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장실 점거 열흘…후손들 "민족 자존심 지키려는 외침"

고령에도 농성 계속…연대·지지 이어져
김형석 관장, 사퇴 압박에도 "임기 동안 최선"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의 사퇴를 촉구하며 관장실 점거 중인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관장실 옆 회의실에서 숙식하며 열흘 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2025.8.29 /뉴스1ⓒNews1 이시우 기자

(천안=뉴스1) 이시우 기자 =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독립기념관장실 점거가 열흘째에 접어들었다. 고령에 저마다의 지병으로 병원을 오가야 하는 몸이지만 풍찬노숙한 조상들에 비할 바가 아니라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관장실 점거 열흘 "물러날 때까지"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해고장을 손에 쥔 후손들의 관장실 점거 열흘째인 29일 기념관 겨레누리관 4층에 위치한 관장실 문은 여전히 굳게 잠겨 있었다. 열흘 전 부착된 해고장과 퇴진을 촉구하는 손팻말, 문 앞을 가로막은 의자도 그대로였다.

관장실 옆 회의실에는 '농성 10일 차'라고 적은 종이가 붙어 있었다. 농성 중인 후손들 일부가 숙식하는 곳이다. 일부는 실외에서 농성 중이다. 회의실 바닥에는 침낭 여러 개가 접혀 있었다. 한편에는 라면과 햇반, 물 등이 비치돼 있었지만 고령의 어르신들이 숙식하기 적합하지 않아 보였다.

이마저도 열흘 전에 비하면 나은 상태다.

독립운동가 후손 이해석(71), 황선건(67) 씨 등 13명은 지난 20일 기념관을 찾았다. 역사 왜곡발언을 일삼은 김형석 관장에게 해고장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김 관장이 자리를 비우면서 만나지 못한 이들은 관장실을 점거했다. 기념관 측은 업무공간이라며 퇴거를 권유했지만 후손들의 결기는 막지 못했다.

의자와 소파 등에서 하룻밤을 지새운 후손들이 이튿날 식사를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기념관 측은 출입문을 봉쇄했다. 거센 항의를 받은 기념관은 출입 가능 인원을 3명 내외로 제한하고 봉쇄를 유지했다.

기념관 측은 후손들을 만나기 위해 기념관을 찾은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에게도 출입을 허용하지 않다가 호된 질책을 받고서야 30시간 만에 봉쇄를 해제했다.

지난 22일 기념관을 방문한 문진석 의원은 "국민의 도구로 쓰이는 공직자들이 당연히 모셔야 할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문전박대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국민주권 정부의 명령에 따르지 않은 인사들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했다. 기념관은 출입문을 열고, 후손들에게 편의 공간을 제공했다.

후손들은 검거 농성 6일 만에 김형석 관장을 마주했다. 지난 25일 외부 일정을 마치고 관장실 출근을 시도한 김 관장은 후손들의 거세 저항에 막혀 21분 만에 발길을 돌렸다.

후손들을 지지하는 목소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커졌다. 역사·시민단체 등이 연대를 약속했고, 또 다른 독립운동가 후손들도 개별적으로 기념관을 찾아 이들을 격려하고 있다. 후손들은 이들과 연대해 '역사독립군국민행동'을 결성했다.

겨레누리관은 역사·시민단체, 각 정당이 김 관장의 사퇴를 촉구하며 내건 현수막과 깃발로 뒤덮였다.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열흘 째 관장실을 점거 중인 가운데 관장실이 있는 겨레누리관에 김형석 관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있다. 2025.8.29 /뉴스1ⓒNews1 이시우 기자

점거 농성을 시작한 민족통일광복회 이해석 씨는 "뜨거운 낮 열기가 식지 않는 밤, 견디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10일 밤낮을 지새웠다"며 "육체적으로 힘겨웠지만, 독립기념관의 명예와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외침"이었다고 열흘간 농성 결과를 자평했다.

그러면서 "김형석 관장이 이 자리에서 완전히 물러날 때까지 어떠한 타협도 없이 투쟁을 이어나갈 것"이라며 "올바른 역사와 정의가 바로 설 때까지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김 관장, 사퇴 압박에도 "임기 동안 최선"

김형석 관장에 대한 사퇴 압박도 거세졌다. 국가보훈부는 김형석 관장에게 "선열의 숭고한 뜻을 더 이상 훼손하지 말라"며 경고 서한을 전달했다.

권오을 보훈부 장관은 27일 "독립기념관은 특정 개인의 학문적 주장이나 논쟁의 장이 아니라 국민이 지켜온 역사적 자존심이자 후세에 물려줄 정신적 유산"이라며 "국민의 신뢰와 독립운동 선열들의 숭고한 뜻을 더 이상 훼손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

내부고발도 터져 나왔다. 김형석 관장이 재직 기간 지인 등을 초청해 기념관을 사적으로 활용한 사례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독립기념관 노조도 김형석 관장의 역사 인식에 동의할 수 없다며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노조는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수위를 높여 1인 시위 등으로 대응할 태세다.

관장실 출근이 저지당한 김형석 관장은 기념관 내 별도 공간으로 출근해 업무를 수행 중이다.

그는 사퇴 요구와 사유화 주장에 잇따라 반박하며 임기를 지키겠다는 입장이다.

김 관장은 "불법적인 방법으로 관장실을 점거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에 기념관장으로서 최선을 다해 대응할 것"이라며 "독립의 가치를 국민과 함께 나누는 기념관을 만들기 위해 임기 동안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지난 25일 천안 독립기념관으로 출근을 하다가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출근저지에 발길을 돌리고 있다. 2025.8.25/뉴스1 ⓒ News1 이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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