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해온 도지도 문제되나"…경북 농지 93만필지 조사에 농촌 술렁
정부 "고령농 임대차 모두 불법 아니다"
투기 아닌 관행 위반은 정상화 기회
- 신성훈 기자
(안동=뉴스1) 신성훈 기자 = "나이 들어 농사를 못 지어 이웃에게 맡긴 것도 문제가 됩니까."
정부의 농지 전수조사가 본격화하면서 경북 농촌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온 '도지(賭地)' 관행을 둘러싼 불안이 커지고 있다. 투기 목적과 무관하게 고령으로 직접 농사를 짓기 어려워 이웃에게 경작을 맡겨 온 농민들 사이에서는 자신도 농지법 위반 대상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다만 고령이나 질병 등 일정한 요건을 갖춘 농지 임대차는 현행법상 허용된다. 정부 역시 명백한 투기 목적이 아닌 관행적 위반에 대해서는 곧바로 농지를 처분하도록 하기보다 임대차 관계를 정상화할 기회를 주겠다는 입장이다.
5일 경북도 등에 따르면 올해 경북지역 농지 심층조사 대상은 92만7957필지다.
지역별로는 안동이 9만2406필지로 가장 많고 구미 7만2179필지, 포항 7만1198필지, 영양 7만855필지, 문경 6만8024필지, 경산 6만5723필지 등이다.
경북 22개 시·군이 채용한 조사원 542명과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경북지원 조사원 47명도 현장 조사에 투입됐다.
정부는 지난 5월부터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농지 투기 근절과 농지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위한 전수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1996년 농지법 시행 이후 취득한 농지를 대상으로 기본조사를 거쳐 연말까지 심층조사를 벌인다.
조사에서는 농지 소유자와 실제 경작자가 일치하는지, 농지를 장기간 방치했는지, 허용되지 않은 임대차나 무단 전용이 이뤄졌는지 등을 확인한다.
농촌에서 특히 관심이 큰 부분은 이른바 '도지'다. 경북 농촌에서는 고령 등으로 직접 농사를 짓기 어려워진 토지 소유자가 이웃 농민에게 경작을 맡기고 수확물이나 일정액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별도의 계약서 없이 수십 년째 이어진 임대차나 문중 소유 농지를 주민이 대신 경작하는 사례도 있다.
모든 도지 형태의 임대차가 불법인 것은 아니다. 고령이나 질병 등 법에서 정한 사유와 요건을 충족하면 개인 간 농지 임대차가 가능하다. 상속받은 농지 등도 일정 범위에서는 임대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요건에 해당하지 않으면서 관행적으로 임대차가 이뤄진 경우다.
조사 과정에서 현행 농지법상 허용되지 않는 임대차로 확인될 경우 농지 소유자는 농지은행 위탁이나 임대차 관계 정비 등 적법한 방식으로 농지를 관리해야 할 수 있다.
정비 절차 없이 불법 임대차 상태를 유지하거나 농지 처분 의무·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이행강제금 부과 등 행정조치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농촌에서는 투기와 무관하게 오랜 기간 구두로 이어져 온 경작 관계를 이번 기회에 정리해야 하는 부담도 적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고령농은 다시 직접 농사를 짓기 어려운 데다 임차농 역시 오랫동안 경작해 온 농지를 계속 이용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경우가 있다.
안동지역 농민 A 씨(80대)는 "나이가 들어 직접 농사를 못 지으니 땅을 놀릴 수도 없어 동네 사람에게 맡긴 것뿐"이라며 "투기는 해본 적도 없는데 서류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문제가 될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농업용 간이창고 등 농지 위 시설도 조사 대상이지만 시설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불법으로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허용 범위를 넘었거나 필요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경우 등이 정비 대상이 될 수 있다.
정부도 투기 목적이 없는 관행적 농지 이용까지 일률적으로 처분 대상으로 삼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고령이나 상속 등에 따른 관행적 위반은 자진 정비와 농지은행 위탁 등 정상화할 기회를 우선 제공하고, 농업인 간 교환경작이나 농업용 시설 등에 대해서도 계도와 적법화 방안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반면 실제 농사를 지을 의사 없이 시세차익이나 개발·보상 이익을 노리고 취득한 농지, 토지거래허가구역 내 부정 취득, 공유지분 취득 뒤 무단 휴경이나 불법 임대를 한 사례 등은 집중 조사 대상이다.
농촌에서는 농지 투기를 차단해야 한다는 조사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투기성 농지와 생계형·관행적 임대차를 현장에서 얼마나 정교하게 구분할 수 있을지가 이번 조사의 관건이라고 보고 있다.
93만 필지에 달하는 경북 농지를 들여다보는 대규모 조사가 본격화한 만큼 고령농과 영세 임차농의 혼란을 줄일 수 있도록 허용되는 임대차와 정비 대상 사례에 대한 구체적인 안내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ssh484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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