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헌법에 새겨야 할 것은 그 사건이 가르친 '규칙'

정석희 전남대 교수(환경에너지공학과)

정석희 전남대 교수(환경에너지공학과)

지난 5월 헌법 개정안 하나가 조용히 시한을 넘겼다. 원내 6개 정당이 공동 발의한 개정안은 6월 지방선거와 함께 국민투표에 부쳐질 예정이었으나 국회 의결 시한을 통과하지 못했다.

조문만 놓고 보면 이 개정안의 실질은 계엄권 통제였다. 그런데 정치적으로 소비된 것은 헌법 전문에 들어갈 사건의 이름이었다. 왜 전문에 사건 하나를 넣고 빼는 문제가 이토록 무거워졌을까.

뿌리는 1948년이다. 제헌헌법 전문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라는 문장으로 열린다. 1948년에 나라를 처음 세운다는 선언이 아니라, 1919년에 세워진 나라를 다시 세운다는 논법이었다. 식민지배를 부정해야 했고 두 정부가 한반도에서 동시에 출범하던 때였으니, 그 선택 자체를 오류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헌법 전문이 한 번 정통성을 겨루는 무대가 되자 이후의 권력도 같은 무대에 올랐다. 1962년 제5차 개헌에서 4·19와 5·16이 나란히 전문에 들어갔다. 국가기록원은 이 개헌에서 두 사건의 이념이 새 헌법의 정신적 기반이라는 점이 첨가되었다고 설명한다. 신생 독립국이 자기 기원을 밝히는 일과, 당대의 정치세력이 자기 시대의 사건을 헌법에 새겨 정당성을 얻는 일은 성격이 다르다.

더 눈여겨볼 것은 사건이 지워지는 방식이다. 4·19와 5·16은 1972년 헌법 전문까지 나란히 남아 있었으나, 1980년 개정에서 두 이름이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1987년 헌법은 그중 4·19만을 되살렸다. 5·16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헌법 전문에 새겨진 사건의 이름은 시대의 다수가 무엇을 기억하기로 했는지에 따라 들어오고 나갔다.

미국 헌법은 구조가 다르다. 전문에는 독립전쟁도 남북전쟁도 이름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역사를 담지 않은 것은 아니고, 담는 자리가 달랐을 뿐이다. 노예제와 남북전쟁의 교훈은 그 정신을 계승한다는 문장이 아니라 수정헌법 제13조, 14조, 15조로 들어갔다. 노예제 폐지, 시민권과 적법절차, 평등보호라는 구체적 규범이 된 것이다. 그리고 13조는 비준된 이래 한 번도 지워진 적이 없다.

차이는 결정적이다. 사건의 이름은 해석을 필요로 하고, 해석권은 결국 누군가가 가져간다. 반면 조문은 해석의 폭이 좁고, 법정에서 국민이 직접 꺼내 쓸 수 있는 도구가 된다. 사건을 새기면 정파의 자산이 되지만, 교훈을 새기면 국민의 무기가 된다.

이 구조가 낳은 부산물이 건국일 논쟁이다. 현행 헌법 전문은 3·1운동으로 건립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밝히면서, 끝부분에서는 1948년에 제정된 헌법이라고 적는다. 1919년은 민주공화국 이념의 기원이고 1948년은 정부가 실제로 출범한 시점이라 우위를 다툴 관계가 아닌데, 층위가 다른 두 사실을 법통이라는 하나의 상징어로 묶어 놓았기 때문에 해마다 같은 논쟁이 되풀이된다.

그렇다면 방향은 분명해진다. 3·1운동의 교훈은 국민주권으로, 4·19의 교훈은 선거의 공정성과 권력의 평화적 교체 절차로, 5·18의 교훈은 계엄 선포 요건의 엄격화와 국회 통제로 옮기면 된다. 어떤 사건을 넣을 것인가를 다투는 대신, 그 사건이 남긴 규칙을 조문으로 만드는 일이다.

절차도 함께 보아야 한다. 우리 헌법의 문턱은 낮지 않다. 개헌에는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의 찬성과 국민투표 과반의 찬성이 모두 필요하다. 부족한 것은 문턱의 높이가 아니라, 국민이 개헌의 내용을 한 항목씩 따로 판단할 수 있게 하는 형식이다. 역사 조항과 계엄 조항과 대통령 임기 조항이 한 덩어리로 묶여 올라오면, 국민은 그중 하나에 반대하기 위해 나머지 전부를 버려야 한다.

헌법 개정은 정치세력이 자기 역사를 새기는 작업이 아니라, 국민이 권력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 정하는 작업이어야 한다. 헌법에 새겨야 할 것은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이 가르친 규칙이다.

yr200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