술을 배웠다면, 건강함이 뭔지, 아름다움이 뭔지 저절로 알고 행복해졌을 겁니다. 제가 이런 학교에 다녔더라면, 제가 이런 교육을 받았더라면.

우리 아이들이 이런 교육을 받는다면, 아이들은 서로 경쟁하는 대신, 자기 자신의 성취와 기쁨을 위해 살아갈 겁니다. 시험 점수 하나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내일을 위해 오늘을 저당잡히지 않으며, 같은 반 친구를 미워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더 이상 꽃다운 나이에 죽어나가지 않아도 될 겁니다. 더 이상 괴물이 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 더 이상, 더 이상은….

다음 주에는 왕따와 학교폭력, 진짜 영재와 가짜 영재 얘기들을 차곡차곡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쓰는 글에 대한 판단은, 그러니까 잠시 뒤로 미뤄두셔도 좋겠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