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물 1255만L 허가' 창고 불…255명, 9시간 사투 끝 방어선 사수
위험 시설·공장 밀집 지역…건물 포위하듯 소방력 배치
"인접 시설로 연소 확대 막은 것 성과"
- 김기현 기자
(평택=뉴스1) 김기현 기자 = 사방이 위험물로 둘러싸인 일촉즉발의 현장이었다. 불길이 한 동을 집어삼키는 데 그치지 않고 인접 창고와 주변 공장으로 번질 경우 얼마든지 대형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소방은 물러서지 않았다. 무리하게 진입하는 대신, 위험물 보관시설 특성을 고려해 안전거리를 확보한 채 사방에 촘촘한 방어선을 세웠다.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전국 각지에서 달려온 소방관들은 밤새 자리를 지키며 화염이 더 번지는 상황을 막는 데 주력했다.
11일 새벽 경기 평택시 청북읍 대형 위험물 저장 물류센터에서 발생한 화재는 그렇게 더 큰 재난으로 번지는 길목에서 멈췄다. 최초 발화동과 인접 창고 등 2개 동은 불길에 휩싸였지만, 주변 5개 동과 물류·산업시설은 지켜냈다. 위험물 다량이 밀집한 현장에서 소방이 끝까지 방어선을 유지한 결과였다.
불이 난 곳은 평택시 청북읍 토진리 특수물류창고인 PJK 평택1센터다. 이날 오전 0시 3분께 1층 창고에서 불길이 치솟았고 자동화재속보설비를 통해 신고가 접수됐다.
문제는 이곳이 일반적인 물류창고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옥내저장소 5개 동을 포함해 7개 동으로 이뤄진 PJK 평택 1센터는 알코올류와 제1~4석유류 등 제4류 위험물 허가량만 모두 1255만L에 이르는 대규모 시설이다.
제4류 위험물은 폭발성과 연소성이 극도로 높아 불길이 인접 건물로 옮겨붙고 위험물 저장시설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을 경우 피해 규모를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건물들이 수m 간격으로 밀집해 있다는 점도 소방 당국을 긴장시켰다. 주변 100m 안팎에는 다른 공장과 물류창고들이 자리하고 있어 불길이 외부로 번질 경우 피해가 급격히 커질 가능성도 있었다.
소방 당국은 화재 초기부터 상황의 심각성을 판단했다. 오전 1시 32분께 연소 확대를 우려해 대응 1단계를 발령했으나 불길이 거세지자 오전 2시 40분께 대응 2단계로 격상했다. 가용 소방력을 최대한 끌어모아 화재 진압과 주변 시설 방어에 집중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이 쉽사리 잡히지 않자 소방은 오전 3시 39분께 '국가소방동원령'을 발령해 한 단계 더 강한 대응에 나섰다. 충남·세종·충북·대전 등 인근 시·도에서 물탱크차와 화학차 등 장비 26대가 긴급히 평택으로 향했다.
밤이 깊어질수록 현장에는 더 많은 장비와 인력이 모였다. 국가소방동원령에 따른 타 시·도 지원 차량 28대 등 모두 102대의 장비와 255명의 인력이 투입됐다.
무엇보다 이날 화재 진압 작전은 '방어선 사수'에 초점을 맞췄다. 소방 당국은 대량의 위험물이 저장된 건물 내부로 대원들이 무리하게 진입하는 대신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원거리에서 집중 방수를 이어갔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 특수대응단과 중앙119구조본부 화학구조대 등 위험물 화재 전문 인력도 투입해 화재 진압에 힘을 보탰다.
불길을 한꺼번에 잡기 어려운 상황에서 소방 당국이 선택한 것은 화재 건물을 포위하듯 주변을 지키는 방식이었다. 소방 당국은 4개 방면에서 화재가 인접 건물로 넘어갈 수 있는 길목마다 소방력을 배치했다. 한쪽에서 화염이 치솟으면 다른 쪽에서는 주변 건물에 대한 방어가 이어졌다.
목표는 분명했다. 화재가 더 이상 번지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특히 불이 붙은 건물 주변에 위험물 저장시설이 밀집해 있는 탓에 화염이 번질 경우 대규모 화재로 이어질 가능성이 컸기에 소방은 연쇄적 위험을 차단하는 데 힘을 쏟았다.
밤새 이어진 방어작전 성과는 새벽이 지나면서 나타났다. 최초 발화동과 인접 창고 등 2개 건물이 전소했지만, 소방은 주변 5개 동으로 불이 옮겨붙는 최악의 상황을 막았다.
오전 5시 16분께에는 연소 확대를 저지했다고 판단해 경보령을 대응 2단계에서 1단계로 하향했다. 약 9시간에 걸친 진화 작업 끝에 오전 9시 8분께 초기 진화에도 성공했다.
수백만L 규모 위험물이 존재하는 시설이었음에도 진압 과정에서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았다.
소방 당국은 화재 진압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환경 피해에도 대응했다.
평택시와 함께 환경오염 통제팀을 구성해 화재 현장에서 발생한 소방용수 등이 인근 하천으로 흘러 들어가지 않도록 방재작업을 벌였다.
화재 자체뿐 아니라 진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2차 피해까지 막기 위한 조치였다.
현재 소방 당국은 잔불 정리와 완전 진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불을 완전히 끈 뒤에는 현장에 실제로 보관돼 있던 위험물의 종류와 양 등을 추가로 확인할 예정이다.
당초 전소한 창고에 각각 191만L와 163만L의 위험물이 보관된 것으로 파악됐지만, 조사 과정에서 이는 실제 보관량이 아니라 '보관 허가량'인 것으로 확인됐다. 정확한 위험물 보관 현황은 추가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번 화재는 대규모 위험물 시설 화재가 얼마나 빠르게 대형 재난으로 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이에 맞춰 위험 수준을 얼마나 정확히 평가하고, 어디에 소방력을 집중할지를 신속히 결정하는 게 중요한지도 상기시켰다.
홍장표 경기도소방재난본부장은 "대량의 위험물이 저장된 상황에서 불이 인접 시설로 번질 경우 피해가 크게 확대될 수 있는 긴박한 상황이었다"며 "현장 대원들이 밤새 방어선을 지켜낸 끝에 인명피해 없이 주변 5개 동과 인접 시설로의 연소 확대를 막아냈다"고 말했다.
kk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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