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수마에 두 동강 난 전봇대·넋 나간 주민들…참혹한 가평군 조종면

수도·전기·통신·도로 끊겨 마을에 고립된 주민들
산사태에 한해 농사 물거품…삶의 터전 송두리째 앗아가

21일 경기 가평군 조종면 마일1리 마을에서 주민이 위태롭게 서있는 주택을 가리키고 있다. 이곳은 전날 집중호우로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이다.2025.7.21/뉴스1 ⓒ News1 양희문 기자

(가평=뉴스1) 양희문 이상휼 기자 = "어젠 서있던 나무가 오늘은 쓰러져 있어요. 제 집도 언제 무너져도 안 이상해요."

21일 경기 가평군 조종면 마일1리 주민들은 전날 마을을 덮친 수마의 아픔에 신음하고 있었다.

새벽 시간 느닷없이 발생한 산사태로 인해 주민들의 터전은 토사물로 뒤덮여 완전히 망가진 모습이었다.

주택 마당은 발이 푹푹 들어갈 정도로 깊게 진흙이 쌓였고, 건물 벽엔 돌덩어리가 부딪힌 흔적이 가득했다.

비닐하우스와 창고는 힘없이 주저앉았고, 하천변에 위치한 주택은 밑 부분이 쓸려나가 위태롭게 서있었다.

황토색 속살을 드러낸 산과 곳곳이 갈라지고 깨진 도로, 두 동강 난 전봇대는 당시 참혹했던 상황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21일 경기 가평군 조종면 마일1리가 전날 발생한 산사태로 전봇대가 쓰러지고 도로가 유실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2025.07.21/뉴스1 ⓒ News1 양희문 기자

한순간에 보금자리를 잃어버린 주민 김병진 씨(50)는 넋이 나간 상태로 파괴된 자신의 집을 바라봤다.

김 씨는 "폭우 당시엔 외출했었는데 돌아와 보니 집이 완전히 파괴됐다"며 "맞은편 나무도 어제까진 서있었는데 오늘 쓰러진 것처럼 우리 집도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 마을은 수도와 전기, 통신도 끊긴 데다 진입로마저 유실되면서 주민들이 산골에 고립된 상태다.

일부는 절단된 도로 위를 아슬아슬하게 건너 탈출하기도 했지만, 고령의 어르신은 옴짝달싹 못한 채 갇혀버렸다.

고립된 주민은 폭우 이후 찾아온 폭염과 또 다른 사투를 벌여야 하는 상황이다.

장모를 모시고 마을을 떠나던 주홍군 씨(47)는 "진입로가 파괴돼 차량을 아예 못 쓰고 있다"며 "복구 작업이 더뎌 어르신들은 초토화된 마을에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21일 경기 가평군 조종면 마일1리 주민들이 전날 발생한 산사태로 전기와 수도 공급이 끊기면서 마을을 떠나고 있다.2025.7.21/뉴스1 ⓒ News1 양희문 기자

산사태와 폭우로 한해 농사도 망쳐버린 농민들은 망연자실하고 있다.

수확철을 앞둔 옥수수 밭은 쑥대밭이 됐고, 양봉장은 토사물에 휩쓸리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조 모 씨(69)는 "1통당 50만 원 정도는 하는 벌통이 전날 산사태로 인해 쓸려나갔다. 피해가 막심하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동으로 물이 공급되던 축사는 수도 공급이 끊기면서 물 부족을 겪고 있다.

축산업자들은 자칫 제때 물을 주지 못하면 소들이 폐사할까봐 지하수를 물탱크에 실어 나르는 수고로움을 반복하고 있다.

소 50여 마리를 키운다는 양재구 씨(74)는 "100L짜리 물탱크에 물을 담아 가져와도 소들이 더위 탓에 금방 축낸다"며 "소중히 키운 소들인데 힘들어도 계속 왔다갔다 해야 한다"고 전했다.

21일 경기 가평군 조종면 마일1리 소재 한 옥수수밭이 전날 발생한 산사태로 쑥대밭이 됐다. 2025.7.21/뉴스1 ⓒ News1 양희문 기자

이날 수해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하루 빨리 특별재난구역으로 선포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상식을 뛰어넘는 피해 규모에 군비로는 피해 복구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금연화 씨(68)는 "밭이 토사에 묻혀 난리가 났다"며 "군비만 가지고는 안 된다. 국비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기도와 소방당국에 따르면 경기북부 집중호우로 사망 4명, 실종 4명, 부상 5명 등의 인명피해가 발생했고 이재민 89명이 발생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사망자는 가평 3명, 포천 1명, 실종자는 가평 4명이다.

경기북부지역 도로·교량 파손과 유실 25건, 산사태 53건, 주택침수 100여건 등 168건의 시설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21일 경기 가평군 조종면 마일1리 한 창고가 전날 발생한 산사태로 붕괴됐다. 2025.7.21/뉴스1 ⓒ News1 양희문 기자

yhm95@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