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16년 만에 무죄…"검찰 사과해야"(종합)

피고인들 15년 옥살이 끝 재심서 무죄
법원 '예단·위법 수사' 인정

28일 오후 광주고등법원에서 가족과 마을 주민을 살해한 혐의에 대해 재심 재판을 받은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의 부녀가 16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후 만세를 외치고 있다. ⓒ News1 박지현 기자

(광주=뉴스1) 최성국 박지현 기자 = 청산가리를 탄 막걸리를 마시게 해 가족과 마을 주민을 살해한 혐의로 15년간 옥살이를 했던 부녀가 재판에 넘겨진 지 16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심 재판부는 피고인 측이 주장했던 '검찰의 위법·강압 수사'를 인정하며, 검찰이 지목했던 범행 동기와 방법, 자백 증거를 배척했다.

'부녀 치정에 가족 살해' 억울함 벗은 순천 부녀

피해자 중 한명은 전남 순천 한 마을에 거주하는 A 씨(75)의 아내이자 B 씨(42·여)의 엄마였다.

이 피해자는 2009년 7월 6일 A 씨로부터 전달받은 막걸리 2명을 순천시 희망근로사업장으로 가져가 동료들과 나눠 마셨다.

막걸리를 마신 피해자와 동료 1명은 청산염 중독에 의한 심정지로 숨졌고, 다른 동료 2명은 막걸리를 곧바로 토했지만 중상을 입었다.

검사는 A 씨와 B 씨가 부적절한 관계를 숨기기 위해 막걸리에 청산염을 타 살인을 저질렀다며 이들을 재판에 넘겼다.

A 씨는 살인과 살인미수 혐의를, B 씨는 존속살해·살인·살인미수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이들이 수사과정에서 자백했다고 주장했으나 정작 피고인들은 1심 재판 중 억울함을 호소했다.

1심은 이들의 살인 등 혐의에 무죄를 내렸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결과를 뒤집어 A 씨에게 무기징역을, B 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16년 만에 드러난 검찰 '예단·위법 수사'

대법원에서 유죄 확졍 판결을 받은 이들 부녀는 지난 2022년 1월 검찰의 위법·부당 수사를 이유로 재심 재판을 청구했다. 광주고법은 지난해 1월 검사의 피의자신문 당시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가 성립되는 것으로 보고 재심을 받아들였다.

재심 결과는 무죄였다. 광주고법 제2형사부(재판장 이의영)는 28일 "피고인 B 씨의 경우 지능이 경계선 수준이었는데, 검사는 다른 정황 등 객관적 근거 없이 피고인이 살인범일지 모른다는 예단을 갖고 유도신문을 했다"고 판결했다.

유죄의 증거로 사용된 피의자 신문조서는 증거능력이 모두 깨졌다.

재심 재판부는 '막걸리를 구입해 옥상에 숨겨놨다'는 B 씨 진술은 검찰 수사관의 유도에 의한 것이었다고 판단했다. 또 B 씨가 아버지를 공범으로 지목한 것 역시 검찰이 미리 공범으로 아버지를 지목해 자백이 이뤄진 것으로 봤다.

검찰이 범행 동기로 발표한 '부녀간 치정'은 검사의 막연한 추측에 따른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수사 검사는 재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부적절한 관계가 있었다는 경찰관의 제보가 있었다"고 주장했으나, 당시 수사 경찰관들은 법정 증인으로 나서 "그런 사실을 전달한 적도, 들어본 적도 없다"고 증언했다.

재심 재판부는 "조사 과정에서 진술거부권이 고지되지 않았고, 형사소송법에 따르지도 않아 각 진술서는 증거능력이 없다. 자백 진술도 약 12시간 가까이 이뤄진 조사 말미에 이뤄진 점, 조사를 받으며 수갑과 포승에 결박돼 있던 점 등에 비춰보면 임의성이 의심된다"고 설명했다.

28일 오후 광주고등법원에서 가족과 마을 주민을 살해한 혐의에 대해 재심 재판을 받은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의 부녀가 16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후 발언하고 있다. 2025.10.28/뉴스1 ⓒ News1 박지현 기자
무죄 부녀 "검사·수사관 규탄"…박준영 변호사 "적절한 사과 있어야"

재심 재판부의 무죄 판결에 따라 검찰은 일주일 내에 상고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선고 후 A 씨는 "집사람을 잃은 마음에 아무런 말도 못 했었다. 옥살이를 어떻게 했는지 말하기도 힘들다"며 "수사관이 조사할 때마다 뺨을 때리고 제가 범행을 안 했다는 말은 삭제했다. 가장 나쁜 사람"이라고 토로했다.

B 씨는 ""검사와 수사관들은 이렇게 수사하면 안 된다. 당시 윽박지르며 수사를 했다"면서 "무거운 마음이었고 너무 힘들었다. 가족들이 있었기에 버텼다. 억울하신 분들이 저를 보고 희망을 잃지 않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피고인들에 대한 변호를 맡은 박준영 재심 전문 변호사는 검찰의 공식적 사과와 진범 수사를 촉구했다.

박 변호사는 "검사와 수사관이 부녀의 성관계를 꾸며내며 존재하지도 않는 제보를 만들어냈고 증거를 은폐한 채 조서를 조작했다"며 "검찰의 불법 수사는 법원을 속이고 결국 대법원까지 속였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 사건은 경계선 지능인과 문맹이라는 피고인들의 취약성이 강압적 수사 절차에 노출될 때 어떤 반응과 왜곡이 발생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살인죄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진범 수사를 재개해야 한다. 진범을 처벌하는 일이 사법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상식에 맞는 결정을 내려준 재판부에 감사드린다. 검찰은 상고 기간인 일주일 내에 피고인들에 대한 진실한 사과를 하길 기대한다. 피고인들의 잃어버린 시간에 대해선 형사보상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star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