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셀 유족, 법정서 "아직도 고통" 울분…판사 "아이 위해서라도 힘 내야"

지난해 23명이 사망한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로 재판에 넘겨진 박순관 아리셀 대표이사에게 법원이 '징역 15년'을 선고한 지난 9월23일 오후 경기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유가족을 비롯한 대책위 관계자들이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9.23/뉴스1 ⓒ News1 김민지 기자
지난해 23명이 사망한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로 재판에 넘겨진 박순관 아리셀 대표이사에게 법원이 '징역 15년'을 선고한 지난 9월23일 오후 경기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유가족을 비롯한 대책위 관계자들이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9.23/뉴스1 ⓒ News1 김민지 기자

(수원=뉴스1) 김기현 기자 = "아이를 위해서라도 힘 내셔야죠."

23명에 달하는 사망자를 낸 화재 참사로 재판에 넘겨진 박순관 아리셀 대표 등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 사건을 심리하는 신현일 수원고법 형사1부 판사가 19일 항소심 2차 공판 중 피해자 유족 진술을 청취하다 이같이 말했다.

아리셀 화재 참사 희생자 중 1명인 고(故) 김병철 씨 아내 최현주 씨가 "아직도 고통스러운 남편 모습이 매일 생각난다"며 "저는 퇴사하고, 고등학생 막내는 학교를 그만두는 등 방황하고 있다"고 말한 데 대한 위로였다.

신 판사는 "자녀는 왜 학교를 그만 뒀느냐"고 묻기도 했다. 그러자 최 씨는 "아이가 남편을 많이 닮았다. 둘이 각별했다"며 "상실감이 굉장히 컸던 것 같고, 사춘기와 겹쳐 '이렇게 살면 뭐하냐'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답했다.

최 씨는 또 아리셀 화재 참사 전 '힘들다'고 말하는 남편에게 무심코 '무슨 소리야. 힘내. 애가 셋이야'라고 말한 데 대해 후회하고, 자책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혀를 자르고 싶은 충동마저 들었다는 게 최 씨 설명이다.

그는 "주변에서는 제 잘못이 아니라며 아이를 키우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하지만, 남편에 대한 미안함은 변하지 않는다"며 "누구보다 책임감이 강하고, 이성적이며 논리적인 사람이어서 잘되길 진심으로 바랐다"고 진술했다.

특히 최 씨는 "참사 후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남편에 대한 사죄 뿐이었고 박순관도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1년이 넘도록 합의만 종용할 뿐 진심 어린 사과는 아직도 받지 못했고, 사과는 커녕 폭발 원인을 남편에게 전가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마찬가지로 아리셀 화재 참사 희생자인 아내 강순복 씨와 처제 강금복 씨를 잃은 허헌우 씨도 유족 진술에 나서 박 대표 등이 여전히 진심 어린 사과를 하지 않은 점을 꼬집으며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고 강조했다.

허 씨는 "장모님도 두 딸을 잃은 후 매일 슬픔 속에서 지내시다가 지난달 돌아가셨다. 저는 한꺼번에 3명의 가족은 잃은 것"이라며 "(그런데) 박순관은 여태 유족들한테 진심 어린 사과도 안 하고 합의를 다 끝냈다고 말한다. 그러면 아직 합의를 안 끝낸 유족들은 뭐가 되냐"고 토로했다.

최 씨는 "제가 합의하지 않고 여전히 투쟁하는 것은 돈을 더 뜯어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며 "남편을 보내는 과정에 사과는 분명히 있어야 하는 만큼 남편 진심을 짓밟는 이들이 정당한 죄값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사망자 23명이 발생한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와 관련해 박순관 아리셀 대표와 아들 박중언 총괄본부장이 지난 8월28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후 대기 장소인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남부경찰서 유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2024.8.28/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재판부는 이날 박 대표 등 피고인 측 변호인들로부터 약 2시간에 걸쳐 항소 이유와 관련한 프레젠테이션 발표를 청취했다. 내년 1월 23일 예정된 3차 공판에서는 아리셀 직원 등에 대한 증인 신문을 진행하겠다는 방침이다.

박 대표는 지난해 6월 24일 화성시 서신면 전곡리 아리셀 공장에서 불이 나 근로자 23명이 숨진 화재 사고와 관련해 유해·위험 요인 점검을 이행하지 않고, 중대재해 발생 대비 매뉴얼을 구비하지 않는 등 안전 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한 혐의를 받는다.

그의 아들인 박중언 총괄본부장은 발열감지 점검 등 전지 보관·관리를 미흡하게 하고, 화재 대비 교육 및 소방 훈련을 실시하지 않는 등 안전 관리상 주의 의무를 위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아리셀은 2020년 5월 사업 시작 후 매년 적자가 나자, 무허가 파견업체 소속 비숙련 외국인 근로자 320명을 생산 공정에 교육 없이 즉시 투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매출을 높이기 위해 기술력 없이 노동력만 집중적으로 투입해 무리하게 생산을 감행, 해당 사고를 야기했다는 게 수사기관 판단이다.

수사기관은 또 아리셀이 생산 편의를 위해 방화구획을 철거하고, 대피경로에 가벽을 설치하는 등 구조를 임의로 변경하면서 피해를 키운 것으로 보고 있다.

박 대표는 지난 9월 23일 1심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최대 형량인 징역 15년을, 박 총괄본부장은 징역 15년과 벌금 100만 원을 각각 선고받고 양형부당 등을 사유로 항소했다.

kk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