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고 학생들 어깨 펴요"…'스벅 응원' 사과 포용한 광주일고
이규연 광주일고 교장 "여러분들 미래 끝난 것 아니다"
"다음엔 정말 정정당당하게 서로 기량 마음껏 펼치자"
- 서충섭 기자
(광주=뉴스1) 서충섭 기자
"어머니들 들어오시면서부터 눈물을 흘리고 계셔서 제가 안그래도 마음이 안 좋은데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배재고 학생들, 고개 들어요."
6일 오후 전남광주 북구 누문동 광주제일고 강당.
80여 명의 배재고 야구부 선수단과 교사, 학부모들이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들어섰고 광주일고 선수단과 학생 등 50여 명과 마주했다.
배재고 학생 선수 대표와 감독이 준비해 온 자필 사과문을 낭독하며 울먹였다.
배재고 감독이 눈시울을 붉히자 광주제일고 야구단 감독은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반성하고 화해하는 게 더 성숙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 같다"고 위로했다.
이규연 광주제일고 교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국어 교사 출신인 이 교장은 지난 29일 청룡기 대회에서 배재고의 '스타벅스 가야지'·'탱크데이' 응원 구호 사건이 터지자 곧바로 다음날인 30일 서울로 올라가 대한야구소프트볼 협회를 항의 방문했다.
이 교장은 "정정당당하게 서로를 존중하는 교육의 장인 고교야구 경기장에서 혐오와 조롱이 여럿의 목소리로 울려퍼진 것은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항의문도 직접 작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최근까지도 학교를 향해서 걸려오는 "광주일고 학생들이 너무나 심한 일을 겪었다. 절대 사과를 받아주면 안된다"는 수 십 통이 넘는 항의성 전화를 마주하기도 했다.
그랬던 이 교장은 이날 울먹이는 배재고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향해 따뜻한 손길을 내밀었다.
이 교장은 "원래 하려던 말이 사라져버렸다. 배재고 학생들 고개 들어요. 어깨 펴요"라며 "여러분 미래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시 생활할 수 있습니다"라고 다독였다.
그러면서 "진정으로 사과하려면 사과도 중요하고 실천도 중요한데 더 중요한 건 앞으로 잘 사는 것입니다"며 "어깨 움츠리지 마시고 고개 들고 다음에 일고학생들 만날 때 정말 당당하게 서로 있는 기량 맘껏 펼쳐서 멋진 승부 펼쳐주는 것이 여러분이 용서를 구하는 가장 멋진 모습이다"고 말했다.
이어 광주제일고 야구부를 호명한 이 교장이 "여러분도 그럴 수 있죠"라고 묻자 제일고 야구부는 일제히 "네" 하고 대답했다. 다시 이 교장이 배재고를 향해 "그럴 수 있죠"라고 묻자 그제서야 배재고 학생들도 "네"하고 힘차게 대답했다.
이 교장은 "변화를 위해 우리가 감내해야 할 고통이 있다. 고통을 주고자 하는 마음으로 했던 건 아니리라 생각한다"며 "큰 상처 딛고 성숙한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학생들에 용기를 주고, 어른들의 몫을 명확하게 하길 바란다. 저도 이번일을 계기로 돕고, 저희가 부족한 것은 있었는지 돌아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교장은 두 학교의 역사도 소개했다.
이 교장은 "배재고 안에 이승만 동상이 있고, 광주제일고에는 학생운동기념탑이 있는데 기념탑 휘호를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내렸다"며 "1954년 기념탑 제막식 때 이 대통령이 직접 참여했다. 1929년 학생독립운동 때도 두 학교는 함께 힘을 합쳤다"며 역사가 오래된 두 학교의 동질성을 강조했다.
이 교장의 이같은 발언 이후 두 학교 학생들은 서로 악수하고 마주했다. 함께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와 국립 5·18민주묘지를 잇따라 참배했다.
zorba85@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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