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죽어가는데 폐수 벌컥벌컥…전 보건소장의 이상한 선택[사건의재구성]
교통사고 내고 119 대신 가족에 전화…피해자 사망
대법, 금고 4년 원심 확정…유족, 처벌 강화 국민청원
- 최성국 기자
(광주=뉴스1) 최성국 기자 = 지난 2024년 12월 26일 오후 10시 2분쯤 전남 화순군 한 교차로. 야간에 산책을 나섰던 한 시민이 이 교차로 아래 굴다리 밑에서 참변을 당했다.
통행길로 사용하던 굴다리에서 차에 치인 피해자가 병원으로 옮겨진 건 22분이 지나서였다. 이 시간에 굴다리에선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당시 A 씨(65)는 승용차의 속도를 줄이지 않고 좌회전으로 굴다리에 진입했다. 굴다리 가장자리에 B 씨(58)가 걸어가고 있었다.
사고를 낸 A 씨는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몇 분 후 A 씨는 피를 흘리던 B 씨를 보고 어딘가로 전화하기 시작했다. 수신자는 119가 아닌 가족이었다.
통화를 마친 A 씨는 인근 하천으로 내려가 하천물을 떠 마셨다. 물을 마신 후엔 도로로 올라왔다가 다시 하천으로 내려가 물을 마시길 반복했다. A 씨는 폐수나 다름 없는 이 하천물을 31차례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A 씨는 전직 보건소장이었다. 일반인보다 뛰어난 A 씨의 의료지식도, 사고지점 인근대학병원 응급실도 무용지물이었다.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 채 피를 흘리던 B 씨는 A 씨 가족이 현장에 도착해 119에 전화를 건 뒤에서야 응급실로 이송됐다. 사고 발생 22분 만이었다.
광주 대학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던 B 씨는 사흘 뒤 끝내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외상이었다.
수사기관은 A 씨에게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치사) 혐의, 유기치사 혐의, 도로교통법 위반(사고후미조치) 혐의를 뒀으나 A 씨 행위와 피해자의 사망 사이에 인과 관계가 증명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치사 혐의만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1심 재판부는 그릇된 A 씨의 행동을 질타하며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금고 4년형에 처했다.
1심을 맡은 광주지법 형사3단독 장찬수 부장판사는 "사고 이후 당황했다고 해도 지자체 보건소장까지 역임한 피고인이 '골든타임'이라는 시간 내에 바로 119신고를 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 오히려 가족에게 연락하거나 마시기 적절하지 않는 하천물을 마시는 등 다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고 질타했다.
장 부장판사는 "그 결과 인근에 있는 대학병원 등으로 후송이 늦어짐에 따라 사망이라는 극단적인 결과를 막았을 수도 있는 때를 놓치게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왼쪽으로 굽은 도로에서 전방을 잘 주시하지 않거나 일시 정지하는 등 서행하지 않은 피고인의 과실이 크고 유족들이 엄벌을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A 씨는 피해자 유족에게 억대 형사공탁도 걸었지만 유족은 이를 거부하면서 양형에 제한적으로 참작됐다.
1심에서 법정구속된 A 씨는 항소와 상고를 거듭했으나, 대법원은 지난 6일 A 씨에 대한 원심이 내린 금고 4년형을 확정했다.
B 씨의 유족들은 '교통사고 후 구조 지연 등으로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 가해자를 강력 처벌할 수 있는 근거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 규정해달라'는 취지의 국민 청원을 올렸다.
해당 청원은 한달 새 국민 5만 232명의 동의를 얻어 국회에 제안됐으나 이날까지 위원회 심사 과정에 머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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