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8차 사건 살인자 누명…윤성여, 31년 만에 명예 되찾다(종합)
역사적 순간 함께하기 위해 일반 시민들 다수 찾아
- 유재규 기자, 최대호 기자
(수원=뉴스1) 유재규 최대호 기자 = 1988년 '이춘재 연쇄살인 8차사건'의 진범으로 몰려 살인자라는 누명을 안고 20년 간 옥고를 치렀던 윤성여씨(53)가 31년 만에 그 오명을 벗게 됐다.
윤씨가 그토록 "명예를 되찾고 싶다"며 반복해 말했던 염원의 순간이 마침내 2020년 12월17일에 이뤄진 것이다.
이날 수원지법 제12형사부(부장판사 박정제)의 심리로 열린 '이춘재 8차사건 재심' 선고공판을 방청하기 위해 수많은 취재진과 윤씨의 지인, 일반 시민들이 찾았다.
공판시작 40분 전부터 주법정에 들어서기 위해 501호 출입문 입구에는 기다란 줄이 형성됐다.
재판부가 앞서 촬영허가를 예고한 바와 같이 이날 합의부, 검찰, 변호인이 있는 주법정에는 역사적 현장을 담아내기 위해 촬영도 진행됐다.
검찰은 첫 공판부터 이날 12차 공판까지 사건을 담당했던 공판검사 2명이, 변호인 측은 법무법인 '다산'의 김칠준 변호사 등 3명이 각각 출석했다.
윤씨의 가족 및 지인들은 6명이 참석했다.
선고공판은 오후 1시30분부터 시작됐고 많은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재판부의 판결주문(主文)이 약 40분동안 법정에 울려 퍼졌다.
재판부는 윤씨가 8차 사건의 진범으로 몰렸던 당시 수사기록, 현장검증, 국과수 감정내용서 등 채택된 증거들에 대한 오류가 있음이 명백히 보이고 이춘재의 진술이 매우 신빙성 있다며 윤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달 검찰이 결심공판에서 명백한 수사의 오류가 있음에도 이를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며 검찰을 대표해 윤씨에게 머리숙여 사죄한 바 있는데 이날 선고공판에는 재판부가 윤씨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다.
재판부는 "윤씨가 20년 간 옥고를 치른 것은 법원이 인권의 마지막 보루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점을 들어 사법부 일원으로서 사죄한다"고 밝혔다.
마침내 윤씨에게 무죄가 선고되자 방청석에 있던 시민과 윤씨 지인들은 재판부의 판결에 환영한다는 뜻으로 일제히 박수갈채를 보냈다.
윤씨는 법정에서 나와 어릴 적 앓았던 소아마비로 힘들게 걸으면서 수많은 취재진 앞에 섰다.
강요에 의한 자백으로 살인피의자로 카메라를 응시했던 1988년과 정반대 상황이다.
윤씨는 "오늘 수고 많으셨고 감사하다. 모든 일에 나같은 (억울한)사람이 나오질 않길 바란다"며 "무죄를 선고 받아 속이 후련하다. 앞으로도 (사법부의)공정한 재판이 나오기 바란다"고 소감을 전했다.
'미안하고 축하해요'라는 글귀로 현수막을 내건 윤씨의 가족과 지인들도 그의 곁에서 함께 기뻐했다.
그동안 '모방범죄'로 알려졌던 8차사건의 역사가 이날 '무죄' 선고로 다시 쓰이게 됐다.
방청을 한 A씨는 "윤씨의 삶에는 앞으로 좋은 일만 가득했으면 좋겠다"면서 "이번 판결을 계기로 사법부가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도 고심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 방청객 B씨는 "부끄럼없이 살아온 만큼 하늘이 감동해 윤씨에게 큰 축복을 내린 것 같다"며 "그동안 힘들게 살아왔을 윤씨에게 박수를 보낸다"고 응원했다.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은 1988년 9월16일 경기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에서 발생했다. 박모양(당시 13세)이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유일하게 이춘재 관련 모방범죄로 알려졌었다.
과거 이 사건 진범으로 몰려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윤성여씨는 이후 감형돼 수감 20년만인 2009년 8월 출소했다.
이춘재는 지난해 9월, 8차 사건을 포함한 10건의 화성사건과 다른 4건의 살인사건 모두 자신이 저지른 범행이라고 자백했고 이에 윤씨는 지난해 11월13일 수원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그동안 총 12차례 진행된 재판동안 검찰과 변호인 측은 실체적 진실규명을 함께 입증해 왔다. 검찰은 또 8차 사건의 재심에 대해 "항소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ko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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