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만에 벗은 '살인자 누명'…검찰 위법·강압 수사 수두룩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범인 지목 부녀, 재심 무죄 확정
박준영 변호사 "사법 시스템 정비해야"…경찰, 진범 찾기 수사
- 최성국 기자
(광주=뉴스1) 최성국 기자 = 2025년은 백 씨 부녀가 억울함을 푼 해다. 검찰의 강압 수사로 '아내·엄마를 살해했다'는 오명을 얻고 옥살이를 한 지 16년 만이다.
전남 순천에 거주하던 이들 일가족은 순식간에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어머니는 독극물에 의해 세상을 떠났다. 남편과 딸은 소중한 가족을 잃은 슬픔을 이겨낼 겨를도 없이 가족과 마을 주민을 살해한 범인으로 내몰렸다. 이른바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이다.
이 마을에선 2009년 7월 6일 청산가리가 섞인 막걸리를 나눠 마신 주민 2명이 숨지고 2명이 중상을 입었다.
경찰 수사가 이어지는 가운데 검찰은 사망한 마을 주민의 남편 백 모 씨(75)와 딸 A 씨(41)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이들이 범행을 실토했다며 구속 수사가 이어졌다.
딸은 IQ 70 수준의 경계선 지능을 가졌다. 딸은 반복되는 검찰의 유도성 질문과 자백 강요에 없던 범행을 털어놨다. 그러나 재심 재판에서 수사기관이 들었다는 '자백'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됐는지 아무것도 입증되지 않았다.
아버지 백 씨는 포승줄에 묶인 채 장기간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억울함을 토로했으나 "딸이 모든 걸 털어놨다"는 검찰의 말에 "제가 범인"이라고 진술했다. 한글을 제대로 쓸 줄 모르던 그는 오탈자 하나 없는 자백서를 제출했다.
아버지는 '청산염을 막걸리에 넣었냐'는 수사관의 질문에 "제 생각이 아니다"고 수차례 답변했으나 조서엔 "청산염을 막걸리에 타기로 한 것은 본인의 생각이다"는 자백 진술이 들어갔다.
강요된 자백은 살인 재판에서 이들을 옭아맸다.
1심 재판부는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했지만, 항소심과 상고심은 백 씨에게 무기징역을, 딸에겐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어디에도 털어놓을 수 없는 억울함은 박준영 재심 전문 변호사를 만나며 점점 풀리기 시작했다. 광주고법도 '강압 수사'를 인정하며 재심 재판을 받아들였다.
재심 재판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검찰의 위법·강압 수사가 수두룩하게 확인됐으며 부녀의 범행을 입증할 증거는 없었다.
재심 재판부(광주고법 제2형사부 재판장 이의영)는 "해당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 기소, 재판은 검찰의 예단으로부터 시작됐다. 구체적 내용을 확인할 수 없는 검찰 수사관과의 면담 이후 자백 진술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자백 동기, 자백에 이르게 된 경위에 대해 상당한 의심이 든다"고 판시했다.
특히 "청산염으로 범행을 했다는 과학적 증거 능력, 범행 동기도 모두 인정되지 않는다. 피고인들은 결박 등 현저히 불안한 상태에서 수사를 받아 검찰 조사 내용에 대해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범행 후 정황도 살인을 저지른 사람의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적법절차에 따라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자세로 실체적 진실을 발견해야 할 본연의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했던 점을 깊이 반성한다"면서 상고를 포기했다.
박준영 변호사는 "검찰이 앞으로 경계선 지능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나 배움이 부족한 분들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각별한 배려를 해줬으면 한다"며 "취약계층에 대한 신뢰관계인 동석 등 절차적 권리 보장, 경계선 지능인을 고려한 사법 절차 시스템 정비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남경찰청 미제사건수사팀은 이 사건의 진범을 찾기 위한 수사에 돌입했다. 전담팀은 광주지검 순천지청으로부터 수사내역과 관련 기록 일체를 전달받아 관련 기록 검토에 들어갔다.
전달된 증거·서류는 18~19권 분량으로 검토에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전담팀은 기록 검토 후 마을 탐문 등 재수사를 본격화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많은 시간이 흘러 수사에 다소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진범을 찾기 위해 기록 검토부터 철저히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star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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