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김태련 후손, 110년 만에 고향 대구 찾았다

대구YMCA 창립 110주년 기념, 초대 총무 김태련 후손 초청

독립운동가 김태련(1883~1934) 선생의 후손들이 10일 대구 중구 대구남산교회를 찾아 기념촬영하고 있다. 2025.7.10/뉴스1 ⓒ News1 공정식 기자

(대구=뉴스1) 공정식 기자 = "제 외할아버지(김태련 선생)에 대해 후손들에게 전파해 영적이고 육체적인 맥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직접 몸으로 부닥쳐보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 교육 중에 가장 좋은 교육이라고 믿기에 대구를 찾았습니다."

10일 오전 대구 중구 남산교회를 찾은 최훈진(79) 미국장로총회 목사가 방문 소감을 전했다. 그는 독립운동가 김태련(1883년~1934년) 선생의 외손자이다.

독립운동가 김태련 선생의 국내외 후손이 110년 만에 대구를 찾았다.

대구YMCA가 창립 110주년을 맞아 개최한 '독립운동가 김태련의 후손, 110년 만에 대구YMCA로 오다'에 참석하기 위해 찾은 것이다. 이 행사는 김태련 선생의 삶과 정신을 되새기고, 후손과 함께 그 정신을 오늘의 지역 사회와 청년 세대에게 알리기 위해 마련됐다.

독립운동가 김태련(1883~1934) 선생의 후손들이 10일 대구 중구 대구남산교회를 찾아 후손 대표 최훈진(79·김태련 선생 외손자) 목사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 News1 공정식 기자

후손 대표 최훈진 목사는 외할아버지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표현했다.

"이 대머리가 나에게 큰 자부심이다. 지금 나이가 많아서 대머리가 된 게 아니고 30대부터 전조가 나타나더니 40대에 대머리가 됐다"며 "우리 외할아버지가 40대에 완전 대머리가 됐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식구들 중 가장 외할아버지를 닮은 사람이 바로 나"라고 말했다.

김태련 선생은 대구YMCA 창립을 주도하고, 기독교신앙·청년운동·독립운동을 일치시킨 인물로 평가된다. 일제강점기,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대구 3·1만세운동을 주도한 그는 일제와 타협하지 않고 평생을 오직 민족운동과 나라사랑의 길을 걸었다.

김 선생과 그의 가족은 3·1만세운동으로 인해 큰 아픔을 겪었다. 선생은 2년 8개월간 옥고를 치렀고, 맏아들 용해는 만세운동 과정에서 일본 경찰의 모진 고문에 젊은 나이에 생을 잃었다. 이어 둘째 아들마저 병으로 떠나는 아픔이 이어졌다.

가슴에 깊은 상처를 안은 가족들은 세월을 따라 미국과 서울 등지에 흩어져 살았고, 비로소 한 세기를 넘어 그 후손들이 대구를 찾은 것이다

독립운동가 김태련(1883~1934) 선생의 후손들이 10일 대구남산교회를 찾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5.7.10/뉴스1 ⓒ News1 공정식 기자

대구남산교회 장로였던 김태련 선생은 부인 김갑만 여사와 교회에서 결혼했다. 외손자인 최훈진 목사는 "이 교회 1층 입구에서 찍은 결혼 기념사진을 봤다"고 말했다. 후손들은 환영행사 후 같은 장소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손산문 대구YMCA 110주년 기념사업위원장은 "김태련을 선조로 하는 혈연적 후손들과 초대 총무를 지낸 김태련의 정신적 후손인 대구YMCA는 동지적 관계로 김 선생의 정신과 삶을 이어가야 할 책임과 사명을 함께 하고 있다"며 "앞으로 지속적인 교제를 통해 공동의 책임과 사명을 위한 동반자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후손들은 대구남산교회, 계성중학교, 대구제일교회, 3·1만세운동길, 신암선열공원 등 선생과 관련된 주요 장소를 순례하며, 독립운동의 흔적과 YMCA 정신의 현장을 체험한다.

선생의 생애를 바탕으로 제작 중인 청소년용 김태련 웹툰 제작 시연회에도 참석한다. 웹툰은 공개 후 교육 콘텐츠로도 활용될 예정이다.

대구YMCA는 이 행사를 단순한 과거 회고에 그치지 않고 현재와 미래를 잇는 시민 역사교육의 장으로 만들어 갈 예정이다. 앞으로 해외 청소년 모국 체험, 김태련 관련 웹툰 콘텐츠, 대구 지도자의 길 투어 프로그램 등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대구YMCA 서병철 사무총장은 "110년 전 김태련 초대 총무가 뿌린 씨앗은 오늘의 대구YMCA와 지역사회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며 "그 기억을 다시 깨우고, 청년운동과 공동체 정신을 다음 세대에 잇는 역사적 순간"이라고 말했다.

jsgong@news1.kr