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보여행가 황안나 “길은 어디에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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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을 훌쩍 넘기고 걷기 시작했다. 가끔 길을 잃고 헤매기도 했다. 하지만 길은 어디에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또 다른 길을 준비하고 있다.”
태풍 ‘카눈’의 영향으로 비바람이 거셌던 19일 이른 아침. 인천 부평문화원이 준비한 ‘아침문화강좌’ 강연자로 부평구청을 찾은 도보여행가 황안나(73)씨는 “죽기 전에 꼭 킬리만자로에 오르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껏 킬리만자로에 오른 최고령은 68세. 황 씨는 내년에 그 기록을 경신하고 싶다고 했다.
글을 곧잘 쓴 여고시절 그의 꿈은 작가였다. 그러나 박봉의 춘천역장인 아버지와 다섯 동생을 둔 그에게는 이룰 수 없는‘꿈’에 불과했다. 아버지의 강권으로 교사가 됐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만 했다.
그는 23살에 결혼을 했다. 남편은 하는 사업마다 망했다. 아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빚을 갚느라 ‘절대빈곤자’로 살았다. 채권자들은 학교까지 찾아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해코지를 했다.
“죽고만 싶었다. 더 이상 그 많은 노릇을 견딜 수가 없었다. 이제는 나 자신을 위해 살고 싶어졌다. 정년을 7년 앞두고 39년6개월 만에 교단을 훌쩍 떠났다.”
황 씨는 건강검진 결과 재검 항목이 많이 나오자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부평 동아아파트에서 동암 약사사를 거쳐 만월산 능선을 타고 다시 집까지 3시간을 걸었다. 꼬박 3년을 그렇게 했다.
그는 우연히 TV에서 본 청보리밭 황톳길을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빠졌다. 65세 나이에 ‘도보여행가’로서 인생 2막은 그렇게 시작됐다.
한비야 씨가 40일간 걸었던 해남에서 통일전망대까지 국토종단길을 불과 23일 만에 걸었다. 할 수 있을까 하는 겁도 덜컥 났지만 걷겠다는 욕망이 더 강했다. 나중엔 들통 났지만 남편한테 거짓말을 하고 떠난 길은 이후 동해와 남해를 잇는 해안도로로 이어졌다.
끝났다 싶으면 길은 다시 이어졌다. 수없이 길을 잃었지만 길은 어디에나 있었다. ‘누비이불’ 누비듯 온 국토를 누비고 다녔다.
그는 길 위에서 보낸 시간을 담아 지난 2005년 책을 한 권냈다. ‘내 나이가 어때서’가 대형서점 에세이 코너에 쌓인 모습을 보고 자신한테 감동했다. 언론사 인터뷰가 쇄도했고, TV 프로그램 단골 출연자가 됐다.
작가를 꿈꿨던 여고생은 먼 길을 돌아 마침내 꿈을 이뤘다.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른’ 노인의 몸이 됐지만 도보 여행가이자 작가로, 방송인, 강연자로 그 어느 때보다 바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황 씨는 “우리는 살면서 (무엇 무엇) `때문에’ 많은 것을 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가 발목을 잡는다면 그때 하려고 하는 일이 못할 만한 이유가 충분한지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그는 ‘때문에’라는 말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더 잘 쓴다.
그는 “‘내 나이가 어때서’는 내 나이가 많아서 쓴 책이 아니다. 20대든, 30대든, 40대든 나이 탓을 하는 사람들에게 탁 차고 일어나라고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황 씨는 지난 4월 동해~남해 해안길에 다시 섰다. 다음 달에는 동티벳을 걷는다. 내년에는 세계 최고령 킬리만자로 등반자가 될 꿈을 품고 있다.
도보여행가 황안나 씨는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망설일 시간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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